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국제

“메뚜기떼 국제자본 공공의 적”

獨 사민당 당수 뮌터페링 자본주의 논쟁 촉발… 노동계 환영, 재계 반론 첨예한 대립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hanmail.net

“메뚜기떼 국제자본 공공의 적”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고향 독일에서 요즈음 또다시 자본주의를 둘러싼 거대한 정치적 이념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다. 논쟁을 촉발한 주인공은 집권 사회민주당 당수인 프란츠 뮌터페링. 4월11일 뮌터페링은 사민당 정강 제안을 위한 연설에서 한 국가의 영역을 넘어 세계 곳곳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자본 세력을 ‘민주사회의 적’으로 규정했다.

“메뚜기떼 국제자본 공공의 적”

실업급여 신청을 위해 줄 서 있는 독일 실업자들.

“국제자본 세력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하다. 경제 제일주의에 빠져 있기 때문에 개인은 안중에 없다. 국가의 중재 기능마저 무시한다. 설령 인간이 고려 대상이 된다 해도, 이때의 인간이란 기능 차원에서 본 인간, 즉 생산수단이나 소비자 또는 노동시장에서 사고파는 상품일 뿐이다. 국가가 경제에 관여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반(反)시장적 조치라고 여긴다.”

뮌터페링은 이렇게 강도 높은 어조로 국제자본 세력을 비판했다. 그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민주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자본에 대한 통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이 소임을 위해 국가와 정치 행위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이체방크 구조조정 독일인 ‘분노’

150여년 전,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의 본질을 비판하며 역설했을 법한 ‘흘러간 옛 노래’가 21세기의 오늘날 다시 독일 집권 여당 당수의 입을 통해 울려 퍼지게 된 것은 어찌 된 연유일까. 지난 80여년에 걸친 공산주의 실험이 결국 실패로 끝났고, ‘세계화’란 이름 아래 전 세계가 하나의 공간이 되어 자유롭게 경쟁하는 현실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촉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시대착오적 주장으로 들린다. 그러나 뮌터페링의 발언이 나오게 된 데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



독일 최대 민간은행 도이체방크는 2004년과 올해 1분기 동안 예상을 뛰어넘는 고수익을 올렸는데도 올 2월 6400명의 일자리를 없앴다. 일자리 축소는 계획 단계서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민당 소속 정치인들이 도이체방크의 일자리 축소를 적극 만류했음에도 요제프 아커만 최고경영자(CEO)는 경제 논리를 앞세우며 구조조정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실업자 500만명 돌파’라는 절망적인 신기록이 세워진 상황에서, 그래도 꽤 형편 좋은 기업이 국민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 없고, 또 정치권의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구조조정을 단행한 ‘사건’은 많은 독일인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메뚜기떼 국제자본 공공의 적”

2004년 2월 사민당 회의장에서 만난 슈뢰더 총리(왼쪽)와 뮌터페링 당수.

뮌터페링은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회주의적 투자와 회수, 인수와 매각을 반복하며 국제 금융시장을 주무르는 세력을 ‘메뚜기떼’에 비유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일부 금융 투자가들은 인간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자리를 앗아가 버린다. 그들은 자신을 숨긴 채 메뚜기떼처럼 기업에 달려들어 모조리 뜯어먹곤 곧장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뮌터페링은 독일의 국부를 갉아먹는 ‘메뚜기떼’의 목록을 작성해 공개했다. 그 명단의 상위권을 차지한 것은 미국의 사모펀드(소수의 투자자에게서 모은 자금을 주식·채권 등에 투자해 운용하는 펀드) 콜버그 크라비스 로버츠(Kohlberg Kravis Roberts, KKR), 영국의 부동산그룹 페르미라, 블랙스톤 및 포트리스 등이었다. KKR는 2004년 6월 독일 최대의 체인망을 갖춘 자동차 정비회사 ATU를 사들였고, 페르미라는 지난해 통신회사인 데비텔을 인수한 뒤 110개의 일자리를 없앤 바 있다.

이러한 뮌터페링의 연이은 비판 발언에 대해 노동계는 일단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5월1일 노동절 행사에서 미하엘 좀머 노총 위원장은 “많은 거대기업들이 20%의 자본 수익률에도 만족하지 않고 종업원을 무자비하게 대량 해고하며 노동자 권리를 단지 기업 활동의 장애물로 여기는 등 탐욕을 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본의 도덕성, 사회적 책무 경각심

좀머 위원장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30대 기업은 모두 357억 유로의 영업수익을 올렸음에도 3만6000여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또 공장을 동구권 등 저임금 국가로 계속 이전하면서 노동시간 연장과 임금 삭감 등을 자행하는 반면, 기업 경영진의 봉급과 주주 배당은 매년 10% 이상씩 올리고 있다.

