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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에 비친 인생

사랑 마라톤 6년 ‘감동 레이스’

중앙대 의대 산부인과 이상훈 교수 … 1m 1원 후원 12번 완주, 건강 챙기고 이웃 챙기고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사랑 마라톤 6년 ‘감동 레이스’

사랑 마라톤 6년 ‘감동 레이스’

동아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해 달리고 있는 중앙대 의대 이상훈 교수.

3월13일 영하에 가까운 쌀쌀한 날씨 속에 서울에서 개최된 동아서울국제마라톤 대회에는 중앙대 의대 산부인과 이상훈(51·진료부장) 교수와 그의 제자, 동료 80여명이 끼여 있었다. 이 대회에 참가한 모든 이들에게 마라톤 완주는 자신에 대한 도전이자 꿈이겠지만, 이들이 내딛는 한 발짝에는 마라톤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들이 1m를 뛸 때마다 1원의 후원금이 강원도에 있는 세 자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이날 42.195km를 완주했다.

강원도 세 자매에게 전달

이 교수가 이처럼 ‘사랑을 실은 마라톤’을 산부인과 학생 및 동료들과 시작한 지도 어언 6년. 그는 마라톤 마니아로서 2000년 이후 해마다 동아마라톤을 비롯해 춘천마라톤을 12회나 완주했다. 그때마다 강원도의 세 자매에겐 따뜻한 사랑의 후원금이 전달됐다. 50대에 마라톤을 1년에 2차례 이상 완주한 것 자체도 대단하지만,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라는 마라톤을 하면서 항상 소외된 이웃과 함께했다는 사실이 감동을 자아낸다. 2000년 춘천마라톤 때는 제자들이 강원도의 아이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글을 담은 노트를 들고 마라톤에 나서기도 했다. 이 교수가 후원하는 아이들의 집이 마라톤 코스에서 1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이 교수를 마중 나올 것을 알고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서였다.

“의사가 건강하지 않으면 절대 환자에게 신뢰를 줄 수 없죠. 마라톤은 자신감과 함께 타인에 대한 사랑을 갖게 합니다. 강원도의 아이들은 제 자식과도 같습니다. 내가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게 더 많은 것을 줍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또 그 사랑을 제대로 받아주지도 못합니다.”

85년 ‘시험관아기’ 기술이 국내에 처음 들어올 때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전임의로 활동했던 이 교수는 현재까지 1600명의 시험관아기를 탄생시켰다. 그가 미국불임학회 정회원인자 산부인과학회 생명윤리위원을 맡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 마라톤 전도사인 그는 퇴원 환자와 그의 아내들에게도 마라톤을 권유했고, 이들을 포함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마라톤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고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다.



사랑 마라톤 6년 ‘감동 레이스’

진료실에서의 이 교수.

이 교수의 아이 사랑은 그의 ‘취미’와도 연관이 깊다. 취미라고 하지만 그의 그림과 사진은 이미 전문가 경지에 이른다. 그는 서울대 의대 전임 생활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지금까지 개인전만 일곱 번을 열었을 만큼 서양화에 대한 애착이 깊다. 개인전을 한 번 할 때마다 내는 작품 수만 200점, 기성 작가들도 그의 다작에 놀랄 정도다. 94년 자신의 작품을 호평한 국제의료선교단에 그림을 기증한 그는 이후 세계 양부모 후원 단체인 플랜코리아에 자신의 그림들을 기증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세계 각국 고아들의 양부모 노릇을 시작한 것. 그는 그의 그림을 통해 네팔 등 전 세계 10명의 아이들에게 후원을 하고 있다. 전문인으로 구성된 국제의료봉사 NGO(비정부기구)인 글로벌케어 의사회에 가입한 그는 2001년 11월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래 개인전을 열 때마다 작품 판매를 통해 모금한 수익금액을 단체에 기부하고 1년에 국내외 12곳의 아이들을 방문해 도움을 주고 있다. 그중에는 중국 옌볜의 용정중학교 아이도 있으며, 그는 현재 이 단체에서 소년소녀재단회장을 맡고 있다.

그가 강원도의 아이들을 만난 것도 바로 이들 단체에서 연결된 것. 이 교수는 “그들의 상황을 보고, 양부모가 되어달라거나 후원을 해달라고 했을 때 ‘노’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그들의 눈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후원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겸손해한다.

사랑 마라톤 6년 ‘감동 레이스’

이상훈 교수는 1년에 두 번 제자, 동료와 함께 기부금 마련을 위한 마라톤을 하고 있다.

현재 사진작가협회 정회원이기도 한 그는 국전을 비롯해 동아국제살롱과 같은 국내 굴지의 사진전에서 5회 이상 수상한 베테랑. 심지어 70년 가족계획포스터의 사진도 그가 그의 가족을 찍은 것. 서울대 의대 전임 시절 심심풀이 삼아 인근 창경궁의 사진을 찍던 것이 사진작가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것이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아내의 건강 회복을 위해 북한산에 오를 때도 항상 그의 손에는 사진기가 쥐어져 있고, 사진에 담긴 아름다운 영상은 재구성돼 하나의 그림으로 탄생한다. 이들 그림은 다시 기부를 통해 전 세계 아이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림·사진·와인에도 일가견 … 장기와 시신 기증

이처럼 이 교수는 무엇이든지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라톤이면 마라톤, 사진이면 사진, 그는 한번 손을 대면 ‘대가’라는 말을 듣기 전에는 그만두지 않는다. 와인에 취미를 붙인 그는 현재 와인나라닷컴의 강사로 나갈 정도의 수준이 되어 있다.

그가 의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집중력과 사랑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이 교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친형처럼 가까이 지냈던 교회 선배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닥뜨리면서 3학년 2학기 때 이과로 전과했다. 의대를 다녔던 선배가 이 세상에 살면서 나눠주고 싶었던 의술과 사랑을 자신이 대신 행해야 한다는 신념이 선 그는 3개월 동안의 공부 끝에 의대 입학에 성공했다. 그리고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산부인과를 선택한 것도 다 그 영향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제가 남을 위해서 마라톤을 하고 남을 돕는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다 나를 위한 일입니다. 남을 돕는 것 자체를 내가 좋아하고, 거기서 보람을 찾을 수 있고, 또 인간적 위로를 받기 때문이죠. 남을 돕다 보면, 또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면 환자들에게 더 웃게 되고, 내 생활에 자신감도 붙죠. 요즘 저의 목표는 환자들에게 90도로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최근 중앙대 의대 진료부장이 된 이 교수는 이미 자신의 장기와 시신을 기증했다. 그는 진료부장이 된 후 한 가지 또 다른 꿈이 생겼다. 만약 가능하다면 모든 의료진이 장기와 시신을 기증하고, 또 제자와 동료들이 헌혈하는 모습을 환자들에게 보여주는 것.

부인과 질환의 간단한 수술법을 개발하기도 한 그는 요즘 환자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저서와 일반인들의 참여가 쉬운 불임 홈페이지를 준비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5.03.29 478호 (p76~77)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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