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8

..

“우리당 해체 없이 대통합 턱도 없다”

불임정당 비난 피하려 출마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7-08-08 13:4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우리당 해체 없이 대통합 턱도 없다”

    <b>약력</b><br>·1935년 충남 천안 출생<br>·서울고·서울대 법대 졸업,<br>미국 조지타운대 외교학과(수학)<br>·제11·12·14·15· <br>16·17대 국회의원, <br>민추협 상임운영위원, <br>민주당 부총재,<br> 새정치국민회의 사무총장,<br>새천년민주당 대표<br>·현재 17대 국회의원, <br>중도통합민주당 <br>대선 경선후보

    “총체적 위기에 처한 국가와 당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제17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것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미스터 쓴소리’ 중도통합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7월26일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올해 나이 72세인 그는 국회의원 6선으로 현역 최다선 의원이다. 의정활동 경력은 20년이 넘는다. 1975년 신민당 조윤형 부총재 보좌역을 시작으로 정치권에 입문한 지 올해로 32년째다.

    정치권 안팎에서 그가 원칙과 소신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사람은 없다. 그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지만, 2004년 노 대통령 탄핵을 이끈 주역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탄핵의 여파로 거센 역풍이 불어닥칠 때 오히려 그는 자신의 지역구(서울 강북)를 버리고 민주당의 불모지인 대구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비록 낙선했지만 그는 소신과 원칙을 지켰다.

    지난해 서울 성북을 재보선에서 군소정당으로 전락한 민주당 간판으로 출마해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조 의원의 남다른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출마를 선언하자마자 각종 여론조사의 대선후보 지지율에서 범여권 후보군 중 단숨에 2~3위로 올라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그가 이 시점에서 갑작스레 대권 도전을 선언한 까닭은 무엇일까. 7월31일 오전 국회도서관 의원열람실에서 조 의원을 만났다. 지난해 국회도서관 이용 우수의원상을 수상한 조 의원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도서관을 찾는다고 한다.

    실현 가능한 구체 정책 이제부터 준비

    - 대선 출마를 결심한 것은 언제쯤인가.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연초부터 간간이 출마 권유를 받긴 했지만, 대통령은 꿈꿔본 적이 없다. 나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이끌 만한 능력이나 역량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국민에게 봉사하고 좋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노력해왔을 뿐이다. 그렇게 국회를 지키는 것으로 정치인생을 마감하려 했다. 정치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대통령을 하겠다는 큰 뜻을 품었다면 그에 따른 인적, 물적 준비를 했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내 일신의 안위만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대선 출마를 결심한 것은) 3주 정도밖에 안 됐다.”

    - 대선 출마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통합)민주당은 명분과 원칙을 갖춘 명예로운 대통합을 원했지만, 최근 명분과 원칙이 없는 대통합 국면이 전개되고 있을 뿐 아니라 안팎의 압력에 내몰린 상태다. 게다가 마땅한 대선후보가 없는 불임정당이라는 비판이 일자, 당내 많은 동지들이 나서달라는 권유를 해왔다. 총체적으로 위기에 빠진 국가도 걱정됐다.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의석수 14석의 민주당은 6월27일 김한길 의원 등 의원 20명이 열린우리당을 뛰쳐나와 만든 ‘중도개혁통합신당’(이하 통합신당)과 합당해 통합민주당을 만들었다. 민주당 박상천 대표와 통합신당 김한길 대표가 통합민주당의 공동대표를 맡았다. 이로써 통합민주당은 의석수 34석의 번듯한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7월24일 제3지대 신당을 통한 범여권 대통합을 이유로 이낙연 김효석 의원 등 4명이 탈당한 데 이어, 2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의원과 유선호 의원 등 2명이 추가 탈당해 28명으로 줄었다.

    여기에 통합신당 출신인 김한길 대표계 20명이 당적만 유지한 채 제3지대 신당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가칭·이하 대통합신당) 창당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통합민주당이 당 차원에서 신당에 합류하지 않을 경우 탈당할 것이라며 박 대표 등 구 민주당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

    통합민주당 처지에서는 기로에 선 셈이다. 의석수 8석의 초미니 정당으로 전락하느냐, 아니면 신당에 동참하느냐. 조 의원이 더는 좌시할 수 없었던 이유다.

