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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족 난민촌의 ‘코리안 천사들’

‘라파치과봉사단’ 9년째 설 연휴마다 방문 의료 지원 … 주민들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정들어

  • 매솟(태국)=글·사진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카렌족 난민촌의 ‘코리안 천사들’

카렌족 난민촌의 ‘코리안 천사들’

미약하게나마 시장경제가 돌아가고 있는 카렌족 난민촌 모습.

태국 방콕에서 서북쪽을 향해 버스로 7시간을 달리면 국경도시 매솟이 나타난다. 매솟에서 1시간 정도 서쪽으로 향하면 어느 순간 길옆으로 식물성 재료(티크나무+대나무)만으로 만든 임시 거주지들이 끊임없이 늘어선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바로 아시아 최대의 난민으로 알려진 카렌족 난민촌이다.

카렌족은 북한과 함께 가장 폐쇄적인 국가라는 버마(현 미얀마) 군부독재 정권으로부터 독립하려다 자치권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무차별 살육과 강간 등의 수난을 겪었다. 인구가 약 500만명이나 돼 남아시아의 쿠르드족이란 별칭을 얻은 카렌족은 1949년 ‘툰구(Toungoo) 독립국’을 선포한 이후 55년간 버마 정부와 전쟁을 벌여온 저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무료 제공한 틀니 값만 1억5000만원 달해



사실 카렌족과 버마족의 갈등에는 아시아의 복잡한 근현대사가 녹아 있다. 영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아오며 민족 갈등이 심해졌고, 불교와 기독교 간의 종교 갈등에, 아웅산 수지 여사로 대표되는 버마의 민주화 문제가 더해져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



카렌족 난민촌의 ‘코리안 천사들’

난민촌에 임시로 마련된 치과병원을 찾아온 카렌족 주민들을 치료해주고 있는 한국인 치과의사 오창근씨.

그간 버마 군부는 국제적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카렌족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 작전을 벌여 수십만명에 이르는 난민을 양산했다. 현재 태국 국경 지역 8개의 난민촌에는 약 20만명이 수용돼 있다. 매솟 인근에 위치한 맬라캠프는 가장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유엔난민기구 파견소와 전 세계 20여개의 NGO(비정부기구)가 들어와 난민들의 인권 상황을 조사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와 너무나 먼 나라의 얘기처럼 들리지만 카렌족 난민촌에 9년째 꾸준히 방문하며 끈끈한 우정을 쌓아가는 이들이 있다. 바로 치과의료 봉사단이 중심인 ‘라파치과봉사단’이다. 애당초 서울 성북지역에서 치과병원을 개업한 의료인들로 구성된 봉사단은 80년대부터 낙도와 꽃마을 등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했는데, 90년대부터 활동 지역을 전 세계로 확대한 것이다.

카렌족 난민촌의 ‘코리안 천사들’

열악한 환경에서 수술하는 모습(왼쪽이 이형순 회장).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이형순 치과원장(54)은 “설만 다가오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고 말문을 열었다. 치과팀만 20명(치과 전문의 10명, 치기공사 4명, 간호사 6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일주일 정도 시간을 내야 하기 때문에 설 연휴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는 설명이다.

의료봉사 덕에 ‘한국’ 인기 대단

카렌 난민촌을 9년째 찾아온 이들은 올해도 2월4일부터 9일까지 5박6일간 맬라캠프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했다. 규모로 치면 치과 종합병원 한 동 전체가 옮겨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치과 장비를 가져오기 위해 비행기 한 대를 전세 내듯 했다. 이들은 5박6일 동안 날마다 100여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하며 100여명 이상에게 틀니를 제공했고, 언청이 수술과 각종 기초 수술을 포함한 다양한 의료 활동을 펼쳤다. 무료로 제공된 틀니 값만 무려 1억5000만원에 이른다는 후문이다.

“봉사하겠다는 시혜적인 자세로 이곳에 와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이들을 섬기고 진정한 친구가 되겠다는 자세를 갖고 있어야 해요.”(오창근 드림치과 원장)

이들과 인연이 깊어지자, 이젠 카렌족 사람들이 매년 설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버마 본토에서 3박4일을 걸어와 치료받는 사람들까지 생기고 있다. 현대문명에서 소외된 이들이기에 치과 진료는 복음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치과 수술이 이뤄지는 상황은 매우 열악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보다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생각에 더 큰 사명감을 가지고 설 연휴를 포기하면서까지 이곳을 방문합니다.”(김준수 치과원장)

카렌족이 우리와 더 인연이 깊어진 까닭은 그들이 일찍 ‘기독교’를 받아들였기 때문. 19세기 영국의 지배 영향도 무시할 수 없지만 스스로 신념에 의해 기독교를 받아들인 흔치 않은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카렌족 난민촌의 ‘코리안 천사들’

5박6일 줄곧 틀니 제작에 열성을 다한 유민곤, 최웅수 기공소장(왼쪽부터) .

한국과의 아무 조건 없는 끈끈한 교류 때문인지, 카렌족 사이에서 한국인들에 대한 인식은 어느 나라보다도 좋다. 나누 땀라(22)라는 카렌족 여성은 “버마가 민주화되고, 우리가 난민 상황에서 벗어난다면 가장 먼저 방문하고 싶은 나라가 한국이다”고 말한다. 카렌족 난민촌을 두 번째 방문한 김지호씨(서울대 치대 구강외과 레지던트ㆍ28)는 “내년 설에도 꼭 다시 올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눈물로 아쉬움을 표시하는 카렌족 아이들에게 작별의 손을 흔들었다.







주간동아 2005.03.01 474호 (p42~44)

매솟(태국)=글·사진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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