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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한국의 부자동네

부촌 대명사 한남동 드디어 변하는가

주류였던 2층 양옥 헐리고 4, 5층 빌라 신축 붐 … 삼성문화타운 입주로 열린 문화 공간 가능성도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부촌 대명사 한남동 드디어 변하는가

부촌 대명사 한남동 드디어 변하는가

삼성미술관 ‘리움’ 주변의 한남동 주택가. 2층 양옥과 신축한 빌라들이 섞여 있다.

한남동의 특징은 조용하다는 거죠. 반상회도 없고, 이웃 간 교류도 거의 없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가 아예 없어요.”

미국에서 성장한 뒤 결혼해 한남동 유엔빌리지로 옮겨와 살고 있는 주부 김모(35) 씨는 “이렇게 조용하고 안전한 느낌 때문에 여기서 사는 것 같기도 하다”고 덧붙인다.

대한민국 상류사회를 상징하는 동네로, 흔히 서울 종로구 가회동을 중심으로 한 화동·성북동 지역과 용산구 한남동과 이태원 일부를 묶어 부르는 한남동이 꼽힌다. 두 지역 모두 ‘갑부’라 할 만한 부유층과 사회지도층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지만 양쪽의 문화적 차이는 극명하다.

가회동 지역이 근대화 이전에 부를 형성한 ‘전통적’ 부자들이 자리잡은 곳이라면(혹은 그러한 가치를 중시하는 이들이 사는 곳), 한남동은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계획 시기에 돈을 모은 기업인들과 근대적인 관료들이 모인 곳이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가회동이 북촌과 함께 급속히 상업화하면서 전통과 모스트모던이 혼재하고 있다면, 한남동 지역은 근대 ‘개발주의’ 문화가 30년 동안 ‘보존’되고 있는 독특한 공간이다. 한남동에서 이 같은 의도적 ‘배타성’과 ‘정체’가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이곳이 유엔빌리지와 외국인 주택, 외교 공관과 관사 등으로 이뤄진 특수한 주거지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유명 부티크, 고급 음식점 제외한 상업시설 전무



“이곳은 정부에서 주한 외국인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게 배려한 곳이었다. 남편이 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유엔빌리지에 한국 사람이 살 수 없던 70년대 초부터 이곳에서 살았다. 얼마 뒤 한국 사람들 대상으로도 이 땅을 입찰했는데 유엔빌리지에 대한 정보를 가진 사람들이 정부 고위 관료와 재벌들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이런 사람들이 주민이 되었다.”

한 한남동 토박이 주부의 말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수 주거용 고층 아파트라 할 만한 것도 외국인 주거용으로 68년에 완공된 힐탑 아파트였다. 즉 현재 한남동의 모습은 외국인들(특히 미국인)과 그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으며 근대화를 이뤄야 했던 경제인 및 관료들의 거주지로서 시작됐다. 우리나라 최초로 ‘양풍(洋風)’을 쐰 곳이며, 근대 개발주의의 꿈이 현실화한 곳이 바로 한남동이다.

부촌 대명사 한남동 드디어 변하는가

한남동을 중심으로 한 상류사회와 부유층의 취향을 보여주는 ‘란 스튜디오’. 미국 건국 초기의 진짜 골동품 가구들을 가족사진의 배경으로 삼는다.

한남동 단독주택의 형태는 70년대 집 장수들이 지어 판 ‘양옥집’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유엔빌리지 집들은 서양식으로 정원 딸린 단층집이지만, 신축 중인 이건희 삼성 회장 집 등이 몰려 있는 동네에는 나무 대문을 단 벽돌 2층 양옥집 형태가 많다. 인테리어도 70~80년대 많이 쓰던 ‘누런색 나무’ 마루와 천장이 많아 대재벌의 회장 집에 기대를 걸고 방문한 이들이 ‘뜻밖’의 인상을 받는다고 한다.

삼성미술관 ‘리움’ 건축에 참여하며 한남동을 연구한 한 건축가는 “20~30년 전 이 동네 집들이 지어질 당시는 건축가의 ‘스타일’ 자체가 없던 시기였다”고 말한다. 최근 이 한남동 ‘오리지널’이라 할 만한 집들이 차례로 재건축에 들어가면서 빌라도 늘어나고, 포스트모던한 건축가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폐쇄적으로 조성됐기 때문에 상업시설은 전무하다시피 한 것도 특징이다. 남산순환도로 하얏트 호텔과 그 옆의 이광희 부티크, 서정기 부티크, 미용실 헤어뉴스, 사진관인 란 스튜디오, 레스토랑 라 쿠치나, 비손, 피지, 하루에, 샬레 스위스, 프띠 프랑스 등이 거의 다라 할 수 있다. 한 구역에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멕시코, 스위스 등 전 세계 요리가 모두 모인 것도 특이하거니와 최근 청담동이 트렌드를 선도하면서 위세가 약해지긴 했지만 70년대 이후 이들의 이름은 곧 ‘외제’이며 첨단과 최고를 의미해왔다.

