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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의 茶人기행|동안거사 이승휴

차 달이는 연기 속에서 제왕운기 저술

차 달이는 연기 속에서 제왕운기 저술

차 달이는 연기 속에서 제왕운기 저술

관동팔경 정자 중 가장 큰 삼척 죽서루.

물 맑은 오십천의 절벽 위에 지어진 삼척 죽서루(竹西樓)는 관동팔경 정자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삼척이 자랑하는 명소가 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누각 안에는 시인 묵객들의 시판(詩板)과 편액(扁額)들이 즐비하다. 동안거사 이승휴, 가정 이곡, 율곡 이이, 송강 정철, 미수 허목 등 쟁쟁한 선비들의 이름이 나그네의 눈에 띈다. 지금은 시가지 한편에 붙어 옹색한 공원의 기능을 하고 있지만, 송강이 들렀던 조선 때만 해도 자연 속의 풍광이 대단했을 것 같다. 송강도 이렇게 읊조렸던 까닭이다.

진주관 죽서루/ 오십천 내린 물이/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가니/ 차라리 한강의 목멱(남산)에 닿고 싶네.

두타산에서부터 오십 굽이나 굽이친다고 해서 오십천인데, 죽서루에 오른 송강은 오십천 속에서 태백산의 그윽한 산 그림자까지 보고 있다. 가사문학의 대가다운 절창이다.

어린 시절부터 불교에 심취 … 매년 10월 ‘다례제’

두타산 산중에 살던 이승휴가 죽서루를 찾은 것은 관리들의 초청을 받아서였거나, 아니면 불법에 심취했던 그가 차 한잔 마시기 위해 죽서루 북서쪽 대숲 속에 있던 죽장사(竹藏寺)를 가던 길이 아니었나 싶다. 죽장사의 풍광은 이승휴와 거의 동시대 인물인 안축의 ‘관동별곡’에 나타나 있다.



웅덩이에 솟은 누각 수부(水府)에 임했고/ 담을 격한 선당(禪堂) 바위를 기댔네/ 스님을 좋아하는 참뜻 아는 이 없고/ 십 리에 뻗친 차 달이는 연기/ 대숲에 이는 바람에 나부낀다.

죽서루에서 보이는 산 그림자 담긴 오십천뿐만 아니라 대숲 너머로 피어오르는 죽장사의 차 달이는 연기(茶煙)도 시인 묵객들의 눈에는 한 폭의 그림이었으리라. 이승휴가 차를 좋아하게 된 까닭은, 어린 시절 원정국사(圓靜國師)가 주석한 절에서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스님들의 차 살림 분위기가 평생 동안 각인됐지 않나 싶다.

이승휴의 자는 휴휴(休休), 호는 동안거사(動安居士). 자와 호 모두가 불교용어인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불교에 심취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경산부(현재 경북 성주군) 가리현에서 태어나 12세 때 희종의 셋째 아들인 원정국사의 절로 가 명유 신서에게 ‘좌씨전(左氏傳)’과 ‘주역’을 배우고 14세 때 아버지를 여읜 뒤, 종조모인 북원군 부인 원씨의 도움으로 공부를 계속한다. 늦은 나이인 29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홀어머니가 있는 삼척현으로 금의환향하지만 몽골의 침략으로 강화도 길이 막혀 두타산 구동의 용계 옆에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10여 년간 은거한다. 이후 지인들의 천거로 벼슬길에 나가 서기나 녹사 등 문서를 다루는 관직을 맡다가 원나라 사신의 서장관으로 따라나선다. 다음 해 또 원종의 부음을 전하기 위해 서장관으로 가는데, 민족의식이 강했던 그는 인질로 가 있던 세자가 호복을 입고 곡을 할까 염려되어 고려식의 상복을 입도록 권유한다. 능력을 인정받아 충렬왕 때는 우사간을 거쳐 충청도안렴사가 되나 강직한 성품 때문에 좌천되고, 뒤에 전중시사에 임명된 뒤 충렬왕의 실정을 간언하다가 파직된다. 이후부터 그는 자신의 호를 ‘동안거사’라 하고, 삼척 구동으로 들어가 당호를 도연명의 ‘귀거래사’ 한 구절을 인용하여 용안당(容安堂)이라 한 뒤 ‘제왕운기’와 ‘내전록’을 저술했다.

충선왕의 부름을 받고 잠시 개혁정치에 동참하나 70세가 넘어서는 다시 야인으로 돌아와 대장경(大藏經)을 보았던 자신의 독서당인 용안당마저 간장사(看藏寺)라는 절로 만들어, 출가한 둘째 아들인 담욱(曇昱)이 머문다.

바로 그 간장사가 오늘날 두타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천은사의 전신이라고 한다. 천은사에서는 매년 10월에 ‘이승휴 선생 다례제’를 올린다고 하니, 다인 이승휴의 정신이 끊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강릉으로 가서 다시 동해시를 거쳐 삼척 시가지(태백 방면)에 들어서면 바로 죽서루에 이른다.



주간동아 2005.10.18 506호 (p2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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