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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펴낸 정수복 씨

“한국 풍토에서는누구나 신정아 될 수 있다”

‘사기치는 한국사회’ 냉철한 분석·통렬한 비판·처방전 제시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한국 풍토에서는누구나 신정아 될 수 있다”

“한국 풍토에서는누구나 신정아 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염치없는 사건들의 뿌리는 무엇일까. 학력을 속인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나 연구실적을 뻥튀기한 황우석전 서울대 교수, 겉으로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듯 자랑하지만 뒤로는 온갖 부정한 짓을 서슴지 않는 기업들. 편가르고 사기치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는 사람들의 심리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최근 이런 의문을 명쾌하게 풀어준 이가 있다.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 초청연구원으로 있는 정수복(52) 씨가 그 주인공. 자신을 ‘자유롭게 떠도는 지식인(freely floating intellectual)’이라고 말하는 그는 환경운동연합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크리스찬 아카데미 기획연구실장 등을 지내고 KBS 대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그동안 그는 물질적 이해로부터, 권위로부터, 허황된 명예로부터 자유로운 지식인이다.

“1980년대 유학 이후 두 번째 파리 생활을 위해 2002년 서울을 떠났다. 한국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살았다. 한국사회 안에 들어가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인터넷도 전화도 편지도, 한국책 독서도 하지 않고 무작정 파리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그는 2005년 EHESS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당시 유네스코본부 사회과학국장이던 함재봉 박사(전 연세대 교수)의 ‘유교적 민주주의: 형용모순인가’라는 강연을 듣고 대학 시절부터 갖고 있던 한국 유교전통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즉, 그는 멀찌감치 떨어져 한국사회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고 싶어졌던 것이다.

“모든 게 궁금해졌다. 왜 우리 아이들은 중학교에만 들어가도 1년 위 선배에게 꼼짝 못하나. 왜 한국사회는 개인보다 국가중심 사회인가. 왜 우리는 ‘빨리빨리병’에 걸려 있나. 학벌, 학연, 지연, 혈연은 언제부터 따지게 됐을까. 왜 한국사회에는 사기가 많고,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 많은가. 왜 갈등을 풀려 하지 않고 대충 무마하는 것을 미덕이라고 여기나.”



이듬해 출장차 파리를 방문한 기자는 우연히 그와 함께 오르셰미술관을 가게 됐다. 당시 미술관에선 ‘세잔과 피사로’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천재였지만 가난했던 세잔과 한참 많은 나이에도 친구처럼 또 후견인처럼 세잔을 도왔던 피사로, 두 사람이 같은 장면을 그린 그림을 나란히 전시하고 있었다. 같은 장면, 같은 세계를 바라보지만 세잔의 그림은 강하고 인상적인 반면 피사로의 그림은 따뜻하고 감미로웠다.

미술관을 나와 함께 파리 뒷골목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다가 피곤에 지쳐 레스토랑에 들어갔을 때, 그는 난데없이 유교와 한국사회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런데 이미 수많은 이들이 한국인론과 한국사회 비판서를 펴냈지만 정씨의 생각은 크게 달랐다. 마치 세잔과 피사로가 바라봤던 세상만큼이나 달라 보였다.

그의 한국사회 비판론이 이번에 책으로 나와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생각의나무 펴냄)이 바로 그것. 부제는 ‘당연의 세계 낯설게 보기’. 기존의 ‘한국인론’과 달리 정씨는 이번 책에서 총체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인의 감추어진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한국사회의 관습, 관행, 습관, 가치관이 언제 어떻게 형성됐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밝히고 있다. 특히 그는 한국인 공통의 사고방식을 ‘문화적 문법(cultural grammar)’이라는 용어로 정리했다. 우리가 말할 때 문법을 의식하지 않고 말하듯, 의식하지 않고 행위하게 하는 것이 바로 문화적 문법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허위 학력 문제도 ‘문화적 문법’이라는 틀로 원인을 짚어낼 수 있나.

