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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는 지금 ‘말과 글쓰기’ 붐

‘의사소통 능력’ 키우기 실용언어 교육 … 일부 학교에선 신입생들 교양 필수 과목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대학가는 지금 ‘말과 글쓰기’ 붐

대학가는 지금 ‘말과 글쓰기’ 붐

대학들이 학생들의 의사소통 능력 개발을 위한 수업들을 잇따라 개설하고 있다. 숙명여대(왼쪽)와 가톨릭대의 관련 강의 모습.

의사소통 능력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습득될까, 아니면 별도의 교육을 통해 개발해야 할까. 지금까지의 통념은 전자에 가까웠지만, 현실은 후자를 향해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말과 글을 이용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타인과 교류하는 능력, 즉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기 위한 교재와 교육방식이 쏟아져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바람은 특히 대학가를 중심으로 거세게 일고 있다.

숙명여대는 2월 말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와 읽기’라는 책을 펴냈다. 이 대학 신입생들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교양 필수 과목 ‘글쓰기와 읽기’, ‘발표와 토론’의 교재로 활용하기 위한 것. 2002년 3월 이 강의가 처음 개설됐을 때 사용된 교재 제목은 ‘글’로, 3년 만에 ‘글’은 ‘세상을 바꾸는 도구’라는 날개를 달고 화려하게 부상했다.

가톨릭대도 올 3월 개강 전까지 글쓰기, 말하기 등에 관한 종합 교재를 발간한다는 계획 아래 요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문학, 철학, 사회학 등 각 분야의 전공 교수들이 참여해 2년여의 토론 기간을 거쳐 제작한 ‘CAP 교재’(가칭)에는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고전 자료와 실용적 언어생활을 위한 기술들이 망라돼 있다.

단순한 도구 아닌 창조의 원천

성균관대 역시 이번 학기부터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강의를 ‘성균 중점 교양’으로 정해 모든 신입생이 이수하도록 하고, 이 과목만을 전문적으로 지도할 전임 교원 11명을 신규 채용하는 등 ‘트렌드’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글쓰기의 기초와 실제’ ‘학술적 글쓰기’ ‘스피치와 토론’ ‘과학기술문서 작성 및 발표’ 등으로 세분화돼 있는 강의의 중점 목표는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실용적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들 대학이 전부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대학가에 실용언어 교육 열풍이 불면서 이제 웬만한 대학에서는 ‘교양 국어’류의 딱딱한 강의를 찾는 것이 어렵게 됐다. 동덕여대는 이 과목 대신 ‘독서와 토론’ ‘발표와 토론’을 교양 필수로 채택했고, 세종대는 2002년부터 모든 학생이 ‘논술’ 과목을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2학기부터 ‘학술적 글쓰기’ 강의를 개설한 서울대의 경우 올해는 ‘과학과 기술 글쓰기’를 공대의 필수 과목으로 정하는 등 과목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연세대의 ‘글쓰기’, 고려대의 ‘사고와 표현’, 전남대의 ‘글쓰기’, 서원대의 ‘글쓰기와 토론’ 등의 과목도 모두 실용적 의사표현 능력을 가르치는 과목이다. 일부 대학들은 숙명여대의 ‘의사소통능력개발센터’나 가톨릭대의 ‘교양교육원’, 서울대의 ‘기초교육원’, 성균관대의 ‘학부 대학’처럼 관련 교육을 위한 별도의 기관까지 만들고 있다.

“대학 교육에도 트렌드가 있다면, 최근의 유행은 단연 의사소통 능력 교육”(숙명여대 이명실 교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관련 강의가 붐을 이루는 이유는 ‘말하기와 글쓰기야말로 모든 교양의 기초’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

대학가는 지금 ‘말과 글쓰기’ 붐

서울대 ‘글쓰기교실’(왼쪽)과 숙명여대 ‘의사소통능력개발센터’ 홈페이지.

