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3

2007.12.04

감사원, 고강도 감사하고도 왜 침묵?

3개월 지나도록 결과 발표 미뤄 … 단독입수한 보고서 초안에는 특혜 의혹 등 문제투성이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입력2007-11-28 11: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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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원, 고강도 감사하고도 왜 침묵?
    ‘주간동아’는 최근 ‘소방방재청 통합무선망 구축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보고서 초안을 단독 입수했다. 감사원에 위촉된 자문위원이 작성한 이 보고서는 올해 5월 말 감사원에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본지는 몇몇 전문가들에게 이 감사보고서 초안의 분석을 의뢰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국내 최고의 무선통신망 전문가가 작성한 보고서로 사업의 공과 실을 상세히 분석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감사원은 8월 말에 끝낸 조사 결과를 최종적으로 7명의 위원이 참석하는 감사위원회에 상정조차 못한 상태다. 감사원 공보담당자는 “신중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발표가 늦어지고 있다”면서 “아직 감사위원회의 일정을 확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올해 안에 공개될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감사에서 확정 발표까지 4개월이 걸리는 것에 비춰본다면 매우 이례적이다.

    업계에서는 “결과를 공표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추측과 함께 “(같은 이유로) 햇빛을 못 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감사 결과 발표가 기약 없이 미뤄지면서 사업 역시 미궁에 빠져들었다.

    ‘주간동아’는 총 21페이지 12항목으로 구성돼 있는 감사보고서 초안의 핵심 내용을 공개한다. 보고서는 시종일관 거대 국책사업인 통합무선망 사업이 ‘특정 업체 밀어주기’ 의혹을 향해 가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그 사실을 알고도 묵인한 경찰청, 소방방재청,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고딕체부분은 감사보고서 원문 )

    먼저, 감사보고서 10장에 서술돼 있는 ‘소방방재청 통합망 구축 경과’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2002년 9월 감사원의 ‘통합지휘무선통신망 확보 방안 강구통보’는 단일 시스템으로 통합무선망을 구축토록 해 특정 업체의 독점 공급을 시사 … 2003년 10월 정보통신부의 TETRA 표준 적용은 기존의 VHF/UFH 무선망이 긴급통화와 우선순위 통화가 안 된다고 지적하면서 TETRA-TRS를 과장해 홍보 … 2004년 4월 기획예산처가 실시한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는 중간보고서 내용이 최종보고서에서 변경되어 현재 발생한 독과점 의혹에 대한 대비책 마련 권고 등이 삭제 ….

    - 결국 2005년 10월 소방방재청이 시작한 통합무선통신망 시범사업에는 시방서에 ‘경찰청 무선통신망과 연동’ 및 ‘서울지방경찰청 장비 업그레이드’라고 정확하게 명시해 특정 회사 장비만이 공급될 수 있게 제한하고 나섰다. 이 같은 독점은 경기경찰청 사업에도 이어지고 있다.


    국책사업이 법적 근거를 가지려면 기획예산처의 예비 타당성 조사가 필요하다. 2004년 기획예산처는 KDI에 이 사업의 경제성 분석을 의뢰했고, 이어 KT에 의뢰해 사업의 기초설계에 해당하는 ISP 보고서 작성에 돌입했다. 정보화 전략계획(Information Strategy Planning)이라 불리는 ISP란 말 그대로 중·장기 정보화 전략에 해당한다.

    그러나 소방방재청이 그간 TRS 사업의 핵심 홍보자료로 소개해온 두 보고서( ISP 보고서와 KDI의 타당성 조사)는 왜곡 또는 일부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이에 대해 감사보고서는 “ISP 보고서에서 상당 부분이 누락되거나 의도적으로 삭제 변경된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ISI(이기종 간 연동) 개념은 통합무선망 사업을 사실상 독점구조로 몰아간 ‘독소 조항’으로 꼽힌다. 예를 들어, 모토롤라 교환기와 노키아 교환기는 서로 연동되지 않는다. 연동을 위해서는 프로토콜을 상호 공개해 소통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해야 한다. 그러나 모토롤라는 자신의 기술을 지적재산권이라고 주장하면서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TRS사업의 근간이 되는 서울경찰청과 통신하기 위해서는 전국에 모토롤라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

    그러나 KT가 작성한 ISP 보고서는 이기종 연동조항의 폐해를 의도적으로 누락하면서 특정 업체의 독주를 묵인하고 있다. 다음은 ISP(사업기초설계) 보고서 내용 중 삭제된 중요 대목.

