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8

2005.08.16

머리카락의 저주는 끝나지 않았어!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5-08-11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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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카락의 저주는 끝나지 않았어!
    최근 한국 호러 영화들은 마치 바이킹을 탄 사람들처럼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다. 2004년 한국 호러 영화들의 제1 목표는 영화 ‘링’에서 검은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온 ‘사다코 베끼기’였다. 그런데 올해 한국 호러 영화들의 목표는 ‘장화, 홍련’을 베끼면서 어떻게든 사다코를 그대로 안 베끼려고 노력하는 것인 것 같다.

    이번 여름 시즌에 나온 세 번째 호러 영화 ‘가발’도 그런 특징을 갖고 있다. 영화는 일단 ‘장화, 홍련’에서 세 가지 중요한 모티브를 그대로 가져오고 있다. 초자연적인 사건에 빠진 자매, ‘돌이킬 수 없는 일’, 그리고 꽃무늬 날리는 벽지. 사다코 안 베끼기는 그보다 더 재미있다. 영화는 사다코 귀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긴 머리 가발을 가져와서는 ‘자, 보란 말이야!’라고 외치는 것처럼 관객들의 눈앞에 대고 흔들어댄다. 웃기는 건 그러면서도 정작 사다코식 긴 머리 귀신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은 전통적인 ‘귀신 들린 영물’ 이야기다. 백혈병에 걸려 죽어가는 동생 수현(채민서)에게 언니 지현(유선)은 가발을 사준다. 수현은 가발을 쓰고 나서 이상한 환각을 보기 시작하고 서서히 성격도 변한다. 그러는 동안 잠시 가발을 빌린 지현의 친구는 이상한 상황에서 죽고, 사고로 목소리까지 잃은 지현은 가발에 저주가 걸렸다고 믿게 된다.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지만 (얼마 전에 개봉된 ‘분홍신’도 거의 같은 설정을 공유하고 있다) 감독 원신연에겐 이 영화를 관객들에게 익숙한 놀람과 자극을 주는 공포 영화로 만들 생각 따위는 없다. 심지어 ‘장화, 홍련’이나 ‘분홍신’처럼 스타일로 관객들을 압도할 생각도 없는 모양이다. 영화가 중점을 두는 것은 두 자매의 위태로운 애증 관계에 초점이 맞춰진 드라마다. 물론 그러는 동안 공포 효과가 들어가면 좋지만 꼭 삽입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면 공포 효과보다는 장르 도구들을 쓰지 않은 드라마와 스릴러 쪽이 더 좋다.

    이건 기회를 얻은 것일 수도 있고 놓친 것일 수도 있다. 사다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가발을 가지고 왔으면서 진지하고 심각한 드라마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건 손해처럼 보인다. 작정하고 패러디로 나가거나 아니면 궁극적으로 그 소재를 추구하는 쪽이 장르 관객들에게 더 적극적인 호응을 끌어낼 수 있는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우직한 정공법도 훌륭하다. 결코 관객들이 공포에 떨며 비명을 질러댈 만한 영화는 아니지만 드라마는 묵직하며 심리묘사도 믿음직스럽다. 두 자매를 연기한 유선과 채민서도 몸을 아끼지 않는 열정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단지 반전 이후 나오는 장황한 설명은 다소 불필요해 보인다. 이번 시즌 호러 영화들이 모두 이런 식의 설명들을 갖추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올해 호러 영화들이 사다코들을 처치한 것처럼, 내년에는 장황한 반전들이 처치될지도 모르니까. 8월12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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