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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수 따기 위한 책읽기 ‘오히려 毒’

학부모가 알아야 할 독서 교육법 … 자녀들과 토론 자주 하고 책은 ‘많이’보다 ‘깊이’에 초점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점수 따기 위한 책읽기 ‘오히려 毒’

점수 따기 위한 책읽기 ‘오히려 毒’
과외할 과목만 하나 더 늘어난 거예요. 스트레스 많이 받죠.”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4학년 형제를 둔 맞벌이 주부 김희정(42·종로구 부암동) 씨. 김 씨와 두 자녀에게 책 읽기는 이제 즐거움이 아닌 완전한 ‘학습’의 영역이다. 특히 정부가 2007년 고등학교 1학년부터 학생부에 독서 결과를 기록, 2010년부터 대학입학 전형에 반영토록 하겠다는 발표를 한 이후 중압감은 더욱 커졌다. 아이들과 긴 시간을 함께할 수 없는 김 씨는 결국 ‘전문 과외교사’를 고용했다. 현재 큰아들은 ‘논리 선생님’과 국어 과외교사에게서, 작은아들은 동네 학부형들 사이에 잘 가르치기로 소문난 ‘글짓기 선생님’에게서 주 1회씩 과외수업을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독서교육 전문가들은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독서 교육은 반드시 실패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입 수험생이 기본적 ‘기술’을 배우기 위해 사교육을 받을 수는 있겠으나, 독서 자체를 입시 도구로만 생각했다가는 오히려 자녀의 지적·정서적 성장에 큰 구멍이 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논술·구술 시험뿐 아니라 학문 연마와 내적 성숙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책읽기 교육이란 어떤 것일까. 또 그를 위해 부모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인가.

독서교육… “그때그때 달라요”

독서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흥미를 유발해야 하고, 책을 읽는 것이 유익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흥미’와 ‘효용’을 느끼는 책의 종류와 독서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독서교육이고 독서교육 전문가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적절한 독서 컨설팅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못 되는 것이 우리 현실. 결국 이 역시 부모 몫으로 떨어지게 된다.

숭문고 허병두 교사(국어)는 “부모들은 그저 좋은 책을 사주기만 하면 되는 걸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오히려 진정한 독서의 묘미는 읽은 책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에 있다”고 말한다. 부모 중에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신문활용 교육, 논리학습 등 일종의 ‘컨설턴트’ 내지 ‘교사’로서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는 강좌를 수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허 교사는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아이에게 어설프게 적용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소박하게 문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낫다”고 조언한다. 자칫하면 아이가 ‘이젠 별걸 다 가져와서 괴롭힌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뭔가 요구하고 목표를 제시하기보다는 그저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고, 도서관에 재미를 붙일 수 있도록 유도하며, 텔레비전 뉴스 내용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정도가 옳은 답일 수 있음이다.

점수 따기 위한 책읽기 ‘오히려 毒’

서울 봉천동 어린이철학교육연구소에서 토론 수업을 하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생들.

범람하는 ‘추천도서 목록’에 끌려다니지 말라

우리 아이들은 수많은 추천도서 목록에 싸여 있다. 학교에서 제시하는 것, 각 대학이 내놓는 것, 교육청에서 작성한 것, 각종 교육·시민 단체에서 배포한 것. 부모로서는 “이것만 다 읽으면 되겠지” 싶겠지만, 아이들로서는 “이걸 언제 다 읽나” 한숨부터 나올 상황이다. 게다가 교육청이나 대학 제시 목록은 입시와 직결되는 것처럼 느껴져 더 큰 압박으로 다가온다.

때문에 독서교육 전문가들은 “이런저런 추천도서 목록에 휘둘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각각의 도서목록에는 그를 추천한 집단의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그런 만큼 추천도서 목록은 그야말로 참고자료일 뿐, 자기 아이에게 맞는 책은 엄마 스스로 골라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린이도서연구회 이송희 씨는 “어른이 감동하는 책을 보여줘야 아이들도 감동한다”고 말한다. 또한 “학습 위주, 교훈 위주인 책은 부모의 자기 만족을 위한 것일 뿐”이라 못박았다.

그러나 바쁜 와중에 부모가 모든 책을 일일이 다 읽어보고 사줄 수는 없는 일. 이때는 상업적 성격이 전혀 없는, 또 ‘대학입시’ 운운하는 문구가 붙어 있지 않은 공신력 있는 기관 또는 단체의 목록을 참고할 것을 권한다. 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어린이도서연구회’(www.childbook.org), 독서교육과 학교 도서관의 발전을 위한 교사들의 모임인 ‘책으로만드는따뜻한세상’(www.readread.co.kr) 등이 믿을 만하다. 물론 부모 스스로 책 고르는 안목을 키우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상자기사 참조).

중학생쯤 되면 아이가 직접 책을 고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부모가 권하는 책만 보도록 강요하는 것 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30년 후 네 아이에게 읽히고 싶은 책을 찾아보라”고 하면 상당한 효과가 있다 한다.

점수 따기 위한 책읽기 ‘오히려 毒’

대전 석교동 ‘알짬마을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자원봉사 주부들과 어린이들.

