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8

2007.08.14

세 지식인, 독서와 경청을 말하다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7-08-08 17: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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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지식인, 독서와 경청을 말하다

    <b>읽기의 힘, 듣기의 힘</b><br>다치바나 다카시·가와이 하야오·다니카와 순타로 지음/ 이언숙 옮김/ 열대림 펴냄/ 184쪽/ 9800원

    한 대학에서 디자인 박사과정을 강의하는 분이 수강생들에게 강의 내용을 요약해 제출하라는 숙제를 냈다. 우연한 기회에 대학원생들이 제출한 요약본을 읽어보다가 나는 깜짝 놀랐다. 학생들이 마치 다른 강의를 들은 듯 문학, 출판, 디자인 등 자신의 주 전공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을 정리해놓았기 때문이다.

    ‘읽기의 힘, 듣기의 힘’을 읽는 내내 그 기억을 떨쳐버릴 수 없었는데, 그것은 내가 듣는다는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종종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듣는 사람과 나 사이에 개념어에서부터 인식차가 크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식과 문화에 대한 키워드 사전을 기획해 출간하기도 했다.

    듣기의 문제는 읽기에 대한 성찰로도 이어졌다. 나는 5년 전쯤부터 검색이란 습관으로 말미암아 책의 세계에서는 ‘분할’과 ‘통합’이 동시에 진행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한 권의 책이 다루는 주제는 갈수록 잘게 쪼개지지만 내용은 통합(최재천은 이를 ‘통섭’이라고 한다)적이어야 함을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 요즘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원 테마(키워드) 책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읽고 듣는 것을 인풋(Input)으로, 말하는 것과 쓰는 것은 아웃풋(Output)으로 본다. 인풋과 아웃풋의 비율, 즉 IO비가 커야 결과물이 좋을 수 있다는 것은 상식처럼 보인다. 이 책 저자 가운데 한 사람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IO비가 최소한 100대 1이 돼야 결과물의 질이 담보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반드시 그럴까? 예컨대 사람의 표정을 읽고, 축구경기의 흐름을 읽고, 바둑의 수를 읽는 것은 그때그때 인풋만 가지고는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많은 정보를 꼼꼼히 검토하는 능력과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뤄지는 순간적인 판단의 힘을 강조한 ‘블링크’(말콤 글래드월, 21세기북스)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례만 봐도 그렇다.



    시를 쓰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 현대시의 개척자로 알려진 다니카와 순타로는 책을 통해 “시가 탄생한다는 말은 시인에게는 경멸의 말이 된다”고 지적한다. 시란 원래 “뭔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의식화의 혼돈과도 같은 것을 인풋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인간은 문자가 없던 시절에도 별자리를 읽고 길을 찾거나 구름의 움직임을 읽고 날씨를 예측하고, 들짐승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사냥감을 쫓았다.

    가와이 하야오는 심리학자이자 카운슬러다. 그는 다양한 상담 경험을 통해 인간이 살아가는 방법을 ‘읽고’ 있음을 고백한다. 묵묵히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역할을 할 때, 단순히 듣는 것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상담자의 내면, 즉 심리상태나 내면의 울림을 조심스럽게 ‘읽어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세 지식인, 독서와 경청을 말하다

    제대로 읽고 듣는 힘은 정보화 시대 생존 필수조건이다.

    저자들의 주장처럼 읽고, 듣는 행위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다치바나 다카시의 삶에서도 읽힌다. 다독가로 알려진 다치바나는 수많은 책을 펴냈다. 그는 다양한 인풋을 통해 저작물을 생산한다. 그의 생산물 중 3분의 1은 과학저술이다. 이런 책을 쓸 때 그는 두 세대 윗사람들에게서는 거의 도움을 받을 수 없지만 아래 세대인 상급 대학원생들이 권하는 책에서는 많은 도움을 받고 있음을 고백한다. 일본의 장년세대는 문학, 역사, 철학 같은 인문적 사유에는 능하지만 과학 지식은 그리 많지 않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역설적으로 그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세대가 아마도 다치바나의 주요 독자일 것이다.

    읽는다는 것이 쉽지 않기에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이 읽어준 책을 즐기기도 한다. 동양고전을 대신 읽어준 신영복의 ‘강의’(돌베개)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선지자’에게서 읽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검색이라는 읽기 행위는 어떤가. 인터넷에 축적된 광대한 바다 같은 지식에 접근한 뒤 검색 엔진을 작동하며 자신의 생각을 심화시켜 나가다 보면 누구나 훌륭한 책을 완성할 수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인터넷 공간에서는 이런 긍정적 흐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강연장이나 회의장에서 누군가가 말한 것은 곧바로 모바일 노트북을 통해 인터넷에 오른 다음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때로는 회의나 강의가 끝나기도 전에 발언한 사람에게 질타가 날아들며 악성 댓글로 도배하는 일마저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이런 경우 듣는 사람의 능력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처음부터 악의를 갖고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읽고’ ‘듣는’ 힘을 키워야 한다.

    문자가 발명됐을 당시 지식인은 인간의 감성이 퇴화하는 것을 우려했다. 지금은 정보의 접근성이 커져 읽고 듣는 행위가 늘어났지만 제대로 읽고 듣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성찰이 필요할 때다. ‘읽기의 힘, 듣기의 힘’은 개성이 다른 세 지식인이 강연과 토론을 통해 그런 성찰이 왜 필요한지를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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