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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규의 실전 風水|제주도 ‘호종단’ 전설

고려 왕조 탐라국 복속 풍수 침략

  •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dgkim@core.woosuk.ac.kr

고려 왕조 탐라국 복속 풍수 침략

고려 왕조 탐라국 복속 풍수 침략

탐라국의 발상지 ‘삼성혈(三姓穴)’.

제주에는 제주의 맥을 잘랐다는 악명 높은 중국인 지관 ‘호종단(胡宗旦)’과 관련된 전설이 여기저기에 전한다.

“중국 송나라 황제가 풍수서를 바탕으로 고려국의 지세를 보는데 탐라국(제주)에서 걸출한 인물들이 나와 중국을 위협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래서 풍수에 능한 호종단을 급파해 제주 전역에 혈을 뜨도록(지맥을 자르는 것) 하였다. 명을 받은 호종단은 제주도 동쪽 ‘종달리’에 도착하여 혈을 뜨기 시작하였다(‘종달’이란 지명도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그는 동쪽에서부터 남쪽을 거쳐 서쪽을 돌아 제주 전역의 맥을 자르려 하였다. 그러나 남원읍 의귀리에서 한라산신의 방해로 더 이상 혈을 뜨지 못하고 돌아가다 한경읍 차귀도에서 풍랑을 만나 죽었다. 한라산신이 풍랑을 일으킨 것이다. 비록 제주 전역에 혈을 뜨는 것을 막긴 했지만 이로 인해 제주에 큰 인물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

삼성혈 포위하며 맥 잘라 … 제주민들 거센 저항

고려 왕조 탐라국 복속 풍수 침략

호종단이 처음 도착한 종달리.

중국인이 조선에서 인물이 나오지 못하도록 맥을 잘랐다는 단맥(斷脈) 모티브이다. 그런데 호종단이 제주도의 맥을 잘랐다는 전설은 조선 초 명나라 풍수 서사호(徐師昊)가 단천(端川)에 황제의 기운이 서려 있다 하여 맥을 잘랐다는 전설이나,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이 조선 전역의 맥을 잘랐다는 전설보다 몇백 년 앞선 12세기 초의 일이다. 제주도는 본래 탐라란 독립국이었는데, 이를 복속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난 ‘풍수 침략’이었다.

전설처럼 호종단은 중국 사람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탐라국에 대한 풍수 침략의 주체는 중국이 아니라 고려 왕조였다. 호종단은 ‘고려사’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로,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호종단은 중국 송(宋) 때의 복주(福州) 사람이다. 일찍이 중국 태학(太學)에 들어가 상사생(上舍生)이 되었으며 상선(商船)을 따라 고려에 왔다. 글을 잘하고 염승술(厭勝術·비보진압 풍수)에도 능해 예종의 총애를 받았다. 예종이 죽었을 때 ‘고려사’ 사관은 예종이 호종단의 풍수설에 지나치게 빠졌다고 비판했다. 예종에 이어 인종 때도 호종단은 ‘기거사인’의 직책으로 왕의 측근에서 활동하였다.”

그 후 호종단의 행적이 어찌 되었는지는 ‘고려사’에 전혀 언급이 없으나, 호종단과 제주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추론해볼 수 있다.

고려 왕조 탐라국 복속 풍수 침략
제주에서 탐라란 국호가 공식적으로 폐기된 것은 서기 1105년(고려 숙종 10년)이었지만 그 이후에도 탐라국 왕의 지위는 어느 정도 인정되어 제주를 통치하였다. 그런데 숙종의 뒤를 이은 예종은 재위기간(1105~22) 중 국력 신장을 꾀한다. 호종단이 예종의 총애를 받아 고려의 ‘국가 풍수가’로서 활동하던 시절이다. 이때 호종단이 제주에 파견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탐라국 지배층은 고려에 복속되었지만 토착민들은 고려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고, 고려 왕실은 이들을 제압할 필요가 있었다.

호종단이 제주에 처음 도착한 구좌읍 종달리는 탐라국 근원지인 삼성혈(高, 良, 夫 세 성의 시조가 나온 곳으로 이들에 의해 탐라국이 세워짐)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호종단은 여기서부터 삼성혈을 포위해가면서 맥을 잘라나갔다. 호종단의 행로를 추적해보면 다음과 같다.

구좌읍 종달리→표선면 토산리→남원읍 의귀리 및 수망리→서귀포시 서홍동→남제주군 안덕면 산방산 →북제주군 한경면 차귀도(호종단이 죽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

삼성혈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져 한라산을 빙 돌면서 맥을 자른 것으로 보아 계획적이고 치밀함이 보인다. 차귀도에서 죽음을 당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지만, 제주인의 저항으로 호종단 일행이 패배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고려 왕조의 탐라국 복속을 위한 마지막 조치가 바로 풍수 침략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로부터 800년 후 일제가 한반도에 풍수 침략을 한 것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주간동아 2005.09.13 502호 (p49~49)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dgkim@core.woos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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