주간동아 613

2007.12.04

너무 독창적 건물이라 비가 샜나?

‘게리’설계 MIT 스테이타 센터 불량 …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만든 명성에 먹칠

  • 전원경 작가 winnejeon@hotmail.com

    입력2007-11-28 13: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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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독창적 건물이라 비가 샜나?

    마분지 상자를 찌그러뜨린 듯한 외관의 MIT ‘스테이타 센터’.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이 지난달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10년 동안 무려 988만명의 관광객이 다녀갔을 정도로 이 미술관은 낙후된 공업도시 빌바오를 유럽의 대표적 문화도시로 탈바꿈시켰다. ‘빌바오 효과’라는 신조어까지 낳았을 정도다.

    그러나 정작 미술관을 설계한 미국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요즘 마음이 편치 않을 듯싶다. 미국 신문 ‘보스턴 글로브’는 최근 미 매사추세츠공대(MIT)가 게리와 그의 건축사무소 ‘게리 파트너스’, 그리고 스칸스카 건축회사를 상대로 3억 달러(약 2730억원)의 천문학적인 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문제의 발단은 MIT가 게리에게 설계를 의뢰한 ‘스테이타 센터’다. 게리의 설계로 지어진 이 빌딩은 2004년 봄 완공될 때만 해도 ‘독창적이고 훌륭한 건물’ ‘대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움직이는 로봇을 연상시킨다’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학생과 교수들이 건물에 입주하자마자 문제가 속출했다. 건물 사방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하수구는 물이 빠지지 않았으며, 비가 새고 여기저기서 곰팡이가 피어났다.

    학교 측 건축사무소 등에 3억 달러 소송

    겨울이 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MIT가 자리한 미국 동부의 보스턴은 눈이 많이 오는 지방이다. 그런데 스테이타 센터의 지붕과 창틀에 쌓인 눈은 흘러내릴 곳이 없었다. 눈은 그대로 쌓였다가 견디지 못하고 한꺼번에 쏟아졌는데, 하필 건물 비상구 앞으로 쏟아져내려 문을 가로막아버린 것이다.



    특히 스테이타 센터 부속 건물인 350석 규모의 야외극장은 배수구가 막히고 객석에 접한 콘크리트 벽에 금이 가는 등 안전문제까지 대두됐다. 결국 대학 측은 2006년 야외극장을 대대적으로 보수했다. 말이 보수지 새로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공사로 대학 측은 150만 달러의 지출을 감수해야 했다. 한편 게리는 이 건물의 설계료로 1500만 달러를 받았다.

    MIT 측 변호사는 이 문제에 대해 게리와 게리 파트너스, 그리고 시공을 담당한 스칸스카 건축회사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게리가 불완전한 설계를 제시해 건축가로서의 직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 학교 측의 소송 이유다. MIT는 이 같은 내용의 고소장을 10월31일 보스턴의 서포크 연방대법원에 제출했다.

    그러자 스칸스카 건축회사의 폴 허윈스 수석부사장은 “이 건물의 문제점들이 시공 과정에서 생겨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문제와 상관없다”며 발뺌하고 나섰다. 허윈스 부사장에 따르면 자신의 회사가 건설 도중 야외극장의 배수 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게리에게 설계 수정을 요청했으나 게리가 이를 묵살했다고 한다.

    스테이타 센터는 MIT의 강의실과 실험실, 회의실 등으로 구성된 건물이다. 직사각형의 마분지 상자를 찌그러뜨린 듯한 건물 외관은 게리 특유의 기발함이 빛난다. 건물의 디자인으로만 따지자면 지금까지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빌바오나 산타모니카 미술관, 월트디즈니 콘서트홀 등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처럼 멋진 외관과는 달리 스테이타 센터 외부 벽에는 시퍼런 곰팡이가 피어올라 있고 1층의 로비 역시 벽에 금이 가 있는 상태다.

    스테이타 센터에서 가장 시선을 사로잡는 부분은 날카롭게 각진 지붕이다. 하지만 이 각진 지붕이 문제의 주범이었다고 한다. 건축가인 로버트 캠벨은 ‘보스턴 글로브’와의 인터뷰에서 스테이타 센터처럼 불균형하게 각진 지붕은 기능적인 면에서 말썽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스테이타 센터는 마치 디즈니 만화에나 등장하는 건물 같습니다. 보기에는 즐겁고 유쾌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쓸모없는 골칫거리지요.”

    한편 소송 당사자인 게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건물의 문제들은 사소한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스테이타 센터의 설계는 무척 복잡하게 이뤄졌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빌딩 외관은 70억 개의 결합 조직을 붙여서 만들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든 건물이므로 배수 같은 사소한 문제는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MIT는 이미 이 빌딩에 대한 보험도 들어둔 상태인데 말이지요.”

    1929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USC와 하버드대 설계대학원을 졸업한 프랭크 게리는 스페인의 가우디 이후 가장 독창적인 건축가로 손꼽힌다. 건축에 해체주의를 도입한 장본인으로 일컬어지는 그의 건축들은 ‘직사각형에 회색 콘크리트’라는 빌딩의 고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헤엄치는 물고기를 연상시키는 유연한 곡선과 메탈 소재의 대담한 사용은 게리 건축의 트레이드마크로 손꼽힌다.

    구겐하임 빌바오로 명성이 높아지기 전부터 게리의 건축들은 세계 곳곳에서 찬사와 감탄의 대상이 돼왔다. 그가 설계한 프라하의 네덜란드 보험 빌딩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에 의해 1996년 최고의 디자인으로 뽑혔다. 게리는 현재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프로젝트’(9·11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대지에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는 프로젝트)나 파리의 루이비통 재단 건축 등 세계적인 건축 프로젝트에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

    가우디 이후 최고의 건축가 … 디자인 집착 기능 소홀 비판

    그러나 게리는 찬사만큼이나 비난도 많이 받는 건축가다. 디자인에만 집착해서 건물 본래의 기능에는 소홀하다는 것이 이유다. ‘뉴욕타임스’는 “게리가 LA에 건축된 월트디즈니 콘서트홀의 티타늄 금속판이 빛을 과도하게 반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외관을 수정하는 데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외관만 문제가 된 디즈니 콘서트홀에 비해 MIT 스테이타 센터의 문제는 좀더 심각하다. 건물 자체가 ‘불량’의 오명을 쓰게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리는 ‘나의 설계처럼 가치 있는 공학 작품에 대해 무조건 건축비를 깎으려고만 들었던 대학 측에 책임이 있다’고 맞서고 있다. MIT는 건축비 절감을 위해 지붕을 대강 시공했으며, 스테이타 센터의 문제들은 디자인이 아니라 시공 때문에 생겨났다는 게 게리 측 주장이다.

    학교와 게리 측, 스칸스카 건축회사는 이처럼 서로의 주장만 되풀이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MIT 학생들의 마음은 답답할 뿐이다. MIT 로봇공학과의 로드니 브룩스 교수는 “아무튼 이 건물을 드나드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일이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교수와 학생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게리는 우리들의 의견을 설계에 많이 반영해줬어요. 앞으로도 이 건물을 잘 사용할 수 있게 살펴주기를 바랄 뿐이지요”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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