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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AGE

한 달 순익 500만원 노점상이 생계형?

명동·종로 등 주요 상권 기업형 노점상이 장악 … 조직력 막강해 서울시 정비 험난 예고

  • 특별취재팀

한 달 순익 500만원 노점상이 생계형?

한 달 순익 500만원 노점상이 생계형?
첫사랑의 두 눈처럼 깜박이던, 그 옛날 노점의 카바이트 불빛은 훈훈했다. 연탄불로 요리하던 노변식당의 음식 맛이란! 화덕에서 보글대는 국물을 삼킨 뒤 한 모금 빤 담배연기의 몽롱함은 또 어땠는가. 입에 착 달라붙는 소주에 칼칼한 안주를 베어 물면 밤이 저절로 익었다. 박노해의 시(詩) ‘포장마차’의 한 대목은 아스라하다.

‘두둥실 풍선처럼 마음이 들떠 누구라 할 것 없이 한잔 꺾자며 공장 뒷담 포장마차 커튼을 연다. … 첫딸 본 김형 추켜 꼼장어 굽고 새신랑 정형 얼러대어 정력에 좋다고 해삼 한 접시, 자격증 시험 붙어 호봉 올라간 문형이 기분 조오타고 족발 두 개 사고 걸게 놓인 안주발에 절로 술이 익는다.’

경제 ‘쓴잔’ 꺾고, 정치 ‘안주발’로 밤새우던 ‘그때 그 시절’의 노점엔 우리네 고단한 삶이 녹아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단속반원과 노점상의 다툼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파라솔 딸린 테이블을 갖춰놓고 음식을 내는 기업형 노점 때문이다. 먹을거리 위주였던 길거리 장사가 백화점식으로 변모한 지도 오래다.

종로 떡볶이 노점 3000만~5000만원에 거래

서울 중구 명동 중앙로(밀리오레-우리은행 명동지점)는 21세기형으로 변모한 노점의 ‘엘도라도’다. 10월5일 밤에도 노점들은 60촉 백열등 불빛을 내뿜으며 행인의 눈길을 빼앗고 있었다. 이 일대에만 먹을거리, 의류, 신발, 액세서리 등으로 ‘특화한’ 노점이 100개 넘게 터를 잡고 있다. ‘패션 1번지’라는 옛 명성은 다소 퇴색했지만, 명동의 밤은 ‘그때 그 시절’만큼 북적댄다.



유명 브랜드의 티셔츠 3장을 1만원에 파는 한 노점은 한 시간 넘게 손님들로 가득하다. 노점상은 티셔츠가 짝퉁이라는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국산 면 100%’를 뽐내는 이 짝퉁 티셔츠는 여름철 팔다 남은 재고란다. 목도리, 털모자를 비롯해 겨울상품으로 옷을 갈아입은 ‘의류 노점’은 계절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트렌디한 군것질거리인 회오리감자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

한 달 순익 500만원 노점상이 생계형?

노점을 상대로 한 프랜차이즈 업체가 등장했을 만큼 ‘길거리 비즈니스’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서울시가 조성하기로 한 ‘노점상 거리’에 세워질 조리음식용 노점 디자인(오른쪽).

노점들은 오랫동안 중앙로의 밤을 지켜온 터줏대감이다. 신상품 출시에 맞춰 쇼핑을 나오는 고객이 있을 만큼 단골도 적지 않다. 월 1000만원 넘는 순수익을 올리는 곳도 부지기수. “목이 좋은 곳에선 하룻밤 기백만원을 벌기도 한다”는 것이 이곳 상인의 귀띔이다. 상점주 K씨는 노점을 가리키며 불평을 늘어놓는다.

“중앙로의 월 임대료가 얼만지 아세요? 100평(330㎡)짜리가 7000만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노점은 나라땅에서 날로 먹잖아요. 우리 손님 빼앗아 번 돈으로 고급 승용차 끌고 다니는 (일부) 업주를 보면 화가 치밀죠. 금싸라기 매장을 운영하는 노점주가 생존권 운운하는 것은 코미디입니다, 코미디!”

한 달 순익 500만원 노점상이 생계형?

9월1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전국노점상연합회 집회에 참가한 한 노점상이 파손된 노점모형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명동의 노점은 2000년대 초만 해도 돈을 주고 살 수 있었다. 권리금이 1억원을 훌쩍 넘는 곳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은 매물이 자취를 감췄다. 명동만큼은 못하지만 노른자위로 불리는 강남역, 노원역, 건대입구, 신촌, 신천, 종로 지역의 노점이 매매되는 것과 비교된다. 그래서 ‘노점업계’에선 명동 진입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회자된다.