“나는 올해 신정아 사건과 2005년 황우석 사건의 본질을 조금 다른 차원에서 본다. 신정아 황우석 씨 개인에게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과연 그게 그들만의 문제인가? 한국사회가 갖고 있는 가치관이나 행위양식, 즉 문화적 문법을 보면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그들에게 돌출돼 나타난 것이다.”

“한국 풍토에서는누구나 신정아 될 수 있다”

정수복 씨는 자신의 책에서 지금 우리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계보학적으로 밝혔다. 1915년 건립된 이화여고 심손기념관 앞에서 사색에 잠긴 정씨.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문화적 맥락을 봐야 한다. 문화적 문법은 개화기 이후 식민지 시대를 겪고, 광복 이후 산업화를 거치면서 선진국이 되려고 발버둥쳐온 지난 한 세기 동안의 습관이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는 뒤늦게 출발한 나라이기 때문에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과도한 목표를 설정해놓고 빨리 달성해야겠다는 속도지상주의에 빠져 있었다. 개화기 때부터 약육강식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논리가 정착했고, 박정희 시대에 그것이 가속화했다. 우리 사회에서 많이 쓰는 말 속에서 우리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과정의 정당성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를 암시하고, ‘윤리, 도덕 나발’이라는 말처럼 ‘윤리, 도덕’을 경시하는 말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인 윤리규범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가 정리한 ‘문화적 문법’은 크게 근본적 문법과 파생적 문법으로 구별된다. 근본적 문법이란 무교(巫敎)에서 시작해 도교 불교 유교라는 오랜 종교문화적 전통에서 만들어진 ‘기저층’으로 현세적 물질주의, 감정우선주의,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 갈등회피주의의 형식으로 드러난다. 이 기저층의 문화에서 파생돼 개화기 이후 역사적 상황에서 형성된 문법이 파생적 문법으로 감상적 민족주의, 국가중심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 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 이중규범주의 등으로 나타난다. 이 12가지 구성요소가 얽히고설켜 한국사회의 문제점으로 분출된다는 것이다.

-신정아 황우석 사건을 문화적 문법으로 말하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나.

“두 사건 모두 이중규범주의, 속도지상주의, 근거 없는 낙관주의, 수단방법 중심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순서를 제대로 밟지 않고 뭘 빨리 달성하려는 게 문제다. 자기 능력에 맞는 목표를 잡아야 하는데, 세계 최고의 과학자니 최고 큐레이터니 해서 ‘하면 된다’는 근거 없는 낙관주의 같은 것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특히 황우석 사건은 신정아 사건과 달리 국가중심주의, 감상적 민족주의가 강하게 작용한다. 그런데 “신·황 사건이 우리에게 더 충격을 준 것은 그들이 아름다움과 진리를 다루는 예술계, 학계에 종사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개인을 단죄하고, 검증제도와 윤리헌장을 만드는 일 같은 국지적인 문제에 매몰돼선 안 된다. 우리 사회가 가진 가치관, 사고방식, 문화적 문법의 뿌리를 찾고 그것에서 근원적 해결책을 찾는 게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이 이슈가 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이슬람 국가에 들어가선교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감상적 민족주의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타 문화에 대한 이해와 대화 부족이 가져온 결과다. 세계화 시대에는 우리와 다른 종교와 문화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문화적 문법을 부정적으로만 봤는데, 그것이 우리의 가치관이고 습관이며 행동양식이라면 긍정적인 요소도 있는 것 아닌가.

“민족주의와 국가중심주의가 있어서 독립도 했고 경제성장도 이룩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런 가치관이 낳은 부정적 측면이 강해 그것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화 시대이기 때문에 민족주의를 넘어 보편적 가치를 찾아야 한다. 가족주의, 연고주의, 권위주의는 과거 국가가 일사불란하게 국민을 통치할 때 필요한 가치관이었지만 지금은 개인의 창의성이나 상호존중, 인권 등의 보편가치가 더 필요하다. 각 시대에 맞는 나름의 문법이 있는 법이다. 60~70년대 한국사회에 긍정적 요소였던 속도지상주의만 봐도 그렇다. 결국 그로 인해 사고공화국이 된 것 아닌가.”