    - 김한길 대표 등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김 대표를 포함한 20명의 의원은 대통합을 명분으로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통합신당을 만들고, 또 민주당과 합당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했다. 벌써 창당을 두 번이나 한 것이다. 그런데 또다시 창당을 추진하면서 같이 하지 않으면 탈당하겠다고 한다. 참 교묘한 정치인이다.

    당을 만드는 것은 정치인 자신뿐 아니라 국민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다. 우리 헌법에 정당은 국가의 보호를 받고, 국가로부터 보조를 받는다고 돼 있다. 그래서 통합신당을 창당했을 때 국고보조금 13억원인가를 받은 것으로 안다. 국민 혈세로 조성된 국고보조금을 받고 창당했으면 끝까지 책임지고 명분 있게 해야 한다. 창당하고 합당하고, 이제 와서 대통합을 해야 한다며 또 탈당한다고 하니, 이는 최소한의 정치도의와 윤리에도 어긋나는 행위라 생각한다. 이러니 어떻게 한국 정치가 발전하고 정치윤리가 확립될 수 있겠는가. 정치행위로서 전혀 명분 없는, 대단히 잘못된 행위다.”

    - 얼마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 의원이 탈당한 것에 대해 깊은 배신감을 토로한 적이 있다. 김 의원이 탈당한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본인 의지도 있었겠지만, 결국 김 전 대통령의 의중이 실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김 전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비(非)한나라당 정치세력이 하나로 뭉쳐 대선구도를 1대 1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주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박상천 대표나 민주당 내부의 대세가 그런 무조건식 대통합에 응하지 않으니, 김 전 대통령이 개별적으로 이탈시키려 하는 것 같다. 김 의원의 탈당은 사실 상징적 의미가 아주 크다. 김 전 대통령이 ‘민주당에 대해서는 애정과 관심을 접는 것이 아닌가’라고도 해석될 수 있다.”

    - 김 전 대통령이 통합민주당에 대한 애정을 거둬들이는 것을 우려하는가.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이 너무 직접적으로 압력을 가해 오히려 당내 반발이 거세졌다. 더구나 온갖 비판과 반대 여론에도 공천을 하고 총력을 기울여 당선시킨 김 의원이 3개월도 안 돼 탈당해버리자 민주당 당원들이 느낀 배신감과 상처가 여간 큰 게 아니다.”

    - 김 전 대통령의 현실정치 개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김 전 대통령은 요즘 줄 서다시피 방문하는 대선주자들에게 어떤 방침이나 지침 등을 내리는 것 같다. ‘무조건 대통합을 해야 한다’ ‘시기가 늦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대통합에 걸림돌이 되고 실패하는 지도자는 다음 총선에서도 실패한다’는 극언을 했다. 이는 박상천 대표를 지칭한 것이 분명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전직 대통령은 국가원로로서 현실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는 사안에 직접 개입해 어느 한쪽을 두둔하거나 치우치는 발언으로 논란이나 비판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이는 국가원로로서의 품위와 존엄을 해치는 행위다.”

    - 대통합신당에 통합민주당의 참여 여부가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대통합신당 참여에 어떤 입장인가.

    “대통합은 원론적으로 옳은 방향이다. 양당제도를 복원해 대선구도를 1대 1로 가는 것이 우리 정치가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문제는 대통합신당이 정당정치의 원칙, 즉 기본 노선이나 정책 노선을 같이하는 사람이나 세력이 모여 결성하는 정치 결사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신당에 참여하는 세력을 보면 열린우리당 탈당파, 통합민주당 탈당파가 대부분이고, 손학규 역시 한나라당 탈당파다. 시민사회 세력도 사실 실체가 별로 없다. 여기에 통합민주당이 5분의 1 지분으로 참여하라는 것인데, 도저히 격이 맞지 않는다. 통합민주당은 현역 의원은 몇 명 안 되지만 50년 역사와 정체성을 지닐 뿐 아니라, 45만 당원이라는 전국조직과 호남 쪽에 일정 지지기반을 갖추고 있다.

    또 신당 창당 이후 열린우리당과 당대당 통합을 한다고 하는데, 이는 명분이 전혀 서지 않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열린우리당을 전부 배제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당 차원에서는 참여시켜선 안 된다. 국정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전혀 지지 않고 통합신당에 참여한다면 대선에서 필패다. 국정 실패 계승정당이고, 도로 열린우리당이 될 텐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정당이 오래가겠는가. 이번 대선이 끝나면 그대로 소멸하지 않겠는가. 열린우리당은 그냥 지속해나가거나 해체해야 한다.”

