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8

2005.08.16

이상향 도시 모델 ‘라 데팡스’

  • 류혜숙/ 건축전문 자유기고가 archigoom@naver.com

    입력2005-08-12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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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향 도시 모델 ‘라 데팡스’

    라 데팡스의 개선문인 ‘그랑드 아르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파리는 인구 과밀과 경제 과속화에 따른 개발의 한계에 부닥치게 된다. 시내의 토지가 부족해 대기업이 이동을 하자, 빠져나가는 자본을 막고 확장시킬 수 있는 전용 대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인구와 업무 기능의 계획적인 분산을 위한 파리권 종합 계획을 제시하게 되는데, 그것은 외곽의 5대 신도시와 라 데팡스 오피스 구역의 내용으로 구체화되었다.

    다양한 건축물 모든 교통망 존재

    파리의 북서쪽에 위치한 라 데팡스는 과거 파리의 관문으로 19세기 프로이센 전쟁 당시 최후의 방어선이었다. 이곳이 유럽 최대 상업지구의 대지로 선택된 것은 원래 개발이 용이한 주거지역이고 노동력을 쉽게 제공받을 수 있다는 점 외에 개선문에서 일직선 대로로 파리 도심과 이어져 있어 루브르-개선문-라 데팡스를 잇는 역사적 축을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1958년 라 데팡스 개발공사(EPAD)가 설립되고 개발에 착수한 뒤, 현재의 라 데팡스는 미래적이라고 할 만큼 이상적인 구조와 다양한 건축물들이 존재한다. 지하철을 타고 라 데팡스 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면 먼저 거대한 마천루를 감싸고 있는 고요함과 맑은 공기에 놀란다. 라 데팡스에는 차도 신호등도 보이지 않는다. 길이 150m에 달하는 산책로가 주차시설과 교통망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지하철, RER(고속 교외철도), SNCF(프랑스 국철)에서 버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통망이 존재하는 파리 외곽의 심장부면서, 동시에 교통과 도보자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이상향의 도시를 실현하고 있다.

    라 데팡스의 미래 지향적인 희망은 현대의 개선문인 그랑드 아르슈로 상징된다. 1989년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는 현상설계 공모에서 당선된 덴마크의 건축가 슈프레켈센의 그랑드 아르슈는 역사적 축을 완성 짓는 미테랑 대통령의 야심작이었다. 작가 자신이 ‘세계의 창’이라 표현했던 그랑드 아르슈는 100×100m의 중앙이 빈 정육면체에 흰 대리석으로 마감된 매우 단순한 형태지만, 유행과 양식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순수한 기념비적 의미를 지닌다.



    35층의 건물 내부에는 사무실과 전시실, 놀이공간, 전망대,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 있으며 외부 기단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5대의 유리 원통형 엘리베이터가 구비되어 있다. 그랑드 아르슈의 중앙 외부에는 하이테크 건축 기법을 사용한 구름 형상의 테플론 막이 있는데, 이는 건물을 더욱 거대하게 보이도록 하는 장식적인 요소일 뿐 아니라 광장에서 음악회 등의 행사가 열릴 때 텐트 구실을 하기도 한다.

    아쉽게도 슈프레켈센은 그랑드 아르슈가 준공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타계했다. 그 후 프랑스 건축가인 폴 앙드로와 프랑수아 델로지가 함께 완성했다. 그랑드 아르슈의 중앙에 서면 멀리 개선문이 정면으로 보인다. 개선문을 지나고 샹젤리제를 지나, 루브르의 유리 피라미드까지 한손에 잡힐 듯한 그곳에 서면 이상하게도 인간이어서 뿌듯하다는 감정이 든다.

    이상향 도시 모델 ‘라 데팡스’

    라 데팡스의 다양한 건축물들인 EDF(왼쪽)와 CNIT.

    라 데팡스의 모든 건물들은 축선을 호위하듯 양쪽으로 군집해 있다. 그랑드 아르슈의 왼쪽에 있는 삼각형 대지의 CNIT 건물은 라 데팡스 개발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데, 1958년에 건설되어 개발을 가속화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처음에는 두 개의 돔이 겹친 거대한 전시장이었으나, 1989년 앙드로와 파라에 의해 리노베이션되어 작은 전시도 가능하도록 분할되었다.

    그랑드 아르슈의 뒤쪽에 인접해 있는 퍼시픽 타워는 일본인 건축가 구로가와 기쇼에 의해 1992년 건설된 것이다. 건물의 중앙을 관통하는 ‘일본 다리’는 주변의 고속도로로 인해 보행자의 접근에 제약이 따르자 그 해결책으로 디자인된 것이다. 유럽의 전통적인 흰 벽을 의미하는 흰색의 콘크리트, 나무와 종이로 만든 일본의 전통 미닫이문 등 퍼시픽 타워는 도시 환경과 건축,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공생을 표현한 건축물이다.

    부동산 가격 안정 위해 건축물 허가 거래

    신도시가 건설되면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우리나라와 달리, 라 데팡스에서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땅이 아니라 건축물의 허가권을 판다. 가장 이상적인 도시를 건설해보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여전히 찬반의 공방 속에서 가치를 평가받고 있는 진행형의 도시지만 라 데팡스는 현실적인 필요를 이상향으로 풀어나가고자 한 데 커다란 의의가 있다.

    중세 이후 벨 에포크(좋은 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고집스럽게 역사성을 지켜왔으나 그와 함께 과거와 현재를 공존시키는 방법을 모색하고 실현해온 파리. 이제 그들은 라 데팡스를 통해 미래를 실험한다. 너무 야심에 찬 프로그램들의 필요성 문제와 지나친 기념비주의라는 일부 의견들에도 오늘날의 파리는 건축 실현의 논쟁과 가능성 면에서 가장 활발한 곳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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