이곳 부티크 이용자는 여전히 삼성미술관 홍라희 관장을 비롯한 한남동 재벌가 여성들이다. 또 이들은 집안에 혼사가 있거나 아이가 태어나면 란 스튜디오에 가서 가족사진을 찍는다. 이광희, 서정기 부티크와 헤어뉴스, 란 스튜디오는 명문가 자제들의 약혼, 결혼식을 도맡는 곳으로 기자들에게 적잖은 재벌가와 연예계 스타들의 결혼 ‘특종’을 제공하기도 했다.

한 부티크 주인은 “여기서 삼성과 LG 가문의 여성들이 만나는 일이 흔하지만, 이야기를 두세 마디 이상 나누는 경우는 흔치 않다. 원하는 것은 늘 단정하고, 튀지 않는 스타일이다. 여성들이 시사나 경제 문제에 관심이 많다거나 큰 행사 때 아직도 발목까지 오는 제대로 된 드레스를 입는 것도 강남과는 달라 보인다”고 말한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대통령 사진을 찍은 란 스튜디오의 가족사진은 정확하게 한남동 취향을 반영한다. 란 스튜디오의 소품들은 ‘미국 건국 초기’의 진짜 골동품으로 유명하다. 가족사진에서 부모는 의자에 앉고 자녀들은 그 주변에 서는 포즈가 가장 전형적인데, 미국 가족사진의 구도와 ‘럭셔리’한 분위기가 그대로 나타나 우리나라 고객들에게서 큰 인기를 얻었다. 사실 많은 사진관의 ‘어색한’ 가족사진이 란 스튜디오를 모방한 것이다.

집집마다 많은 미술품 소장 … 공식적 문화공간은 빈약

란 스튜디오 김영수 이사는 “앤티크 소품을 생활로 즐기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사진을 찍어놓으면 확실히 드러난다. ‘자연스럽다’는 건 이 소품들 분위기가 한남동 상류층 사람들의 생활과 일치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이 가족사진은 가부장적 장자 중심의 가족주의를 보여준다. 한남동 부티크나 미용실에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든가, 아버지와 아들이 골목이나 정원을 사이에 두고 집을 짓고 살아 일종의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는 것도 여전히 가족 간 연대가 강한 한남동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집은 가정이자, 경영 수업이 이뤄지는 장소다.

부촌 대명사 한남동 드디어 변하는가

‘리움’ 개관에 맞춰 한남동으로 이사한 백해영 갤러리. 가정집을 고친 작은 상업화랑이지만 미술품 거래보다 새로운 흐름을 소개하는 데 기획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남동의 상징이 된 한남슈퍼마켓(오른쪽).

또한 한남동에서 3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남슈퍼마켓’을 빼놓을 수 없다. 외교통상부 공관 옆, ‘볼보’ 자동차 건물 지하에 있는 이 가게는 ‘WELCOME TO HANNAM’이란 간판이 보여주듯 한남동에 사는 외국인들과 외국 생활을 경험한 한국인들을 위한 가게다. 희귀한 향신료나 이국적인 식재료를 갖추고 있는데, 한 유엔빌리지 주민은 “압구정동에 현대백화점이 생기기 전에 주로 쇼핑하던 곳”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노점에서 종종 ‘미제 물건’ 장수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지역의 특징이다.

한남동의 상류층을 위한 상업시설물이 그다지 발전하지 않은 이유는 이들의 소비 활동 대부분이 강남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광희나 서정기 오는 쿠튀르 부티크가 재벌 1세대 시대의 ‘최고급품’과 부를 상징한다면, 그 자식들인 재벌 2, 3세대는 다국적 기업의 명품들을 소비함으로써 ‘세계화 시대’를 즐긴다.

한남동의 공식적 문화 공간은 한남동 주민들이 가진 부의 규모에 비하면 매우 빈약한 편이다. 그러나 이 지역에 우리나라 고급 문화의 주요 소비자들이 몰려 있으며, 특히 미술계의 주요 컬렉터들 중 상당수가 한남동에 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한남동 지역 ‘양옥집’들과 외국인 주택들이 그림을 걸 수 있는 벽을 갖고 있어 갤러리 뺨칠 만큼 많은 미술작품을 소장한 개인 주택들을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즉 공식적 문화 공간이 아닌 개인의 주택에서 내부인들끼리 문화행사를 열 수 있다. 갤러리 같은 ‘드러난’ 공간을 원하지도 않고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는다.

