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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베어벡을 죄인이라 부르는가

선수 차출도 힘겨운 ‘후진적 시스템’ 놔두고 감독 책임만 들먹여

  • 최원창 축구전문기자 gerrard@jesnews.co.kr

누가 베어벡을 죄인이라 부르는가

누가 베어벡을 죄인이라 부르는가
이제 와 돌이켜보면 이란과의 2007아시안컵 8강전을 마치고 “(이라크와의) 준결승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승만 의미가 있다”고 한 핌 베어벡 감독(사진)의 말은 자신의 운명에 대한 예언이었다.

비록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숙적 일본과의 3, 4위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3위(2011아시안컵 본선 진출권 획득)를 차지했음에도 베어벡은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거두지 못하면 남은 임기에 상관없이 한국을 떠나기로 작정했던 모양이다.

베어벡은 누구보다 한국을 좋아하고, 성실하면서 선수들에게 지지를 받은 지도자다. 무색무취의 전술 운용에다 K리그와의 잦은 충돌로 비난의 화살을 받았지만 그는 분명 2002한일월드컵 4강 공신록에 이름을 올렸고, 난파 직전의 한국대표팀을 구하기 위해 딕 아드보카트와 함께 한국을 다시 찾아 위기를 수습한 친구였다.

그는 아시안게임 4위에 이어 아시안컵에서 졸전 끝에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누가 베어벡을 ‘죄인’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2006년 6월로 돌아가 아드보카트 후임자로 베어벡이 아닌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도자가 부임했다면 올 여름 아시안컵의 성적표는 과연 달라졌을까?

결과적으로 한국은 베어벡이 낙마하면서 2000년 허정무 감독 이후 또 한 번 A대표팀-올림픽팀의 통합 운영에 실패했다. 올림픽대표팀은 김호곤 축구협회 전무와 홍명보 코치 등 국내 지도자들이 물망에 올라 있고 (8월2일 현재), A대표팀은 차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2006독일월드컵을 우승으로 이끈 마르첼로 리피(59), 독일을 3위에 올려놓은 위르겐 클린스만(43), 파비오 카펠로(61) 전 레알 마드리드 감독 등이 현재 쉬고 있으므로 지금이 세계적 지도자 영입의 적기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한국축구의 시스템’은 베어벡이 아닌 어느 지도자를 대입해도 똑같은 답이 도출될 수밖에 없는 후진적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협상 불가능한 한국축구 현실에 실망

우리는 항상 외국인 감독에게 한국을 이해하라고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하지만 외국인 감독에게서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려면 그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동반돼야 한다. 이 점에서 대한축구협회와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베어벡에게 사죄해야 한다.

베어벡이 지난해 11월 K리그 챔피언결정전을 앞둔 수원 삼성과 성남 일화 선수들을 본선 진출이 확정된 아시안컵 예선을 위해 이란으로 데려간 까닭은 무엇일까? 당시 베어벡은 K리그를 배려하지 못하는 고집불통으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그가 선수 차출을 강행한 것은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이 가교 구실에 무능한 데다 각 구단의 치사한 처사 때문이었다.

당시 K리그 4강팀은 대표선수가 발표됐음에도 베어벡에게 선수 차출을 미뤄줄 것을 요청하지 않았다. 베어벡은 당연히 선수 차출을 진행했다. 그러나 막상 챔피언결정전 진출팀이 결정되자 성남을 시작으로 수원에서도 선수 차출에 난색을 표했다. “진작 얘기했으면 빼줬을 텐데 왜 이제야 말하느냐”고 베어벡은 항변했다. 문제는 그 뒤다. 베어벡은 두 구단이 먼저 선수를 대표팀으로 보내주면 대표팀 배제를 해줄 요량이었다. 하지만 두 구단은 베어벡을 믿지 못하고 “선수를 돌려보낸다고 약속하면 파주(대표팀 연습구장)로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명백한 규정 위반이었다. 이런 식으로 물러섰다가는 감독의 영이 설 리 없었다. 베어벡은 구단들의 안하무인격 처사에 비난이 쏟아질 것을 감수하면서도 결국 선수 차출을 강행했다.

베어벡은 지난해 말 K리그 팀들에게 올림픽대표팀 선수들의 소집훈련 필요성을 강변하며 합숙훈련을 약속받았다. 이 자리에는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의 고위 관계자들이 함께했다. 그러나 1월 카타르 8개국 친선대회 출전이 프로축구연맹 이사회를 통해 무산됐다. 각 구단이 여러 이유를 들면서 결국 약속을 어긴 꼴이었다.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은 대표팀과 K리그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분쟁이 벌어진 뒤 수습도 못하는 무능함을 보였다.

이런 와중에 아시안컵을 앞두고 소집 시한이던 6월23일, K리그 구단들은 프로경기가 있다는 이유로 소집을 하루 늦춰달라고 요청했다. 베어벡이 이를 들어줄 리 만무했다. 더 이상 협상은 의미가 없으며 규정대로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4년 주기 위기론은 한국축구 무능의 상징

한국축구는 4년마다 감독 경질의 위기를 겪었다. 1996년 박종환, 2000년 허정무, 2004년 코엘류에 이어 2007년 베어벡까지 경과는 어느 때나 비슷했다. 그리고 감독 경질이 아시안컵을 전후해 벌어졌다는 점에서 아시안컵은 한국대표팀 감독의 무덤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월드컵을 앞두고는 ‘족집게’ ‘벼락치기’에 능숙하게 대처했지만 상시체제 때는 위기를 자초한 한국축구는 한국사회와 너무도 닮았다.

히딩크 감독 시절 이용수 기술위원장(현 세종대 교수)이 가교 구실을 해내며 대표팀 전력 강화에 나설 수 있었지만, 이후 한국축구는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을 뿐 지원보다는 방목에 그쳤다. 6년간 한국과 인연을 맺으면서 스스로 ‘지한파’라고 말하던 베어벡 역시 고립무원의 지경에서 코엘류와 본프레레의 길을 걷고 말았다. 물론 코엘류와 본프레레는 자진사퇴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경질이었다는 점에서, 스스로 물러난 베어벡은 잔여연봉 계산과 관련해 주판알을 튕기는 대한축구협회의 고민을 깔끔하게 해결해줬다.

비록 베어벡이 실패의 멍에를 뒤집어썼다고는 하지만 그를 죄인처럼 돌려보내서는 안 된다. “수고했소! 당신은 우리의 진정한 친구였고 앞으로 더욱 멋진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겠소”라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야 한다. 실체 없는 여론이 베어벡이 물러나야 한다며 내세운 이유대로라면 2002한일월드컵 남미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할 뻔한 스콜라리야말로 경질돼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는 본선에 올라 브라질의 5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2006독일월드컵 본선에 힘겹게 올라온 프랑스의 레몽 도메네크 감독은 여전히 지휘봉을 잡아 유로2008을 지휘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7.08.14 598호 (p68~69)

최원창 축구전문기자 gerrard@je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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