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2

2005.09.13

배용준 이름값과 블랙홀

  • 김종휘 문화평론가 하자작업장학교 교사

    입력2005-09-09 1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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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용준 이름값과 블랙홀
    드디어, 아니 어느덧, 아니 예정된 대로, 배용준은 한국이 낳은 초특급 월드스타가 되었다. 그가 출연한 영화 ‘외출’은 아시아 8개국에서 동시 개봉하는 글로벌 파워를 지녔다. 뿐만 아니라 관련 소설과 가수들의 수출까지 가능하게 한다. 이를 영화의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e Multi Use)’라고 쿨하게 부르기엔 배용준의 이름값이 너무 커 보인다.

    소설은 허진호 감독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소설가 김형경 씨가 썼고 문학과 지성사가 출판하는데, 영화 개봉과 함께 판매되며 이미 일본어판으로 10만부 주문을 받아둔 상태란다. 또한 영화에 잠깐 등장하는 밴드 클래지콰이와 러브홀릭 등은 일본에서 처음 열리는 한국 영화음악 콘서트에 초대받아 해외 진출을 노리는 모양이다.

    물론 소설은 소설이고 콘서트는 콘서트다. 해서 당사자들은 화제의 영화 상품과의 시너지 효과를 보기 위한 공동 기획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소설을 읽으며 용사마를 떠올리고 콘서트를 보며 영화 속 용사마의 모습을 회상하게 될 일본 팬들에게 사정은 다르지 싶다. 용사마가 아니라면, 과연 그 소설책과 공연 티켓은 얼마나 팔릴 수 있는 걸까.

    문단의 평가는 엇갈리는 것 같다. 비판하는 쪽에선 영화의 원작으로 권위를 지켜온 문학이 영화 산업에 종속되는 신호탄은 아닌지 긴장하는 눈치다. 하나 배용준의 ‘외출’이 시사하는 문제는 문학과 영화의 관계만이 아니다. 문학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거의 모든 예술 장르가 스타 권력의 우산 아래 놓이고 있기 때문이다.

    배용준의 글로벌 파워와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국내 뮤지컬과 연극 등 기초 예술 분야의 공연계는 최근 수년간 TV나 영화가 배출한 크고 작은 스타들을 경쟁적으로 끌어들였다. 스타의 막강한 티켓 파워를 아는 기획자들은 스타 마케팅을 강화하면서 공연 시장의 규모를 비약적으로 키워놓았고 제작비 수준을 엄청나게 올려놓았다.



    경우는 다르지만 음반 시장은 판매하려는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대중 스타의 이미지만 달랑 차용해서 마케팅에 써먹었던 오랜 경력이 있다. 뮤지션의 이미지 또는 음악에서 비롯되는 시각적 상징 대신에 음악과 무관한 연예인 스타를 재킷 모델이자 브랜드로 내세워 홍보에 열을 올렸던 무수한 편집 음반들이 대표적이다.

    문화예술을 산업 논리로만 판단하자면, 스타 브랜드와 다양하게 결합한 이들 사례는 ‘성공’이자 ‘성장’이라고도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배용준 브랜드는 한국 국적을 넘어서는 파워인지라, ‘성공’의 수요나 ‘성장’의 모델이라는 점에서 출발부터 작품성이나 미학에 대한 국내 비평을 저만치 밀어내는 효과를 발휘한다.

    같은 효과의 연장으로서 또 다른 문제 현상이 나타난다. 허진호 감독은 독자적인 브랜드 파워가 있는 작가다. 그가 만든 영화라면 품질과 개성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일단 보는 고객이 형성되어 있다는 소리다. 출판 시장으로 보면 단행본으로 1만부 이상의 고정 독자층을 갖고 있는 시인이나 소설가 같은 존재인 셈이다.

    그런 허진호 감독이 신작 ‘외출’로 글로벌 대박 감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동시에 작가로서 갖고 있던 고유한 브랜드 파워에 상처를 입을지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다. 스타 전지현이 출연한 글로벌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가 감독 곽재용의 존재감을 아예 지워버린 것과 같은 극단적인 지경까지 안 가더라도 말이다.

    이렇게 산업은 ‘성장’하고 시장은 ‘개척’되는지 모르나, 마치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하는 음악인들보다 재킷에만 등장한 스타가 마케팅을 좌우하며 브랜드를 독점하듯이, 배용준의 ‘외출’은 작가인 감독과 영화 자체와 문학과 음악의 모든 요소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초유의 괴물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우리가 거듭 안 사실은, 시장과 산업의 게임에서 영화라는 강물을 끌어다 문학과 음악과 기타 등등의 개천이 흐르고 있으며, 그 막강한 영화의 상투 위에 스타가 앉아 있다는 점이다. 누구를 탓하랴. 걱정하는 사람이 밥값 줄여서라도 대안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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