    - 범여권 대통합신당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통합)민주당은 신당이 만들어지면 1대 1 당대당 통합을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열린우리당이 당대당으로 그대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 열린우리당이 먼저 당대당 통합방식으로 신당에 합류한다면?

    “그럼 대통합은 어려워진다. 그것이 지금 당내의 대세다.”

    - (통합)민주당이 대통합신당에 합류할 경우, 그때도 경선에 출마할 것인가.

    “조건이 다 충족되고 원칙과 명분 있는 통합이 이뤄진다면 굳이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지금 같아서는 그럴 전망이 안 보인다.”

    - 범여권 일각에서는 열린우리당을 껴안아야 하는 이유로 최소한 100만 표 정도의 지지 세력을 가지고 있고, 그래야 대선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치라는 것이 원래 명분과 현실에서 상충하는 경우가 많다. 명분만 가지고도, 세만 가지고도 안 되는 것이 정치다. 사실 민주당의 고민도 이것이다. 명분에서 우리가 우위에 있는데, 세가 뒤따르지 않아 고민이다. 그렇다고 명분을 포기할 수는 없다.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 때문에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중도세력을 끌어오는 데 주력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 대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범여권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다고 보는가.

    “만일 각자 대선후보를 선출해야 한다면 후보 단일화는 불가피하게 거쳐야 할 과정이라 생각한다. 기본 이념과 노선에는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한나라당의 집권을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입장이기 때문이다.”

    - 현재 각종 여론조사 결과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범여권 후보군 중 1위를 달리고 있다. 범여권 후보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손 전 지사가 범여권 후보 가운데 우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한나라당에 있었던 만큼 현 정부의 국정 실패와 관계없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반면 명분상 약한 것은 어제까지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나라당 후보와 대결하는 것이 정치윤리나 정치도의상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다. 1~2년간 잠시 몸담았다면 몰라도 손 전 지사는 한나라당에 14년간 몸담으면서 국회의원 3선, 장관, 경기도지사 등을 지냈다. 한나라당이 사실상 손 전 진사의 본류라고 할 수 있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경선 과정에서 탈당하고 나온 것은 명분상 취약점일 수밖에 없다. 벌써 ‘짝퉁 한나라당’이라는 등 후보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 현재 범여권 후보 중 후보 단일화 상대로 꼽을 만한 이가 있다면?

    “손 전 지사를 빼면 대부분 열린우리당 출신이다. 더구나 총리 두 분, 장관 세 분 등 국정 실패에 대한 책임이 남다른 분들이다. 그래서 대답하기 어렵다.”

    현재 범여권 대선후보를 보면 이해찬, 한명숙 전 총리, 정동영, 천정배, 김두관 전 장관, 김혁규, 신기남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다.

    - 오랜 기간 정치에 몸담았다. 이합집산을 일삼는 요즘 정치를 보면 무엇을 느끼나.

    “요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보면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다. 30, 40대 초선이 주류다. 물론 모처럼 국회의원이 됐는데 열린우리당이 어려워지면서 재선 전망이 어두워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다. 이번 대선과 총선에 실패하더라도 4년 후에 또 총선이 있고, 5년 후 또 대선이 있지 않은가. 뭐가 두려워서, 폭풍을 만났다고 끝까지 가보지도 않은 채 선장만 남겨두고 배에서 내려 보트를 타는지 모르겠다. 너무 안타깝다. 손학규 후보나 김근태, 정동영 후보에게도 한 번 쉬는 것이 어떠냐고 말한 적 있다. 내 충정이 그렇다.”

    - 이명박 전 시장의 ‘대운하 공약’, 박근혜 전 대표의 ‘줄푸세 공약’처럼 상징적인 대선 공약을 준비한 것이 있는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대선 출마를 결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준비한 것이 없다. 다만 평소 참여정부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지켜보면서 나름대로 고민한 것을 지난번 출마선언 때 밝혔다. 그때 선언문에서 ‘대한민국을 바로세우겠다’고 했다.

    대통령이라는 직위의 품위와 존엄이 지난 4년여 동안 너무나 큰 상처를 입었다. 만신창이가 됐다. 이를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는 일이라 생각해 바로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구체적인 정책은 이제부터 준비할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