    - ISI 교환기간 연동 사례 중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기술 종속 및 시장독점 요인인 ISI 교환기간 연동 부분에 대한 검토 내용이 누락됨.

    - ISI 주요 쟁점 및 대책 중 기술 종속 및 국내산업 보호를 위한 TETRA 기술 국내 이전 방안이 삭제돼 경쟁을 통한 예산 절감 및 기술 종속성 방지 대책이 전반적으로 누락됨.

    - 단말기 국산화 추진 계획 중 2003년 경찰청 사업에서 발표된 국산화 계획 내용이 삭제됨.

    (제1장 내용요약 및 삭제된 주요내용 中)


    KDI의 예비 타당성 조사는 수차례 변경되면서 누락되거나, 심지어 새로운 내용이 적지 않게 추가됐다. 감사보고서 제3장은 이를 지적하고 있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애당초 KDI 보고서는 사업 방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지만, 최종보고서는 정반대 결론, 즉 타당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은 KDI 보고서 중 누락된 부분.

    - 통합망 구축 및 운영 비용과 재난업무의 편익증대 효과를 결합한 경제성 분석에서 SOP(재난통신운영절차)의 변화 없이는 경제적 타당성을 가질 수 없으며, SOP 변화가 이뤄지는 경우에 경찰청망 확대 방안이 현재의 망 연동방안보다 경제적 타당성이 약한 것으로 판단.

    - 기존 TRS 확대 구축 방안(경찰청망 확대 방안)은 현재 인프라 장비와 단말기를 공급하는 업체가 유일한 공급자로서 독점력을 행사할 우려가 있으므로, 몇몇 메이저 공급업자 간 경쟁을 유도해 국내로의 TETRA 기술 이전을 촉진하고 가격인하를 유도하는 방안을 반드시 모색해야 할 것(제3장 예비 타당성 조사 최종보고서에서 누락된 중간보고서의 결론 中).


    프로토콜 무상제공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에도 경찰청과 서울지방경찰청은 모토롤라의 TETRA 시스템을 인수했다. 또 이기종 호환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타 지방청의 시스템은 모두 서울청 또는 경찰청의 시스템과 연계하라”는 지침을 각 지방경찰청에 하달했다. 특정 업체 장비가 이기종과 연계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기종 간 연계가 필수’라는 지침을 하달해 사실상 불공정 거래를 강제한 셈이다. 다음은 공정경쟁 저해요소에 대한 감사원 지적.

    -‘기존 TETRA 시스템’이란 유럽표준(ETSI) 또는 국내단체표준(TTAS)에 의한 TETRA-TRS를 설치해 운영 중인 주파수공용무선통신망으로, 통합무선망과 상호 호환성을 갖는 시스템을 말한다.

    → 기존 TETRA 시스템과의 상호 호환성은 표준에서 정의된 수준으로의 호환성이 만족돼야 하고, 표준에 명시되지 않은 제조사 고유의 기능은 제외돼야 하므로 공정경쟁 저해요소임.

    -서울지방경찰청(이하 ‘서울경찰청’이라 한다)의 주 제어장치와 구매자의 주 제어장치 등 시스템 상호간 연계 운영체계 및 호환성이 확보돼야 하며, 이를 위해 기존 TETRA 시스템의 기능 보완 및 개선, 시스템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경우에는 계약자 부담으로 조치해야 한다.

    → 제안 장비가 기존 시스템과 동일 제작사 장비가 아닐 경우 이에 대한 견적을 받기도 어려우므로 공정경쟁 저해요소임.

    (제6장 시범사업 사전규격 검토 - 공정경쟁 저해 요소 中)


    감사보고서의 제6장 ‘시범사업의 사전 규격 검토’ 대목은 특혜 의혹도 지적하고 있다.사업참여를 원하는 통신업체들의 제반 조건을 심사하는 기준이 되는 ‘구입설치 시방서’와 ‘입찰 제안요청서’가 특정 회사를 노골적으로 지지하는 규정들로 이뤄져 있다고 감사보고서는 밝힌다. 예를 들어, 표준기술에서 사용되는 기술용어가 아닌 모토롤라가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기능들을 전 세계 표준인 양 표현한 점도 의심스러운 대목이라는 것이다.

    감사보고서는 “기존 장비를 활용하는 방안을 썼다면 2059억원에 불과했으리란 점을 감안하면 TRS사업은 최소한 2배 이상 뻥튀기된 터무니없는 사업”이라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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