한남동에 살고 있는 홍라희 삼성미술관 관장, 그리고 그 사돈인 대상그룹 명예회장 부인 박현주 상암커뮤니케이션 부회장 등이 모두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시작된 현대미술회 회원으로 이와 관련된 행사가 한남동 자택에서 돌아가며 열리곤 한다. 최근 언론에서 많이 다루는 전통가옥의 복원과 전통문화 보호운동을 주도하는 이들 중 상당수도 한남동 사람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홍라희 관장의 삼성미술관이 50~60년대 미국 모더니즘 추상 회화를 수집하면서 우리나라의 미술 시장 자체가 맥락 없는 ‘예술지상주의’ 모더니즘에 경도됐는데, 이는 한남동의 미국 지향성과 개발주의 이데올로기에 딱 맞는 예술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리움’ 탄생 후 갤러리·대안 공간 이주 움직임

한때 한남동에도 ‘엘렌 킴 머피 갤러리’나 ‘키친’ 같은 열린 갤러리들이 운영되기도 했지만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두 곳 모두 공간 자체가 독특해서 패션 관계자들이 촬영을 하거나 파티 장소로 많이 활용했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것은 한남동답지 않은 것이었다. 한남동에서 양수리로 ‘엘렌 킴 머피 갤러리’를 이전한 김은애 관장은 “재벌가 사람들은 일반인에게 열려 있는 갤러리에 좀처럼 오지 않았고, 한남동에서 임대업을 하는 부동산 업자들과 미술 이야기를 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결국 5년 만에 문을 닫았다”고 회고했다.

부촌 대명사 한남동 드디어 변하는가

한남동 입구에 자리잡은 음식점들(왼쪽). 작지만 미식가들에게는 잘 알려진 곳이다. 유엔빌리지 입구(가운데). 순환도로라 나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

또 다른 한남동 토박이 사업가는 “한남동은 박정희 대통령 때 부상한 계층이 선호했다. 79년 권력이 교체되자 힘을 잃은 사람은 한남동 집을 팔고 떠났는데, 이런 소문을 재빨리 입수해 사들인 사람들 중에 고위 공무원들의 부인들이 많았다. 그들은 들어와 살지 않고 외국인 임대업에 주력했는데, 한 달에 8000달러씩 3년치 선불이 일반적이었으므로 빠듯한 공무원 월급을 벌충하는 데 그만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수십 년간 변화가 없던 한남동이 최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임대를 위해 집을 구입한 사람들은 단층 혹은 2층이던 집을 헐어 4, 5층짜리 빌라를 짓기 시작한다. 이웃의 한강 조망권은 무시된다. 특히 유엔빌리지는 빠르게 빌라촌화하고 있다.

“이태원과 한남동에서 14년 살았는데, 한강물을 끌어들이는 한남동 풍수의 멋을 무시하고 겉멋 부린 빌라들만 늘었다. 주민들도 대부분 잠시 빌려 사는 이들과 애정은 없고 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김은애 관장)

또 다른 변화의 조짐은 삼성미술관 리움을 중심으로 한 삼성문화타운에서 찾을 수 있다. 렘 쿨하스, 장 누벨, 마리오 보타 등 세계 최고의 건축가 세 사람이 미술관을 설계하고, 첨단의 건축 기술이 적용된 ‘리움’ 자체가 한남동의 랜드마크(landmark·표지물)가 되기도 했지만 한남동의 공간을 어떻게 새롭게 구성할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애초 삼성문화타운의 모델이 된 것은 일본 시부야의 ‘다이칸야마’란 고급 주택가다. 외교관들과 디자이너들이 사는 고급 주택들과 작은 갤러리들이 우아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는 ‘다이칸야마’를 한남동에 조성해보자는 것이다. 이 같은 구상에 따라 삼성생명병원과 ‘리움’ 미술관이 들어섰고, 삼성문화재단이 옮겨왔으며,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가 설치되었다. ‘리움’ 관련 인사는 “현실적으로 사기업이 도시계획을 다시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일단 삼성이 시작하면 주변에 회장 등이 살고 있는 LG 등 다른 기업에서도 경쟁적으로 이 지역의 문화적 변신에 참여하지 않을까 하는 전략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아직 대기업들의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작은 움직임은 활발하다. 성북동에 있던 백해영 갤러리가 ‘리움’ 근처로 옮겨왔으며, ‘리움’ 바로 옆에 갤러리나 대안 공간을 운영하려는 이들이 부지런히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들락거린다. 일반 주택을 개조한 전시실을 예약제 관람 등 다소 폐쇄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백해영 갤러리도 3월18일 백남준 전부터 갤러리를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시작했다.

백해영 갤러리의 양은희 큐레이터는 “성북동보다 관객들이 적극적이다. 특히 한국 미술에 관심이 많은 외교관들이 자주 온다”고 말한다.

‘리움’이 ‘이건희 삼성 회장의 개인미술관으로 매우 한정된 사람들만 이용하게 될 것’이라는 설은 한남동 자체의 폐쇄성, 정지된 근대주의가 지배하는 한남동의 특징 때문에 더 그럴듯했을 수 있다. 한남동은 한 번도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공간을 가져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대 개발주의 경제는 세계화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엄격한 질서로 유지되는 모더니즘은 해체되었다. 그런 점에서 ‘리움’은 개인미술관이면서도 동시에 공공성을 획득한다는 쉽지 않은 프로젝트에 뛰어든 셈이기도 하다. 한남동이 배타적인 ‘선민 의식’─작가 강홍구가 ‘중독된 장소감’이라 부른 내부 주민들의 공포심리─을 극복하고 공공의 문화를 생산해낼 수 있을까. 한남동의 변화는 이제부터 시작된다.



주간동아 2005.03.29 478호 (p24~26)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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