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3

2005.12.06

“스크린과 찐한 ‘연애 중’이에요”

  •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5-11-30 16: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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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과 찐한 ‘연애 중’이에요”
    배우 전미선(33)을 보면 두 가지 점에서 깜짝 놀란다. 하나는 체구가 참 작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참 예쁘다는 점이다. 자그마한 얼굴에 자그마한 이목구비가 오목조목 박혀 있다. 도발적이진 않지만 은은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도드라져 보여야 살아남는 연예계에서는 이 장점은 곧 단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KBS 드라마 ‘토지’에서 ‘봉순이’ 아역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이후 조연에 머물러야 했고 단막극 주연으로만 모습을 비쳐야 했던 이유는 여기에 있다.

    매우 낯익은 얼굴이지만 그 얼굴을 보고 금방 이름 석 자를 떠올리기 쉽지 않다. 아마 상당수는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의 송강호 아내로, 좀더 눈썰미가 있다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의 이병헌 아내 아니면 드라마 ‘인어아가씨’에서 장서희 친구 정도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젠 누구누구의 아내나 친구 등으로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전미선은 12월9일 개봉하는 영화 ‘연애’(감독 오성근, 제작 싸이더스FNH)에서 주인공 ‘어진’ 역을 맡아 오롯이 혼자만의 힘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게 됐기 때문이다.

    드라마 ‘토지’ 봉순이 아역으로 데뷔

    개봉을 2주일 정도 앞둔 11월23일 만난 그는 목소리가 상당히 쉬어 있었다. 데뷔 이후 이렇게 많은 인터뷰와 방송 출연을 해보긴 처음이란다.

    “입이 아플 정도예요. 다른 분에 비하면 너무나도 적게 하는 것이지만, 제게는 첫 경험이잖아요. 고맙게 감수해야 하는데, 힘들긴 하네요.”(웃음)



    영화 ‘연애’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싸이더스FNH 차승재 대표가 전미선을 주인공으로 염두해뒀던 작품이다. 하지만 그는 출연을 망설였다. ‘누가 전미선의 영화를 봐줄까, 내가 그 정도의 힘이 있나?’ 하는 의문과 두려움이 들었고, 그런 무모해 보이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 그래서 차 대표의 전화를 받지 않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놓기도 했다. 하지만 운명이었을까. 전화기 전원을 켜는 순간 차 대표의 전화가 바로 왔다고 한다.

    “차 대표님이 ‘기회가 있는데, 왜 안 하냐. 미선 씨를 위한 시나리오다’라고 하시더군요. 또 오성근 감독님도 ‘미선 씨, 솔직히 얼굴에 우울한 느낌이 있잖아. 당신이 아니면 누가 어진이를 맡겠어?’라고 하셨고요. 더 이상 피할 수가 없었죠.”

    이 영화에서 전미선이 맡은 어진은 두 아이를 둔 30대 초반 가정주부다. 무능한 남편 대신 생계를 꾸려야 하는 어진은 액세서리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전화방 아르바이트까지 온갖 일을 다 한다. 결국 보도방 등을 통해 단란주점에서 술을 따르고 몸을 파는 일까지 하게 된다. 그러다 손님으로 온 ‘민수’(장현성 분)라는 남자를 만난다. 세심한 배려와 세련된 매너로 어진을 사로잡는 민수. ‘우리 친구 할래요?’라고 하는 민수에게서 어진은 연애의 감정을 느끼며, 민수 역시 자신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스크린과 찐한 ‘연애 중’이에요”

    영화 ‘연애’의 한 장면(위). 데뷔작인 드라마 ‘토지’가 끝난 후 전미선은 당시 청춘 스타였던 이미연과 함께 청소년 영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에 출연했다(아래).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세 사람이 성 관계를 갖는 ‘쓰리썸’ 장면. 우연히 민수와 함께 있는 어진을 본 민수의 상사는 ‘사회적 보상’을 미끼로 던지며 ‘쓰리썸’을 요구하고, 이에 고민하던 민수는 결국 어진에게 똑같은 요구를 하고 만다.

