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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잘 노는 것도 결국 경제력

  • 권명아 문학평론가 cama9@hanmail.net

잘 노는 것도 결국 경제력

잘 노는 것도 결국 경제력
이 글의 제목을 어떻게 붙일까 고민하다 보니, 한국 사회에서는 ‘놀기’를 둘러싼 정확한 규정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놀기 어려운 사회’라고 하면, 가뜩이나 실업률이 높은 현재 실정에서 ‘놀기’란 곧 직장이 없음, 실직의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높다.

‘여가를 즐기기 어려운 사회’라는 표현은 신문이나 매체에 자주 등장하지만, 실은 여가라는 말은 그 어원상 노동 후의 남은 시간, 혹은 노동을 위해 충전하는 여벌의 시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한국의 경우 여가 개념은 일본 식민지 지배 체제 아래에서 형성된 시간에 대한 근대적 규율화 과정을 통한 개념이다. 즉 여가 개념은 일생의 주기를 노동과 그 나머지 시간으로 구분하는 시간에 대한 규율화 기제의 산물이다.

또 ‘인생을 즐기자’고 말한다면 이는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기라’는 광고 문구처럼 프로는 일도 잘하고 놀기도 잘한다는 식의 팬터지를 되풀이할 뿐이다.

대학에서 교양 강의를 주로 하는 선생님으로서 좋은 점은 해마다 신입생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대학에 대한 현실감 없이 기대와 부푼 희망으로 얼굴이 상기된 신입생들이 한 학기 정도 대학 생활을 하고 나면 가장 심각하게 하는 고민은 ‘왜 나는 잘 놀지도 못할까’라는 것이다.

이런 고민이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팔자 좋은 고민 같지만 대학생을 비롯한 20대에게는 매우 절실한 것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학교와 부모의 감시 및 훈육을 벗어나기 힘든 한국의 10대들에게 자유를 상징하는 대학생이 되거나 성인이 되어서도 자유를 구가할 수 없다는 실감은 ‘왜 나는 잘 놀지도 못할까’라는 고민에 함축되어 있다. 이른바 386세대들처럼 청춘을 불사를 ‘적들’도 많지 않은 시대에 대학 신입생들이 청춘을 불사를 만한 대상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기껏해야 학교 앞 술집을 전전하거나 게임방, 몇 번의 엠티를 거치고 나면 딱히 할 만한 놀이가 없는 것이다.



요즘 대학생들의 놀이 문화가 이른바 사회인들이나 직장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은 자주 제기된다. 그 원인이 대학생들이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지 못해서라든가, 대학 문화가 대중문화에 잠식되었기 때문이라든가 하는 지적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학이든, 직장이든 한국 사회에는 놀이 문화라는 것이 다양화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평범한 중산층은 ‘회식 문화’가 유일한 놀이

언젠가 어떤 문인이 한국은 온통 ‘가든’ 천국이라면서 한국인의 놀이 문화 부재를 비판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저 먹고 마시는 문화, 그것도 천편일률적인 ‘가든’ 문화뿐인 한국의 현실에 대한 그의 지적에 깊이 동감을 하였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가든’에 가는 사람들은 한국의 평범한 이른바 중산층 이하의 사람들이다.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가든’이 아니라 ‘필드’에 나가거나, ‘리조트’를 향유하기 때문이다. 사실 평범한 한국인들이 주로 먹고 마시는 식의 놀이 문화밖에 구가할 수 없는 것은 이런 문화가 가장 짧은 시간에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경제적’인 문화이기 때문이다.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이른바 관광, 레저 산업이 호황을 누린다지만,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층은 여전히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이른바 ‘회식 문화’ 정도의 열악한 놀이 문화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 회식 문화는 야식과 술을 겸해 장시간 노동과 내일의 노동을 위한 자투리 시간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놀이 문화라고 할 것이다.

연휴만 되면 해외 여행객이 장사진을 이룬다는 보도가 뉴스 첫머리를 장식하지만, 실은 대다수 한국 사람들은 그 뉴스를 보면서 회식을 하거나, 텔레비전 앞에서 야식거리를 챙기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다수의 한국 사람들에게 해외여행, 필드, 리조트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고, 그들의 휴일 저녁은 고기 냄새로 진동하는 ‘가든’과 폭탄주로 얼룩진 회식자리 속에서 저물고 있는 것이다. 매우 씁쓸한 결론이지만, 잘 노는 것도 결국은 경제력(혹자는 경쟁력이라고 말하는)인 사회, 그것이 한국 사회이니까 말이다.



주간동아 2005.10.18 506호 (p104~104)

권명아 문학평론가 cama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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