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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특집|2006 월드컵

축구 진화, 아디다스가 있었다

한발 앞서는 축구용품 제작 혁신… 독일 월드컵서 브랜드 이미지 업그레이드 준비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축구 진화, 아디다스가 있었다

축구 진화, 아디다스가 있었다
12월15일 오후 서울 종로2가 아디다스 매장.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뛰는 차두리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아디다스에선 벌써부터 2006년 독일월드컵이 시작됐다. 각국 국가대표팀의 유니폼, 축구공, 축구화가 손님들을 기다린다. 아디다스는 축구를 비롯해 월드컵으로 글로벌 브랜드가 된 월드컵의 또 다른 축이다.

월드컵사(史) 곳곳엔 아디다스의 자취가 남아 있다. 아디다스의 고향은 독일. 그래서 독일월드컵은 아디다스에 더욱 특별하다. 스포츠 용품을 더 팔 기회이며 브랜드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할 호기다. 왜 축구를 사랑하는 이들은 아디다스에 열광하는가. 아디다스의 뿌리가 축구이기 때문이다.

아디다스의 창업자 아디 다슬러는 1920년 독일 헤르조게나우라흐에서 최초로 스포츠화를 제작했다. 그는 25년 가죽으로 만든 축구화를 개발한다. 초기의 판매 방식은 주문을 받아 제작하는 형태였다. 다슬러는 48년 47명의 직원과 함께 가내 수공업 테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아디다스를 설립한다.

아디다스 축구공 FIFA 공식구

다슬러의 꿈은 축구(스포츠)를 더 새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선수들의 기술이 발전하고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아디다스는 진화한다. 아디다스의 혁신은 축구의 발전으로 이어졌고, 축구의 혁신은 아디다스를 살찌웠다. “더 좋은 용품으로 더 나은 경기를 만들겠다”는 다슬러의 장인 정신이 오늘날의 아디다스를 만든 것이다.



축구 진화, 아디다스가 있었다

창업자 아디 다슬러

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옛 서독 선수들은 나사형 징이 달린 축구화를 신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름 하여 베른의 기적. 축구화에 징을 박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바로 다슬러다. 독일의 우승 이후 징 박힌 스포츠화는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아디다스는 축구화 브랜드로 세계 시장에 이름을 알렸다.

아디다스는 축구인들의 요구를 먼저 파악하고, 제품으로 실현함으로써 다국적 기업이 될 수 있었다. 아디다스는 둔탁한 갈색으로 이뤄져 공을 찰 때 통증을 느끼게 했던 무거운 가죽 축구공을 63년부터 고기능성 경기구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1970년 FIFA(국제축구연맹)가 아디다스의 축구공을 공식구로 채택하면서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는다.

“아디다스는 축구에서 항상 우승팀이었습니다. 우리는 축구 역사와 열정을 함께 나누었습니다.”(아디다스살로몬그룹 허버트 하이너 회장)

아디다스는 스포츠 마케팅을 통해 성장해왔다. 세계 최초의 스포츠 마케팅은 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아디다스가 제시 오웬스에게 러닝화를 무상으로 대여해준 것이다. 오웬스는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며 전설이 됐고, 그가 신었던 러닝화는 아디다스의 신화가 됐다.

아디다스가 스폰서 하는 선수들은 1800억원에 종신계약을 맺은 데이비드 베컴을 비롯해 지네딘 지단, 올리버 칸, 미하엘 발라크, 라울 곤잘레스 등이 있다. 독일월드컵 본선 진출국 중 나이키가 축구용품을 지원하는 나라는 프랑스, 스페인, 독일, 일본, 아르헨티나, 트리니다드토바고가 있다.

아디다스의 축구 마케팅은 독보적이다. 아디다스는 UEFA챔피언스리그 AFC아시안컵을 스폰서 했고, 2014년까지 월드컵을 후원하기로 계약했다. 조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수십 년간의 아디다스와 FIFA의 파트너십은 비즈니스를 넘어 진정한 우정으로 발전해왔고, 축구와 아디다스는 하나가 됐다”고 말했다.

2004년 아디다스의 순매출액은 64억7800만 유로(약 8조4000억원), 순수익은 3억1400만 유로(약 4000억원)다. 독일월드컵 특수로만 아디다스는 10억 유로(약 1조3000억원)를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한다. 축구를 더 나은 스포츠를 만들겠다는, 한 우물을 판 80년의 노력이 아디다스가 스포츠인의 벗이 된 이유다.







주간동아 2005.12.27 516호 (p72~73)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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