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3

2007.12.04

“시험문제 뒷거래 공공연 ‘실적’ 유혹 떨치기 힘들어”

대치洞 학원장 유수하 씨 “특목고와 학원은 ‘악어와 악어새’ 관계 검은돈 오가”

  • 김순희 자유기고가 wwwtopic@hanmail.net

    입력2007-11-28 10: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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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험문제 뒷거래 공공연 ‘실적’ 유혹 떨치기 힘들어”

    학원과 특목고의 검은 커넥션에 대해 얘기하는 유수하 원장.

    사상 초유의 특목고 입시문제 유출 사건이 벌어졌다. 이와 관련해 ‘교육 특구’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10여 년간 ‘유수하수학전문학원’을 운영해온 현직 학원장 유수하(42) 씨가 조심스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이기도 한 그는 “(김포외고) 사건을 접한 뒤 학생들 볼 낯이 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우려했던 일이 수면 위로 드러난 거죠. 그것도 학교나 학원 관계자가 아닌 어린 중학생들에 의해서.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일입니다. 특목고 전문학원에서 근무한 어느 강사가 양심고백을 통해 밝혔듯 문제를 알려주면 건당 1000만원 이상, 유형만 알려주면 몇백만원, 이게 학원가의 공공연한 비밀이죠. 문제를 통째로 가르쳐줄 경우 가격이 훨씬 더 높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게 학원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오히려 적기 때문이죠.”

    김포외고 시험 당일인 10월30일 목동종로엠학원 수강생 120여 명이 버스 3대에 나눠 타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학원 측은 이 학생들에게 프린트물을 나눠줬고, 거기에서 김포외고 입시 80문제 중 13문제가 출제됐다. 김포외고 시험문제 유출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데는 학생들이 주고받은 몇 마디가 실마리를 제공했다.

    시험 도중 쉬는 시간에 남학생 몇 명이 “아침에 (버스에서) 나눠준 문제하고 똑같지 않느냐”고 한 대화를 한 여학생이 우연히 듣게 됐다. 이 여학생은 시험이 끝난 뒤 문제가 유출됐다는 의혹을 품게 됐고, 또 다른 김포외고 지망생과 11월2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김포외고 일반전형 문제사건 해명 시위’라는 카페를 만들었다. 이후 시험 당일 버스에서 프린트물을 접한 학생 2명의 양심고백이 이어졌다. 교사와 학원의 검은 연결고리는 학생들에 의해 꼬리가 밟힌 것이다.

    유 원장은 “학원과 학교 측의 커넥션이 개탄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일부 몰지각한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의 맑은 영혼과 정신이 깨진 거죠. 만약 이 사건이 알려지지 않았다면 (프린트물을 보고) 합격한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가게 됐을지…. 영문도 모른 채 떨어진 학생들의 억울함은 또 누가 보상해주겠어요?”



    일부 학원 무슨 수 쓰더라도 문제 빼내기 혈안

    특목고 학원이 급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분당 일산 부천 등 경기권 고등학교의 평준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 일반 고교보다 학업 분위기가 나은 특목고의 쏠림 현상이 두드려졌기 때문이다. 학부모가 학원을 선택하는 기준은 ‘실적’에 맞춰졌고 학원 운영의 성패 또한 ‘실적’에 달려 있어 학원 측이 ‘검은 뒷거래’의 유혹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학원을 키우는 간단한 방법은 입시문제를 ‘입수’해 합격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학원 입장에서는 (특목고 입시) 문제를 빼낼 수만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유출하려고 애쓰는 거죠. 이번 일은 학원가에 떠돌던 소문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입니다. 학원 간에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겨뤄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유착관계에 의해 문제를 빼내고, 부정하게 학원 덩치를 키운 거죠. 그런 학원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데, 비록 사교육 부문에 종사하지만 교육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학원을 운영하는 사람들까지 매도당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번 사건은 특목고와 학원의 악어와 악어새 관계에서 비롯됐다. 특목고는 지원자가 몰려 경쟁률이 높아야 학교 ‘몸값’이 올라가기 때문에 학원 측에 많은 학생들이 지원할 수 있도록 요청한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일부 학교 관계자는 시험문제 유출 등의 방법으로 특정 학원을 밀어준다. 학원은 많은 학원생이 지원하도록 독려해 학교의 입시 경쟁률을 높여준다. 이 과정에서 검은돈이 오간다.