철학·논리 교육, 가정에서도 가능하다

논리적 사고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논리 학습, 철학 학습이라는 이름의 다양한 사교육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 학교에선 여러 현실적 제약 때문에, 가정에선 부모의 전문성 부족으로 체계적 접근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 그 빈 지점을 몇몇 철학 전문 교육기관이나 과외교사들이 메우고 있다.

물론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어 우수한 전문교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여의치 않다면 가정에서도 나름의 방법으로 자녀의 ‘생각하는 힘’ 배양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어린이철학교육연구소 임병갑 개발실장은 “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녀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대등한 처지에서 토론을 펼치는 작업이 필요하다. 함께 텔레비전을 보거나 신문, 책을 읽은 다음에는 그를 주제로 대화하는 습관을 기른다. 먼저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동안 경청하고 그에 대한 부모의 생각을 말한다. 관습적이지 않은, 새로운 관점의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선행을 한 사람에 대한 기사나 뉴스를 봤다면 “사람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인가, 남을 위해서인가”와 같은 질문으로 이야기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질문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삶의 본질에 대해 고민토록 하는 것은 일찍이 소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행한 교수법이기도 하다.

임 실장은 “대학에서 내는 논술 문제들도 결국은 시대를 초월해 인간 삶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슈들, 예를 들어 인권·전쟁·권력·존재와 인식의 본질 등을 질문하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와 논증·추론하는 습관이 몸에 배면 ‘논리 덩어리’인 수학문제까지도 이전보다 더 쉽게 풀 수 있다”고 강조한다.

신문·잡지, 읽고 싶어하는 만큼 읽혀라

독서를 권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눈’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 만큼 인간과 사회, 역사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고 나름의 비판의식을 갖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개중에는 “흉악한 범죄, 부정비리, 성인 대상의 성담론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신문이나 잡지는 아이들이 보기에 적합치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독서교육 전문가들은 “괜찮다. 오히려 신문 칼럼이나 시사잡지, 문화잡지의 분석 기사들은 그 무엇보다 훌륭한 독서 재료”라고 강조한다.

아이가 신문을 보고 싶어하면 그냥 보여주자. 시사지나 전문지들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함께 읽은 뒤 그 내용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면 더욱 좋다. 물론 이 역시 강요에 의한 것은 효과가 없다.

사교육 선택, 유명세 아닌 부모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대학입시에서 논술이 강조되면서 독서교육 시장도 날로 팽창하고 있다. 각종 프랜차이즈 업체는 물론 개인교습을 업으로 하는 이들도 크게 늘었다. 학부모들 또한 불안한 나머지, 또 스스로에게 전문성이 없다는 점 때문에 고심 끝에 사교육 시장의 문을 두드리곤 한다.

물론 사교육에 모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서를 ‘지겨운 공부’처럼 생각하게 만들거나, 상업적 의도로 특정 서적의 구매를 강제하거나, 커리큘럼의 기계적 적용과 무성의한 교육으로 오히려 역효과를 낼 가능성은 상존한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부모 스스로 옥석을 가려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교사에게 좋은 책을 선별하는 눈이 있는지, 아이 중심으로 수업을 이끌어가는지, 교수법이 흥미로운지, ‘독서’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있는지를 눈여겨봐야 한다. 유난히 “논술을 잘 보려면”이라는 말을 자주 하거나, “이 정도 책은 읽어야 한다”고 강조하거나, 이것저것 구입하라는 것이 많거나, ‘숙제’를 내고 검사하는 데 치중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교사는 적절치 않다.

‘많이’보다 ‘깊이’, 온몸으로 읽는다

책을 무조건 많이 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한 권을 읽어도 깊이, 정말 ‘나의 것’이 되게 읽는 것이 핵심이다.

이송희 씨는 “단 한 권이라도 정성스럽게 읽을 것”을 권한다. 허병두 교사는 “책은 눈이 아니라 손끝으로 읽는 것”이라고 한다. “손으로 뭔가 자꾸 정리하고 메모도 하고 만져도 보고, 그렇게 쓰고 생각하고 느끼는 ‘책과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는 것. 그러나 이를 과제나 숙제의 개념으로 가져가면 십중팔구 실패하고 만다. 오히려 별다른 강요 없이, 부모가 아이 앞에서 스스로 책을 ‘씹어먹는’ 모범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책 읽는 분위기, 결국 부모가 만든다

게임과 텔레비전에 중독된 아이를 치유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도서관에서 놀게 하라”고 권한다. 집 근처에 마땅한 곳이 없다면 좀 멀리 나가서라도, 재미있는 책과 또래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도서관 한 곳쯤은 부모가 반드시 개발해둬야 한다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놀기’는 중·고등학생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학교 도서관을 활용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으나 아직 여건이 마련되지 못한 곳이 많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자녀를 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도서관운동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만큼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꼭 도서관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책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책을 읽고 있는데 “수학 문제 하나라도 더 풀라”고 윽박지르거나, 학교에서도 “쓸데없는 책 읽지 말고 교과서나 보라”고 강요한다면 독서에 빠져들 기회는 영영 사라지고 만다. 당장 점수에 반영되지 않더라도 길게 보고 확실히 밀어주는 것, 부모와 교사에게 모두 요구되는 일이다.





주간동아 2005.06.07 488호 (p30~32)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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