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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주의 茶人기행|포은 정몽주

차 한 잔 속에서 주역 이치를 읽다

차 한 잔 속에서 주역 이치를 읽다

차 한 잔 속에서 주역 이치를 읽다

정몽주 묘

포은 정몽주의 혼을 만나려면 개성 선죽교를 가야 하리라. 그러나 분단 시대를 사는 나그네는 충렬서원 위에 있는 포은의 묘소 앞에서 ‘단심가(丹心歌)’의 결기를 느껴본다. 포은이 차를 마시고 다시(茶詩)를 쓴 때는 말년이 아닌가 싶다. 가파르게 기우는 고려와 운명을 함께하려는 듯한 분위기가 그의 다시 ‘돌솥에 차를 달이며(石鼎煎茶)’에서 감지되기 때문이다.

나라에 보국할 힘없는 늙은 서생/ 차 마시는 버릇 들어 세상을 잊네/ 눈보라 치는 밤 그윽한 집에 홀로 누워/ 솔바람 같은 돌솥의 찻물 끓는 소리 즐겨 듣는다네(報國無效老書生 喫茶成癖無世情 幽齊獨臥風雪夜 愛聽石鼎松風聲).

포은의 본관은 영일이고 출생지는 영천이다. 포은은 1360년 (공민왕 9) 문과에 장원급제하면서 벼슬길에 오른다. 예문관 검열, 수찬을 시작으로 한방신(韓邦信)의 종사관으로 종군해 여진족 토벌에 참가하기도 한다. 토벌에서 돌아온 뒤 승진하여 전보도감판관(典寶都監判官) 등을 역임하고, 부모상을 당해 관직을 놓는다. 당시 상제가 문란해져 사대부들 대부분이 삼년상을 줄여 백일 단상(短喪)을 치렀지만, 포은은 예법에 따라 시묘를 살았다.

탁월한 성리학자 … 고려 지키려다 선죽교에서 최후

이에 임금은 정려(旌閭·효자문)를 내렸고, 이듬해 예조정랑과 성균관박사를 겸임케 하였다. ‘주자집주(朱子集註)’에 대한 포은의 강설은 당시 전하던 송나라의 유학자 호병문(胡炳文)의 ‘사서통(四書通)’과 조금도 다름없었다. 이를 보고 대사성 이색은 포은을 ‘동방 성리학(性理學)의 시조’라고 일컬으며 칭송했다. 포은은 학자로서 명망이 높아 주로 성균관에서 여러 직책을 맡는다. 그리고 명나라에 서장관으로 갔다가 배편으로 돌아오던 중 풍랑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귀국해서 권신들의 배명친원(排明親元)의 외교 방침에 반대했다가 언양으로 유배를 갔다. 이후 사지나 다름없는 일본 규슈(九州)로 가 왜 수장에게 왜구 단속을 요청하고, 잡혀간 고려 백성 수백명을 귀국시켰다. 당시 왜구는 해안뿐만 아니라 내륙 깊숙이 들어와 약탈을 일삼았다. 훗날 이성계가 지리산 운봉에서 왜구를 토벌해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포은은 서울엔 오부학당(五部學堂) 지방엔 향교를 두어 유교의 진흥을 꾀하는 한편, 사신이 되어 명나라를 오가며 대명 국교를 회복하는 데 공을 세웠다. 기울어가는 고려를 바로 세우고자 의창(義倉)을 두어 궁핍한 민초들을 구제하고, 신율(新律)을 만들어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 잡고자 했다. 이때 조준·남은·정도전 등이 은밀히 이성계를 추대하려고 하자, 포은이 먼저 이성계의 책사들을 제거하려 했다. 그러나 포은은 이방원이 보낸 자객 조영규 등에게 개성 선죽교에서 격살되고 만다. 역모를 꿰뚫어보고 있었으면서도 질풍노도처럼 밀려오는 힘에 밀려 당하고 만 비극이었다.

차 한 잔 속에서 주역 이치를 읽다

정몽주 제향을 위한 재실 영모재.

불가항력이라고 느낄 때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절망해버리곤 한다. 포은도 망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마다 유가(幽家·속세를 떠나 그윽하고 외딴곳에 있는 집)에서 차를 마시며 ‘주역’의 책장을 넘겼다. 차는 잠시나마 세상의 일을 잊게 해주고, ‘주역’은 자신의 처지를 위로해주곤 했던 것이다.

돌솥에 찻물이 끓기 시작하니/ 풍로에 불이 붉다/ 감(坎·물)과 이(璃·불)는 천지간에 쓰이니/ 이야말로 무궁무진한 뜻이로구나(石鼎茶初沸 風爐火發紅 坎璃天地用 卽此意無窮).

포은의 ‘주역을 읽다(讀易)’란 다시인데, 찻물을 주역의 ‘감’으로 보고 풍로의 불을 ‘이’로 대비한 것이 절묘하다. ‘주역’의 오묘한 세계를 차 한 잔에 담아낸 이는 아마도 포은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

☞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 용인나들목에서 광주 방면으로 가다가 모현면 면사무소에서 ‘등잔박물관’ 가는 길로 가거나, 수원-광주 간 60번 직행버스를 타고 능원리묘소 어귀에서 내리면 된다.



주간동아 2005.10.04 504호 (p6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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