노동계는 오늘날 독일이 이토록 실업 문제에 시달리게 된 근본 원인이 이윤 극대화만 추구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감 결여, 이로 인한 내수침체에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또한 정부에 자본 통제를 위한 구체적 방안을 조속히 내놓을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재계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재계는 집권 여당이 ‘계급투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자본을 적대시함으로써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지 않아도 독일 경제가 어렵고 실업 문제가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자본가들을 비난하면 투자는 더욱 위축되고 공장의 해외 이전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 경고다. 심지어 독일산업연맹(BDI) 회장을 지낸 한스 올라프 헨켈은 현 정권을 ‘히틀러 시대’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그는 “요즘 독일 상황을 보면 히틀러 치하의 1930년대 학교에서 ‘대량 실업과 경제난으로 인한 비극의 책임이 모두 외국인 투자자에게 있다’고 배웠던 일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메뚜기떼 국제자본 공공의 적”

지난해 고수익을 올리고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 독일인들의 분노를 산 도이체방크.

각 정당은 제각기 처지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사민당 부당수인 우테 포크트는 “대량 해고를 일삼으면서 투자는 하지 않고 해외 이전만 하려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며 뮌터페링을 지원했다. 반면 자유시장 체제를 전폭 지지하는 자민당은 “사민당이 계급투쟁을 선동해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민당 당수 베스터벨레는 “노총과 노조 간부진이야말로 진정 이 사회의 재앙”이라고 비난해 노동계와의 전면전이 선포된 상태다.

제1 야당인 기민당은 일면 뮌터페링의 발언에 동감을 표하면서도, 이 발언이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州)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나온 사실에 주목, 일종의 ‘책임 면피용’ 선동 구호로 간주하는 분위기다. 안젤라 마르켈 기민당 당수는 “몹시 유감스러운 일은 자본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독일 국민을 위한 단 하나의 일자리도 창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며 여당에 일침을 가했다.

정작 슈뢰더 총리와 내각은 이번 논쟁에서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좌파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임에도 국제 경쟁 속에서 경제난과 실업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 수년간 ‘우향 우’를 거듭해왔으므로 뮌터페링과 여당 지도부의 잇따른 강성 발언이 자신을 공격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 볼프강 클레멘트 경제장관은 “사민당의 규제 강화 발언이 실제로 정책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재계의 우려와 비판을 무마하려 애쓰고 있다.

언론계의 반응도 극을 달린다. 중도를 표방하는 ‘남부독일신문(SZ)’은 “사민당이 국민에게 실망만 안겨준 슈뢰더 정부의 이미지를 떨쳐내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고, 우파 성향의 ‘디 벨트’는 뮌터페링의 급진적 발언을 “한갓 선거용에 불과하다”고 폄하했다. 한편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사민당의 오랜 지지자인 귄터 그라스는 5월3일 ‘디 차이트’에 낸 기고문을 통해 “국회가 대기업, 은행, 기업체에 종속되어 있다. 국회는 이제 증권거래소의 출장소로 전락했다”고 언급하며 사민당의 자본주의 비판에 합세했다. 이로써 자본주의 논쟁은 언론계, 문화계, 학계 등 전방위로 번져나가는 상황이다.

일단 뮌터페링의 자본주의 비판은 많은 독일 국민들의 호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여론조사 결과 ‘뮌터페링의 발언에 공감한다’는 독일인이 60%를 넘어섰고, ‘대다수의 기업이 사회에 기여하기보다는 이익만 챙기는 데 급급하다’는 데 동의하는 독일인은 70%에 달했다.

뮌터페링 발언에서 촉발된 ‘자본주의 논쟁’은 5월22일로 예정된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 의회 선거와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결과와 상관없이 자본의 도덕성과 사회적 책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 함몰되어 점점 개성을 잃어가는 조국에 대해 독일인들은 경제와 사회적 책임의 논리가 조화를 이룬 모습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주간동아 2005.06.07 488호 (p56~57)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hanmail.net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7

제 1217호

2019.12.06

아이돌 카페 팝업스토어 탐방기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