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98

2005.08.16

‘애니콜’ 부진 언제쯤 탈출할까

2위 모토로라 약진 삼성은 매출 감소 … 선진국 보급률 포화 프리미엄 전략 ‘고전’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입력2005-08-11 15: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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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콜’ 부진  언제쯤 탈출할까
    “최악의 부진이다. 걱정스럽다.”

    7월 말 국내외 주요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잇따라 2분기 매출을 발표하자 삼성그룹의 한 고위관계자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전자 휴대전화 부문의 2분기 매출이 전 분기보다 8%포인트나 감소한 것이다. 통신 부문 영업이익률도 5%포인트 떨어진 12%에 그쳤다.

    물론 LG전자, 팬택&큐리텔 등 여타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의 실적 또한 부진하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삼성전자에 눈이 더 가는 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2위 업체 모토로라를 바짝 추격하는 등 기세와 성장 속도가 워낙 놀라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 분기 휴대전화 1·2위 업체인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오히려 시장점유율이 상승하는 분전을 했다.

    휴대전화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2분기 세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은 노키아가 32.2%, 모토로라 18%, 삼성전자 12.9%, LG전자 6.4%였다. 노키아와 모토로라는 1분기보다 각각 1.3%포인트, 1.5%포인트 상승한 반면, 삼성전자는 1.2%포인트가 감소했다. LG전자는 제자리를 지켰다. 결국 4대 업체 중 점유율이 눈에 띄게 줄어든 건 삼성전자뿐이다.

    세계 시장 규모는 커졌는데…



    매출에서도 1분기까지는 삼성전자가 모토로라를 앞질렀지만, 2분기에는 다시 앞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모토로라의 2분기 매출은 49억 달러. 지난해 같은 기간 매출 39억 달러보다 무려 10억 달러나 차이 나는 액수다. 영업이익률도 25%포인트나 증가했다. 휴대전화 판매대수에서도 6260만대로 삼성전자의 4900만대를 저만치 따돌렸다.

    노근창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특히 세계시장 규모가 지난해 동기 대비 18%나 커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계적 불황이 몰려온 것도 아니고 오히려 시장이 커진 마당에 왜 삼성전자만 매출과 점유율, 판매량 모두 하향곡선을 그리게 된 것일까.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7월15일 2분기 실적 발표 및 기업설명회(IR) 자리에서 주우식 삼성전자 전무는 “휴대전화 이윤이 하락할 것은 이미 예상한 일이었다”며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마케팅 비용을 많이 지출하는 등 전략적 의미가 반영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반기에 새 휴대전화 출시가 몰려 있는 만큼 실적 회복에 자신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업계 인사들이나 이동통신단말기 전문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은 밝지 않다. 아니, 오히려 “부디 삼성전자가 지금 상황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쪽이다. 해외 언론의 관심도 커 7월26일자 파이낸셜타임스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고가 휴대전화 중심 경영전략으로 수익성이 악화됐으며, 이머징마켓(신흥 시장)을 잃을 위험에 처했다”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이는 국내 전문가들의 지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늦은 출발에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기린아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과감한 투자와 효과적인 브랜드 마케팅 전략으로 하이엔드 시장을 석권했기 때문이었다. 한 국 내 단말기 업체 마케팅 담당자는 “삼성전자는 바(bar) 형태 휴대전화가 대종을 이루던 유럽 시장에 플립형과 폴더형, 슬라이드형 등 새 디자인을 속속 선보이며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또한 카메라폰, MP3폰, DMB폰 등 기술적인 면에서도 시장을 선도해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의 휴대전화 보급률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고가 휴대전화 시장이 많이 축소된 것. 대신 중국, 동남아, 중남미, 동유럽 등 신흥 시장에서 저가 휴대전화에 대한 요구가 커지기 시작했다. 노키아, 모토로라 등은 이 같은 흐름에 발 빠르게 대응, 다양한 가격대의 중·저가 휴대전화를 다수 생산했다. 특히 모토로라는 2분기에만 15종의 신모델을 출시하는 기염을 토했다. 하이엔드 시장에 주력해온 삼성으로서는 고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 정보통신업계 전문가는 “모토로라나 노키아는 적극적인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 생산과 과감한 아웃소싱, 부품 일괄 구입 등으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하이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며 R&D (기술개발)부터 생산까지를 국내에서 해결한다.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애니콜 제품 중에는 모토로라가 가진 쿼드밴드(Quad-Band)폰이 없다. 쿼드밴드폰이란 유럽, 미국 등 각기 상이한 주파수를 사용하는 지역에서도 두루 사용 가능한 단말기다. 그래야만 유럽에서 발생한 재고를 북미 지역에서 해결하는 등의 영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9월 출시 예정인 D600부터 쿼드밴드를 적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하나 문제로 지적되는 것은 삼성전자가 이전처럼 시장을 선도할 만한 신모델을 내놓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 업계 인사는 “이른바 ‘저격수폰’이라 할 만한 것이 나와줘야 한다. 그렇게 되면 1년에서 1년6개월 정도는 그 힘으로 쭉쭉 앞서갈 수 있다. 올 상반기 ‘저격수폰’ 출시에 성공한 것은 삼성이 아닌 모토로라”라고 말했다.

    “지역 특성 맞는 제품 전략 구사”

    그의 말대로 모토로라 부흥을 맨 앞서 이끌고 있는 것은 초슬림폰인 ‘레이저(RAZR)’다. 미국 등을 중심으로 크게 성공한 레이저가 우리나라에 상륙한 것은 6월1일. 같은 날 삼성전자도 블루투스 초슬림폰인 SCH-V740 개발을 발표했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레이저 출시에 맞춰 물 타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의도되지 않은 우연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삼성이 버라이존, 싱귤러 등 북미 대형 통신업체들과의 협상에서 전략 부재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한 통신업체 해외영업 담당자는 “사업자들은 고가 모델의 값을 좀 낮춰달라는 요구를 계속하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브랜드 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며 “지나치게 높은 값을 고집하다간 하이엔드 시장 고객마저 놓치는 패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인사 또한 “해외 대형 사업자들은 프로모션 때 한 종류의 휴대전화만 팔지는 않는다. 중·고가 제품에 저가 제품을 끼워 보내줘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삼성의 대응이 다소 느린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삼성에선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이라 하지만, 사업자 눈으로 보면 원가를 못 맞춘 것”이라 덧붙였다.

    ‘애니콜’ 부진  언제쯤 탈출할까

    홍콩의 한 점포에 진열된 가짜 삼성 휴대전화.

    외부 비판에 대한 삼성의 뜻은 분명하다. 삼성전자 측은 “우리가 고수하려는 것은 ‘고가정책’이 아니라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을 통한 제값 받기 정책’이다. 이는 하이엔드는 물론 미들엔드, 로우엔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되, 시장점유율에 매달리기보다는 각 시장별로 최고 프리미엄군의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삼성전자 측은 “그런 만큼 고가정책을 고집하다 중·저가 시장을 다 놓친다는 것은 잘못된 분석”이라며 “우리도 다 하고 있다. 지역 특성에 맞는 제품 전략을 구사하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는 “세계 2위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될 날이 멀지 않았다”며 한껏 들떠 있던 지난해와는 다소 차이가 나는 어조다.

    한편 노근창 애널리스트는 “삼성전자가 현재 만만찮은 어려움에 봉착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복합기기가 대세가 될 2007년경에는 기술 우위의 장점을 살려 이전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둘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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