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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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軍 당장 철수하라”

前 총리 하리리 사망 배후 의심 레바논 국민 분노 … 5월까지 순순히 물러날지는 미지수

  • 이스라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입력2005-03-24 12: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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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은 각각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대가 점령하고 있다. 이 두 나라 외에도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중동 국가가 있으니 바로 레바논이다. 레바논에는 인근 국가인 시리아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 시리아군은 1975년 레바논에서 내전이 일어났을 때 개입한 이후 줄곧 주둔해왔다. 그런데 최근 레바논에서 반(反)시리아 폭풍이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3월5일 시리아의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은 “레바논에 주둔하고 있는 시리아군을 5월까지 레바논과 시리아의 국경 근처 도시인 베카아로 재배치한다”고 발표했다. 이 발표로 레바논은 이라크와 팔레스타인보다 먼저 외국 군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레바논은 중동 국가 중 여러 면에서 특이한 나라다. 아랍국가이면서 기독교도인 대통령이 통치하며, 정치·사회적으로도 민주적 제도가 정착되어 있는 유일한 나라다.

    이는 레바논의 독특한 종교 구성비에서 비롯됐다. 레바논은 다른 중동 국가와 마찬가지로 아랍민족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면서 종교적으로 갈라져 있다. 그러나 다른 중동 국가와 달리 어느 한 종교나 종파가 확실한 다수를 차지하고 있지 않다. 전체적으로는 기독교도의 수가 50%를 조금 넘는데, 기독교도 중 마론파가 전체 인구의 약 30%를 차지하고 순니 무슬림이 22%, 시아 무슬림이 20%, 드루즈인이 7%를 차지한다.

    거리에서 연일 反시리아 시위



    이런 영향으로 레바논은 중동 국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며 의회가 실질적 권한을 갖는 등 민주적 제도가 일찍부터 정착됐다. 1943년 체결된 ‘국가조약’에 따라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인 대통령은 마론파 기독교도, 행정부의 수반인 총리는 순니 무슬림, 국회의장은 시아 무슬림이 맡도록 했다. 의회의 의석 수 또한 인구 구성비에 따라 기독교도와 무슬림의 비율을 5대 5로 정해놓았다.

    레바논의 이 같은 독특한 종교 구성비는 민주적 제도를 정착시키는 원인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종파 간 또는 같은 종파 내 라이벌 세력 간의 끊임없는 충돌을 야기하는 갈등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 정점을 이룬 사건이 바로 75년 발발한 레바논 내전이다. 내전 발발의 직접적 원인은 당시 레바논에 거점을 두고 있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마론파 기독교도의 민병 부대인 팔랑즈의 충돌이었다. 그러나 레바논의 여러 세력들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되어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90년까지 15년 동안 벌어진 내전으로 인해, 한때 ‘중동의 파리’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움을 뽐내던 수도 베이루트를 비롯한 레바논의 전 영토는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또한 이 내전은 시리아군을 불러들였다.

    시리아는 ‘레바논 안정화’를 명분 삼아 전쟁 초기인 76년 3만 병력을 파병했다. 그리고 실제 내전 종결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 당시 시리아군의 파병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동의 아래 이루어졌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미국이 당시 레바논 내의 PLO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시리아군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는 89년 타이프 협정 결과로 전쟁이 종결되었는데도 군대를 철수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계속 주둔시켜오면서 레바논에 정치적·군사적 압력을 가해온 것이다.

    현재 레바논에 주둔하고 있는 시리아 병력은 전투부대와 정보부대로 1만5000명에 이른다. 시리아는 이를 무기로 레바논에 친(親)시리아 정권을 설립하는 등 정권을 좌지우지해왔다. 처음엔 종전에 주도적 구실을 한 시리아군을 환영했던 레바논 국민도 차츰 점령에 가까운 시리아군의 주둔과 내정간섭으로 불만을 쌓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시리아군 철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에 결정적 불을 붙인 사건이 바로 최근의 ‘라피크 하리리 암살사건’이다. 오랜 기간 레바논의 총리로 재직한 라피크 하리리는 시리아의 압력으로 친시리아 인사인 에밀 라후드 대통령의 연임이 결정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지난해 10월 총리직을 사임했다. 이후 하리리는 ‘반(反)시리아 운동’의 대표 인사로 부각되었다. 그런데 그런 하리리가 2월 원인을 알 수 없는 자동차 폭발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이 사건의 배후에 시리아가 있다고 믿는 레바논 국민은 시리아군 철수를 거세게 요구하기 시작했고, 거리에서는 반시리아 시위가 연일 벌어지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아사드 대통령의 시리아군 재배치 발표 배경에는 이 같은 레바논 내의 반시리아 감정 고조 이외에도 미국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있다. 유엔은 지난해 9월 미국의 주도로 레바논에서 시리아군을 비롯한 외국 군대의 철수를 요구하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공포한 바 있다. 이와 별도로 미국은 자체적으로 시리아에 각종 제재를 가하며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결국 아사드 대통령의 발표를 이끌어낸 것이다.

    미국 강력한 압박 ‘사면초가’ 상황

    그러나 아사드 대통령의 발표에도 시리아가 레바논에서 순순히 물러날지는 미지수다. 시리아가 레바논에서 물러날 수 없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미국이 시리아에 압박을 가하는 이유는 시리아가 미국이 테러단체로 지목한 헤즈볼라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는 전통적으로 레바논에 거점을 둔 헤즈볼라를 지원함으로써 이스라엘에 대한 견제수단으로 헤즈볼라를 이용해왔다. 헤즈볼라는 현재도 거의 매일 이스라엘과 크고 작은 교전을 벌이며 이스라엘의 가장 큰 실제적 위협이 되고 있다.

    시리아는 이를 바탕으로 레바논에서의 철수를 이스라엘과의 협상카드로 활용해왔다. 즉 67년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점령한 시리아 영토 골란고원의 반환이 이뤄져야 레바논에서 완전히 철수하겠다고 맞서온 것이다. 만일 시리아가 아무런 소득 없이 레바논에서 철수한다면 잃어버린 국토를 찾는 데 유용한 카드 하나를 날려버리는 셈이 된다. 시리아가 레바논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현재 레바논에는 약 100만명의 시리아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이들이 한 해 시리아로 송금하는 돈은 약 10억 달러. 미국의 각종 경제 제재로 인해 이들이 송금하는 돈은 시리아 국가경제에 커다란 기여가 되고 있다.

    미국은 시리아군의 철수 시한을 5월로 못박아 놓았다. 5월에는 레바논의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즉 5월 선거에서 시리아의 영향력을 없애겠다는 의미다. 만일 이 시한을 넘기면 시리아는 미국에 의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사면초가에 몰린 시리아의 다음 카드가 무엇일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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