-외국에서도 우리와 같은 문화적 문법을 갖고 있지 않나.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서구 선진국뿐 아니라 사회주의라는 보편적 이념을 내세웠던 소련사회 등 다른 나라 사람들도 특수한 가치를 갖고 개별적 이익을 추구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그것들이 뿌리내리는 문화적 토양과 사회적 기능이 우리와 다르다. 각각의 구성요소가 나타나는 강도와 형태의 문제다. 내가 지적한 12가지 문화적 문법은 국내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나는 특수한 문법이다. 보편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문화적 문법들이 너무 강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어느 하나가 깨져도 금세 다른 것이 커져 그것을 살려낸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기가 어렵다.”

-그리스 신화 이야기 같다. 목을 쳐도 다시 살아나는 히드라….

“그래서 한국 유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흔히 그 영향이 ‘끈질기다’ ‘집요하다’ ‘지속적이다’라고 표현한다. 문 앞에서 쫓아내면 뒷문으로 돌아 들어와 안방을 차지한다고 한다. 문화적 문법은 정말 질긴 놈이다.”

정씨는 문화적 문법을 고치기 어려운 이유를 10가지로 제시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손해 보는 짓 하지 말자는 주의’다. 위에서 언급했던 당연한 세계, 잘 돌아가는 듯한 사회에 딴죽 걸지 말라는 암묵적 합의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승희 시인의 표현처럼 작심하고 ‘당연의 세계에 소송을 걸지’ 않고는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위의 오래된 문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기 위한 뇌관이 ‘개인주의’라고 지적했는데….

“개인주의란 외부의 지시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의미를 내가 만들고 내 인생을 조각품처럼, 예술작품처럼 만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자기 인생의 참주인이 되는 것이다. 개인이 존중되지 않는 한 한국사회에서 공동체의 논리 앞에 개인을 줄 세우는 오래된 문법은 계속 통용될 것이다.”

-우리보다 뿌리 깊은 서구의 개인주의에도 한계가 있지 않은가.

“서구사회는 개인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해 공동체가 파괴됐다. 마약 범죄, 알코올 중독, 이혼율 증가, 불면증, 청소년 범죄 등이 모두 여기서 나왔다. 2~3세기 동안 개인주의가 계속되면서 부정적 측면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다시 공동체주의를 부르짖고 있다. 반면 우리 사회는 서구문화가 유입된 지 1세기가 지났는데 여전히 공동체 문화를 답습하고 있고, 개인의 등장을 억압해왔다. 껍데기만 민주주의가 탄생한 것도 그 때문이며, 절름발이 근대화를 이룬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창조적이고 독자적인 인간형이 필요한 시대다.”

-문화적 문법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문화적 교양층이 형성돼야 한다.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의미를 부여하는 ‘성찰적 인간’이 필요한데, 40대 이상 남성들은 기존의 문화적 문법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바꾸려 하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기존 문법을 따르자니 불이익이 오고, 저항하자니 아직 힘이 없지만 그래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또한 남녀 불평등이 아직 높기 때문에 여성들이야말로 문화적 문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집단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두 집단이 새 문법을 만드는 주체, 즉 문화적 교양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책 출간을 위해 7월 말 귀국한 정씨는 8월 중순 다시 파리로 돌아가 ‘자유롭게 떠도는 지식인’의 삶을 살아갈 예정이다. 현재 쓰고 있는 파리 3부작 ‘도시공간’ ‘문화’ ‘역사’를 먼저 착수했는데,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 새치기를 했다. 언젠가 그가 들고 올 파리 3부작이 기다려진다.



주간동아 2007.08.14 598호 (p54~57)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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