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3

2005.12.06

“시련은 있어도 연구는 계속”

난자 파동 황우석 사단에 응원 메시지 쇄도 과학계 생명윤리 인식 부족이 발단에 한몫

  • 권영일/ 과학저널리스트 sirius01@paran.com

    입력2005-11-30 15: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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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련은 있어도 연구는 계속”
    황우석 교수가 배아줄기세포 연구 과정에서 발생한 소속 연구원의 난자 기증을 인정함으로써 생명공학 연구의 투명성과 윤리 문제가 새롭게 부각됐다.

    황 교수는 11월24일 서울대에서 이뤄진 기자회견에서 “2004년 5월 ‘네이처’지 기자가 난자 제공에 대한 확인을 요청해, 여성 연구원들에게 사실 여부를 물어봤더니 확인해줬다”며 “그러나 제공자 중 한 명이 강력히 사생활 보호를 요청해, 네이처에 사실과 달리 답변했다”고 해명했다. 미즈메디 병원의 난자 채취와 관련해서는 “한두 개도 아닌 많은 난자가 공급되는 상황이라, 일부가 특별한 방법에 의해 조달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며 “그러나 노성일 이사장이 ‘별 문제가 없는 난자들이니 연구에만 전념하라’고 말해 더는 확인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의 시인으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국내외로부터 거센 도덕적·윤리적 비난에 직면하게 됐다. 연구 활동에 차질을 빚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줄기세포 분야에 대한 우리나라의 주도권이 약화될 것 같다는 걱정도 나오고 있다.

    인터넷 투표 결과 90%가 공직사퇴에 반대

    황 교수가 책임을 인정하고 공직 사퇴 의사를 밝히자, 누리꾼(네티즌)들이 활동하는 사이트에서는 황 교수를 응원하는 게시물과 뉴스 댓글이 이어졌다. 회견 직후 ‘네이버’가 황 교수의 공직 사퇴 입장에 대해 인터넷 투표를 실시하자, 참가자 4800여명 가운데 90%가 사퇴에 반대했다. ‘야후코리아’가 황 교수팀의 난자 확보 과정의 윤리적 논란에 대해 실시한 인터넷 투표에서는 참가자 1만300여명 중 86%가 “관련 법 제정 이전이므로 아무 문제 없다”고 대답했다.



    여론이 이런지라 정부도 후속 대책을 마련하고 나섰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를 열어 줄기세포 연구의 법적·도덕적 시비의 소지를 원천 차단하고, 공식적인 난자 제공체계 구축 방안 등을 집중 논의키로 한 것이다. 정부는 그럼에도 정책적인 지원은 계속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생명윤리법을 정비해 도덕적·윤리적 가이드라인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황 교수의 기자회견에 앞서 서울대 수의과대학 연구윤리심의위원회(IRB)가 진행한 ‘황 교수 연구팀의 체세포줄기세포 연구를 위한 난자 수급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난자를 제공한 여성 연구원들은 줄기세포 연구가 벽에 부딪히자 자신의 희생으로 연구 성과를 이루기 위해 자발적으로 난자를 제공했다고 하였다. 보고서는 또 “두 연구원 이외의 또 다른 난자 기증 사례는 없었고, 연구팀 내에서의 난자 기증 요구 분위기 등도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황 교수 연구팀의 난자 수급 과정에서 법이나 규정 및 윤리 준칙 위배 사실은 없었다”고 밝혔다.

    황 교수 연구팀은 2004년 사이언스 논문 연구 당시 미즈메디 병원으로부터 난자를 제공받았고, 이 병원 노성일 이사장은 2003년 말까지 난자를 제공한 일부 여성에게 평균 150만원 상당을 지급했다. 노 이사장은 “황 교수 연구팀에 난자를 공여할 때 기증자로부터 동의서까지 받아 문제가 없는 난자임을 명백히 확인해줬다”며, “황 교수는 일부 난자 제공자에게 실비 등이 지급된 사실을 최근 알게 됐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또한 “당시 난자 제공을 위한 특정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이 없었고, 헬싱키 선언 내용도 고용·피고용 등 특수 관계인인 경우 (난자 제공 시) 내재적 기준에 입각해 신중을 기하라는 것”이라며 “이번 사안이 헬싱키 선언에 배치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강압적인 상황에서 난자 기증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연구에 진척이 없자 연구 성과를 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난자를 제공한 만큼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 존엄성을 바라보는 동서양의 문화 차이에서 빚어진 문제일 뿐이라며, ‘한국적 특수성’을 역설한 셈이다. 이런 조사 결과에 대해 국제 과학계가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도 많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은 꼴이 됐기 때문이다. 황 교수팀은 난자 출처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부터 단호하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의 태도를 취해왔다. 결과적으로 이것이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렀다. 과학자에게 요구되는 정직성에 스스로 상처를 냈기 때문이다. 황 교수팀는 난자 의혹이 제기됐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이를 번번이 놓치고 말았다.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은 꼴 ‘아쉬움’

    그러나 이는 황 교수팀만의 잘못은 아니다. 국내 과학계 전체적으로 생명윤리에 대한 인식 부족에서 기인한 측면이 강하다. 국내 생명과학 연구자들이 세계적으로 적용되는 생명연구의 윤리적 기준과 관행에 얼마나 무지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과학연구에서 생명윤리 규정은 국제 과학계의 관행이며, 좋든 싫든 따라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과학계가 연구자들에게 과학정신을 포함해 인문적 가치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이번 사태에 대한 과학계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하다. 한 번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는 반응이 많다. 그럼에도 세계 유일의 맞춤형 난치병 환자 줄기세포 배양기술은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세계줄기세포허브는 인간줄기세포 분야에서 세계적 네트워크의 핵심으로 제대혈, 골수 등의 성체줄기세포를 포함한 모든 줄기세포의 등록, 보관, 분양 등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됐다. 미국과 영국을 제치고 한국이 허브로 거론된 것은 황 교수팀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맞춤형 난치병 환자 줄기세포 배양기술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 온 뒤 땅은 굳게 마련이다. 이번 파문이 전화위복이 돼 황 교수팀이 더욱 연구에 정진해 훌륭한 성과를 내기를 과학계와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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