명동의 노점은 특정인 또는 특정 조직이 복수의 노점을 ‘관리하는’ 기업형이다. 매장 한 곳마다 최소 월 500만원 넘는 순수익이 나온다고 한다. ‘점주’는 관리만 하고 ‘판매원’을 고용해 장사하는 노점이 적지 않은 것도 중앙로의 특징이다. 중앙로의 노점은 크게 ‘손수레’와 ‘벽걸이’로 나뉘는데, 벽걸이는 공사현장 담을 따라 늘어선, 공사가 끝날 때까지만 영업하는 ‘임시업소’다.

명동의 노점상 ‘길드(guild·동업자 조직)’는 중세의 그것만큼이나 일사불란하고 폐쇄적이다. 20년 넘게 독자적으로 상권을 관리해온 노하우도 상당하다. 이 길드는 먹을거리, 의류, 신발, 액세서리 등의 노점 수를 알맞게 배합해 ‘제 살 깎기 경쟁’을 막고 있으며, 노점 매매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권리금을 받고 노점을 넘겼다가 적발되면 영업권이 박탈된다.

동대문, 강남역, 종로, 노원역, 신촌 지역에서도 생계형 노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들 지역의 노점은 ‘자릿세’ ‘권리금’이 만만찮다. 예를 들면 종로에서 떡볶이를 파는 노점은 3000만~5000만원에 거래된다. 관리비 명목의 자릿세(월세)는 월 100만원 안팎. 먹을거리 장사로만 하루 100만원 넘게 순수익을 내는 곳도 있는데, 이런 금싸라기 터는 매매가가 1억원이 넘는다.

종로의 노점엔 ‘깨끗한 종로’라는 표어와 함께 ‘종로2가-1’식의 일련번호가 붙어 있다. 구청에서 붙인 것이 아니라 노점상 길드가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다. 지역별로 ‘조합’ ‘번영회’ 등으로 불리는 각 길드는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비판에 대응코자 ‘청결운동’ ‘질서운동’을 강조해왔다. 미관 개선 등에 앞장설 테니 ‘도시의 명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최근 무질서하게 난립한 노점을 정비해 도시 미관을 한 단계 높이겠다고 밝혔으며, 서울시의회는 2009년 말까지 서울의 모든 가판대를 철거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서울시 조례 개정안을 10월16일 통과시켰다. 12월31일 허가기간이 끝나는 서울시내 가판대 상인 중 보유재산 합계가 2억원이 넘는 사람은 내년 1월부터 영업을 할 수 없다.

‘가판대’는 시의 허가를 받고 운영되는 버스정류장 앞 등의 노변매점을 뜻한다. ‘보도상 영업시설물’ 운영자 3625명의 부동산 재산을 조사한 결과, 공시가 6억원이 넘는 부동산을 보유해 종합부동산세를 낸 자산가 노점주가 28명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업형 노점상과 달리 가판대 운영자는 생계형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2002년 월드컵 앞두고 기업형 노점은 손 못 대

한 달 순익 500만원 노점상이 생계형?
‘보도상 영업시설물’과 달리 번화가, 유흥가에 늘어선 노점을 정비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서울시는 특정 지역에 ‘노점상 거리’를 꾸려 노점들을 입주시킨 뒤 관광명소로 꾸민다는 복안이다. 장기적으로는 도로점용료를 받는 등 노점상을 제도권으로 흡수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노점상 조직들은 “생존권을 말살하는 행위로,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노점상과의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 당시 계획대로라면 버스정류장에서 11m 이내의 노점, 지하철역과 지하보도 출입구에서 6m 이내 노점, 택시승차대 주변 노점의 대부분이 철거됐어야 한다. 그러나 단속이 쉬운 변두리의 생계형 노점만 일시적으로 사라졌을 뿐 중심가의 조직화한 기업형 노점은 손도 대지 못했다.

“포장마차 3~4개를 철거하는 데만 1년 걸리는 것이 현실이다. 단속되더라도 3만~5만원의 과태료만 물고 이튿날 다시 영업을 한다. 기업형 노점을 뿌리뽑겠다고 작심한 뒤 수년간 역량을 집중해 꾸준히 단속해나가지 않는다면 노점을 정비하는 일은 불가능해 보인다.”(서울의 한 자치구 관계자)

노점 창업을 컨설팅해준다는 광고가 생활정보지에 실리고 노점 프랜차이즈 업체가 등장했는가 하면, 노점상 매매 브로커도 활개치고 있을 만큼 ‘길거리 비즈니스’는 서울의 한 풍경이 됐다. 노점을 운영하는 K(45)씨는 “노점상 조합은 칼만 안 들었지 깡패”라고 했다. 실제로 일부 지역의 노점상은 폭력배가 ‘관리’하고 있다.

번화가, 유흥가에 자리잡은 기업형 노점은 더 이상 훈훈하지 않다. 카바이트 불빛의 ‘낭만’은 스러지고 ‘비즈니스’만 남았다. 노점상과 단속기관의 다툼으로 거리가 한동안 시끄러울 것 같다.



주간동아 2007.10.30 608호 (p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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