    “학원 측은 시험문제를 빼내 합격률을 높인 다음 ‘특목고에 합격한 학생이 몇 명이다’ ‘문제 적중률은 몇 %’라고 대대적으로 광고합니다. 특목고 합격생이 많을수록 학원은 명문으로 떠오르는 거고요. 이후 학생들이 몰려드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시험문제 뒷거래 공공연 ‘실적’ 유혹 떨치기 힘들어”

    10월30일 치러진 김포외고 입시에서 유출된 시험문제를 학원생들에게 배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서울 양천구 목동 종로엠학원.

    시험문제는 주로 난이도가 높은 문제가 유출된다고 한다. 어려운 문제는 배점이 높아 학생 간 점수차를 크게 벌어지게 하기 때문에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 김포외고 사건도 난이도가 높은 문제(언어영역 1문제, 창의력 5~6문제, 독해는 긴 지문이 2개 출제)가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원장은 한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모 외고 전문학원 강사 A씨가 원장 B씨와 뜻이 안 맞아 학원을 그만둔 뒤 인근에 새로 학원을 차렸다고 한다. 소문이 자자할 만큼 명강사인 A씨의 제자들이 그를 따라 학원을 옮겼다. 하지만 A씨가 세운 학원에서 공부한 학생들의 수준, 교재, 교습 방법 등이 기존 학원과 비슷한데도 외고 입시에서 단 한 명의 합격생도 배출하지 못했다. 반면 기존 학원에 남았던 학생들은 외고에 여럿 붙었다.

    유 원장은 두 학원의 ‘결과’ 차가 왜 생기게 됐는지에 대해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학원이 정정당당하게 경쟁해 승승장구하는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부정과 편법을 동원해 학원을 키우는 것은 지탄받아야 할 범죄”라며 “대다수 학원들이 문제 유출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정도(正道)가 아닌 부정한 길을 가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문제 유출 가능 교사들 명단 학원가 떠돌아

    유 원장에게 “학원 운영과정에서 문제 유출에 대한 유혹을 느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에 그가 입술을 꾹 깨물더니 조심스럽게 “나도 사람인데 그런 생각을 왜 안 해봤겠냐”고 답했다. 편법과 부정을 동원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유혹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유 원장은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선친의 가르침과 아내의 조언이 검은 거래를 차단하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대치동 수학전문학원 중 규모가 큰 학원을 경영하는 그는 “각 특목고 관련 학원에서 개최하는 입시설명회가 학교와 학원 간 검은 거래의 발단이 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특목고 관련 학원은 특목고 입시설명회를 열면서 학교 관계자들을 초청합니다. 각 학원의 설명회 때마다 돌아다니는 특목고 관계자들이 있어요. 대부분은 순수하게 학교 홍보를 위해 참석하지만 더러는 ‘작업’에 들어가 검은 거래를 트는 기회로 삼기도 합니다.”

    경찰 수사 결과 이번 파문도 9월 열린 목동종로엠학원의 입시설명회에 김포외고 입시홍보부장 이모(51) 교사가 참석한 게 발단이 됐다. 당시 이 학원의 곽모(41) 원장이 이 교사에게 “학생들이 많이 지원하게 할 테니 시험문제를 보내줄 수 있느냐. 보내주면 섭섭지 않게 해주겠다”고 제안했고, 이 교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돈만 주면 문제 유출이 가능한 (특목고) 교사들 명단이 학원가에 떠돌아다닙니다. 마음만 먹으면 뒷거래가 가능하다는 거죠.”

    학원과 학교 관계자 사이에는 ‘현금’ 직거래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를 해도 걸려들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게 거래하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는 은밀한 거래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유수하수학전문학원 권유경 강사는 몇 년 전 다른 학원에 근무할 당시 겪은 경험담을 들려줬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주임교사가 책을 냈다고 한다. 그 교사의 책이 교보문고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학원에서 책을 많이 사줬다. 3일 정도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책이 배치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권씨는 “초등학교의 경우 교내 수학경시대회 문제를 어렵게 출제해야 학원 측이 유리하다”며 “경시대회 점수가 낮게 나와야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가 많아지므로 교사에게 직접 문제를 어렵게 내달라고 부탁하지는 않지만 교사는 학원 측이 책을 사준 이유를 잘 알고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김포외고 사태가 벌어진 데는 시험 출제과정 등에 대한 교육인적자원부와 관할 교육청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도 있다고 지적하는 유 원장은 “몇몇 양심 없는 학원 때문에 50여 만명의 사교육 종사자 전체가 매도당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아이들 교육을 잘 시켜 국가경쟁력의 초석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 자체가 애국하는 일이라고 믿는다”는 유 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교육은 백년지대계임을 어른들이 가슴에 되새겨 다시는 이처럼 부끄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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