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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교수의 ‘과학 속 세상史’

새로 만드는 지폐 도안 인물 첫 여의사 김점동이 제격

  •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새로 만드는 지폐 도안 인물 첫 여의사 김점동이 제격

새로 만드는 지폐 도안 인물 첫 여의사 김점동이 제격

김점동의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 졸업식 사진.

정말로 정부가 돈을 새로 찍어낼 모양이다. 그런데 화계 개혁을 하려면 제대로 할 일이지, 단순히 디자인만 바꾼다니 실망이 크다. 위조 방지와 휴대의 편리함만을 위한 디자인 변경이라면 낭비가 너무 심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개혁은 첫째, 우리 돈의 단위를 1000분의 1로 줄이는 문제다. 1000원짜리를 1원(圓), 또는 1환()으로 바꿔주면 될 일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아마 말 못할 사정이 있는가 보다.

둘째, 지폐에 들어가는 주인공의 문제다. 지금처럼 이(李)씨 일색의 화폐는 곤란하다. 이황(李滉)과 이이(李珥)는 모두 비슷한 위상을 가진 성리학자이니, 1000원과 5000원의 주인공이 중복되는 셈이다. 1만원짜리에는 이도(1397~1450), 즉 세종대왕이 주인공이다. 100원짜리 동전에도 이순신 장군이 들어 있다. 물론 본관이 다르긴 하지만 이씨 일색인 것은 사실이다. 정부의 화폐 개혁이 발표되자, 여러 의견이 나오는 듯한데, 주인공도 바꾸는 편이 옳다고 본다. 주인공으로는 주로 민족주의적 인물들이 추천되고 있고, 또 여성계나 과학기술계 등에서는 자신의 영역을 대표하는 인물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 해결책으로 필자는 여성 과학자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과학계와 여성계 주장을 모두 반영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2년 전에도 이 칼럼에 쓴 일이 있지만, 김점동(金點童, 1877~1910)이 적격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박에스더로도 알려져 있는데, ‘김’씨가 ‘박’씨가 된 사정은 그가 미국에서 공부한 첫 여성 의사였고, 남편이 박씨였기 때문이다.

김점동의 일생은 그야말로 한국 근대화 과정의 비극적 표상이다. 1세기 전 우리들의 거울이 다름 아닌 김점동인 것이다. 지체 낮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김점동은 선교사 스크랜튼 부인을 만나 이화학당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그녀의 주선으로 1893년 결혼했고, 1895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

필자 역시 미국 유학생활이 힘들었기 때문일까. 이 부부의 고생을 생각할 때마다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남편이 농장이나 식당에서 막노동을 해서 아내 김점동이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할 수 있게 해주었다. 1896년 10월 입학한 그녀는 1900년 5월 졸업했지만, 남편은 아내의 졸업 8개월을 앞두고 폐결핵으로 이미 사망한 뒤였다. 요즘은 드물지 않겠지만, 그야말로 한국 역사상 최초의 외조자(外助者)였던 것이다.



졸업과 함께 귀국한 김점동, 즉 박에스더는 서울에서는 주로 보구여관(保救女館ㆍ이대부속병원의 전신)에서, 그리고 평양에서는 선교사가 세운 기홀(起忽)병원에서 여자 환자 치료에 10년을 봉사했다. 때로는 당나귀를 타고 시골 이곳저곳으로 진료를 다녔다는 김점동의 일생에 대해서는 아직 연구조차 되어 있지 않다. 꼭 10년 동안 쉬지 않고 환자를 찾아다녔던 그녀는 1910년 4월13일 서울에서 과로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녀를 한국의 첫 여의사로 만들어준 남편과 마찬가지로 과로와 폐결핵으로 쓰러진 것이다.

역사란 극적인 전개를 통해 인간에게 감동을 주게 마련인데, 우리 근대사에서 김점동의 경우만큼 드라마틱한 ‘여자의 일생’은 찾아보기 힘들다. 더구나 그 남편을 함께 생각할 때, 그들의 일생은 감동 그 자체다. 일본은 지난해에 지폐를 개혁하면서 여성 소설가를 넣고, 과학자로는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野口英世)를 넣었다. 우리도 가능하지 않을까.



주간동아 2005.05.03 483호 (p77~77)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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