    “솔직히 지금도 쓰리썸 장면은 거북해요. 시사회 때 그 장면이 나오면 스스로 놀라 제 팔을 막 꼬집을 정도였죠. 어진은 민수에게 사랑을 느꼈고 그와 연애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결국 어진이라는 여성의 아주 예쁘고 로맨틱한 ‘상상’에 불과했던 거죠. 쓰리썸 장면이 그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거고요. 물론 민수도 연애를 했어요. 아주 본능적이면서도 냉혹할 정도로 현실적인 연애를….”

    “스크린과 찐한 ‘연애 중’이에요”
    영화에서 전미선은 어진 역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가난에 찌든 모습, 돌연히 찾아온 연애 감정에 떨려하는 모습, 상처를 받은 뒤 자신만의 감정에서 벗어나려는 모습,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모습 등을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담담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극중에서 어진은 “다신 연애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상 제목도 ‘마지막 연애의 상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연애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저는 늙어 죽을 때까지 연애란 감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봐요. 아무리 남자한테 배신을 당해도 또 다른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게 당연한 본능이죠. 물론 저 역시 여러 번 연애를 해봤고, 어진이처럼 큰 상처도 받아봤어요. 사실 전 스무 살 때부터 결혼을 하고 싶었거든요. 또 사람을 만나면 꼭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 이별에 의한 상처도 매우 컸죠. 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결혼을 꼭 하겠다던 저는 지금까지 결혼을 못하고 있고, 연애만 하겠다는 친구들은 결혼해 잘 살고 있어요.”(웃음)

    10대에 데뷔해 큰 인기를 얻었지만 당시 전미선은 연기에 별다른 애정이 없었다고 한다. 부업 또는 취미 정도로만 생각했고 미술과 의상 쪽 일을 더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연예인이라는 것도 잊은 채 미술 공부를 하기 위해 공공장소의 벽면에 색칠도 해봤고, 의상실에서 심부름하며 일을 배운 적도 있다.

    “그래도 연기를 잊을 만하면 일이 들어왔어요. 그러면 부업처럼 연기를 하고 한동안 딴 일을 하고 그랬죠. 아마 저를 찾는 곳이 전혀 없었으면 연예계를 완전히 떠났을 거예요. 그런데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찍으면서 처음으로 ‘연기가 소중하다’고 느꼈어요. 드라마 ‘왕건’을 찍으면서 ‘내가 연기자구나’ 생각했고, 최근 ‘살인의 추억’을 찍으면서는 ‘이 길을 죽을 때까지 걸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럴 때 ‘연애’를 만나게 됐죠.”

    “스크린과 찐한 ‘연애 중’이에요”
    전미선은 20살 때부터 외쳐오던 ‘결혼’을 잊은 채 연기에만 몰두하겠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은 30대 중반에 들어선 딸에게 ‘남들은 속도 위반을 해서도 결혼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 또는 ‘결혼 못한 건 비정상’이라며 구박하시지만 마음속으로는 이제야 연기의 참맛을 알고 행복해하는 딸의 모습에 무척 뿌듯해하신다”며 활짝 웃었다.

    현재 그는 다음 영화인 ‘요원의 수기’에서 이범수의 철없는 아내 ‘순이’ 역을 맡아 촬영 중이다. 앞으로 주연이든 조연이든 자신에게 맡겨지는 역할이 있다면 가리지 않고 출연할 계획이다. 하지만 당분간 드라마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시간에 쫓겨 배역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 채 촬영하는 드라마에서는 진정한 연기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일에만 몰두할 생각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애를 안 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꼭 사귀지 않아도 어떤 사람에게서 좋은 감정을 느끼고 그를 생각하면서 웃음 짓는 것 역시 연애가 아닐까요? 요즘엔 저보다 어린 남자들을 볼 때 떨리는 감정이 생기더라고요.”(웃음)

    그의 표정은 마치 ‘연애’에 빠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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