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65

2016.11.30

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세계 정상 밴드가 선물할 신비한 순간

콜드플레이 첫 내한공연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6-11-29 15: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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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는 물론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뒤덮고 있다.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고, 여기가 바닥이려니 싶었는데 지하실이 있으며, 그 밑에 벙커가 또 있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생전 기억할 일이 없던 검찰 조직도와 세력 관계를 공부하고, 대통령비서실 비서관 이름과 배경까지 줄줄 꿰게 된다. 그 와중에 일상의 사소한 것은 휩쓸려가거나, 차마 전시하지 못하고 넘어가게 된다.

    건국 이래 최대 블랙홀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가운데 11월 23일 드디어 ‘비아그라’ 건이 터졌다. 타임라인이 온통 이 아침드라마급 막장 소재로 넘쳐흐르던 무렵, 정오를 기점으로 비아그라를 능가하는 거대한 흐름이 몰아쳤다. 내년 4월 처음으로 내한하는 콜드플레이 공연 티켓 예매가 시작된 것이다. 단 1분 만에 2만5000석 사전 티켓이 모두 판매됐다. 승전한 사람과 패전한 사람 모두 예매 화면을 올리며 웃고 울었다. 공연 주최사인 현대카드에 따르면 티켓을 사려고 동시접속한 인원이 55만 명에 달하니 약 20 대 1 경쟁률을 뚫은 자만 승리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피케팅’(피 튀기는 티케팅)이었던 셈이다.

    2000년 ‘Parachutes’로 데뷔한 콜드플레이는 21세기 이후 밴드 가운데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팀이다. 영국 밴드로는 보기 드물게 발표하는 앨범마다 빌보드 차트 1위를 찍고 밴드임에도 록보다 팝 친화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최근 앨범 ‘A Head Full Of Dreams’에서는 일렉트로니카는 물론이고 R&B까지 수용하고 있다. 이런 특징은 콜드플레이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이지만, 지나치게 상업적 노선을 걷는다는 비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In My Place’가 수록된 앨범 ‘A Rush Of Blood To The Head’와 ‘Fix You’가 수록된 앨범 ‘X&Y’로 한창 승승장구하던 무렵 콜드플레이의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08년 서머소닉 페스티벌(서머소닉)에서였다. 그들은 마지막 날 헤드라이너로 나왔다. 음반 ‘Viva La Vida’로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5만 명이 물샐 틈 없이 들어찬 도쿄 치바마린스타디움, 서머소닉 이틀 중 가장 설레는 공기가 저녁 하늘을 휘감았다. 공연 시작 전 스타디움 펜스를 둘러친 LCD(액정표시장치)에 이런 자막이 흘렀다. 2000년 데뷔했을 때 첫 번째 서머소닉 서브스테이지에 섰던 밴드가 2008년 헤드라이너로 참가하게 됐다는. 미래 거물을 발굴하는 데도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으로 정평이 난 서머소닉의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자막이었다. 콜드플레이로서도 금의환향하는 기분이 아니었을까. 새 앨범에 ‘Lovers In Japan’이라는 곡을 수록할 정도로 일본을 사랑하는 그들이다. 앨범 커버에서처럼 프랑스 민중혁명군의 옷을 입고 나온 콜드플레이는 어느 밴드보다 일본어 멘트를 많이 했다. 그들의 히트곡이 하나씩 연주될 때마다 서로 조금씩 간격을 유지하던 관객도 계속 앞으로 몰리며 싱어롱(singalong)을 이어갔다. 크리스 마틴은 매우 감격한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사운드 좋기로 유명한 일본 공연 시스템이다 보니 그는 계속 무대 이곳저곳을 누비고, 심지어 관객석으로 내려가 콘솔까지 뛰어가는 팬 서비스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서비스의 절정은 본 공연이 끝나고였을 것이다. 멤버 모두가 무대 아래로 내려가더니 콘솔 옆에 설치된 간이무대에 올라가 꽤 긴 인사말과 함께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공연을 했다.



    그 모든 과정에서 나는 그들을 인정하기로 했다. 마틴은 공연 내내 온몸으로 ‘정말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나를 사랑해줘’라고 외치는 듯했다. 아니, 들렸다. 그만큼 그 자리에 모인 모든 관객을 만족시키고 싶다는 진심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10년이 다 돼가는 이야기지만 그때 그 모습은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다. 그리고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Viva La Vida’와 ‘Fix You’를 언젠가 한국에서 한국 관객과 함께 ‘떼창’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그 오랜 작은 바람이, 이제 봄이 오면 이뤄진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을 울릴 거대한 합창을 생각만 해도, 벌써 가슴이 벅차오른다. 경험해본 이만이 아는 그 신비로운 순간을 다시 느낄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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