가톨릭대 교양교육원 이창우 교학부장은 “지식 정보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지식은 끝없이 변하는 개념이 됐다. 새로운 지식이 등장하면 기존의 것들은 바로 폐기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이 제련된 지식만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오늘날 교양인의 필수 덕목은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아니라 ‘새로운 지식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는가’”라며 “이제 고등교육의 구실은 개인들에게 독해력, 판단력, 창조력, 표현력 등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대학 교육은 점점 더 이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숙명여대 최시한 의사소통능력개발센터장도 “말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생각과 경험을 형성하고 창조하는 힘의 원천”이라며 “21세기가 요구하는 리더십의 핵심은 언어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경우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이에 대한 훈련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성균관대가 지난해 학생들의 글쓰기 실력 향상을 위해 개설한 ‘글쓰기 클리닉’ 전담 교원 정준영 박사는 “대학 입학시험에서 논술 평가가 시작된 뒤 학생들의 창의력과 표현력은 오히려 후퇴했다. 수험용 논술을 암기과목 공부하듯 익힌 학생들이 틀에 박힌 진부한 사고와 표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의 의견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는 대학 입학 면접시험에서 “역사학 책 가운데 읽은 게 있느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이 ‘로마인 이야기’를 말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주 교수는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의 답이 천편일률이라는 것이 문제”라며 “다양한 지식을 받아들이고 비판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관점을 세워나가는 것이 대학 교육의 본질인데, 요즘 학생들은 그에 대한 기본 훈련이 전혀 안 되어 있다”고 한탄했다.

급격한 확대 갖가지 부작용도

인터넷 인프라와 토론 문화의 확산으로 의사 표현의 기회가 널리 확산됐음에도 학생들의 말하기, 글쓰기 실력이 나날이 떨어지고 있는 것도 대학이 의사소통 능력 교육에 열중하도록 하는 한 원인이다.

다음은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1학년 학생들이 원진숙 교수의 작문 수업 시간에 제출한 보고서의 한 부분.

‘나는 이번 글을 대체로 글쓰기의 습벽을 의식해가면서 극복해나간 사례이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남에게 보여지는 글로서의 부담감이 항상 존재한다.’

짧은 문장임에도 주어와 술어가 호응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원 교수는 “스스로 글을 꽤 잘 쓴다고 생각하는 학생들도 기본적인 주술 관계를 곧잘 틀린다. 학생들의 보고서를 읽다 보면 어딘지 어색해 보이는 문장, 빈약한 논리의 나열에 그치는 불명료한 문장이 수도 없이 많은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대학가는 지금 ‘말과 글쓰기’ 붐

서울대 ‘글쓰기교실’(왼쪽)과 숙명여대 ‘의사소통능력개발센터’ 홈페이지.

가톨릭대 교양교육원 하병학 교수도 “강의실에서 하나의 완결된 문장으로 질문을 던지는 학생조차 보기 힘들다. 대학에서 전공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논리적 사고와 의사소통 능력 같은 교양 교육이 필수”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의사소통 능력 교육이 최근 몇 년 새 급격히 확대되면서 갖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은 기존 학과들 사이의 기 싸움으로 ‘학제적 프로그램’ 마련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국문학, 철학, 사회학, 신문방송학 등 관련 학과 교수들이 서로 기득권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면서 교과 과정 개발과 강사 채용 등의 업무가 표류하는 상황이 잇따르고 있다. 2002년 관련 강의를 시작한 한 대학은 특정 학과의 강의 독식으로 ‘학제적 수업’이 사실상 실종됐다는 평을 듣고 있고, 서울 한 명문대의 경우 2개의 학과가 별도로 전문 기관을 설립해 각각 글쓰기 강의를 개설하고 있다. 최근 의사소통 능력 강의 전문 교원을 뽑은 한 대학의 경우 학과별로 인원을 배정해 각각 ‘자기 사람’을 뽑았다는 뒷말이 무성하다.

이에 대해 숙명여대 최시한 교수는 “의사소통 능력을 위한 강의를 하기에 어문학 전공자는 제재면에서 딸리고, 사회과학 전공자는 언어 능력이 떨어지며, 철학자는 형식논리에 빠지기 쉬운 것이 현실”이라며 “각각의 전문가들이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고, 다른 이들과 유기적인 협력을 해나가도록 하는 게 우리 대학들의 당면 과제”라고 강조했다.

2001년 국내에 소개돼 화제를 모은 ‘교양’(들녘 펴냄)의 저자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그의 책에서 “교양으로 이끄는 황금 길은 바로 언어의 길을 통해 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학들의 의사소통 능력 교육이 우리 학생들을 ‘교양으로 나아가는 황금 길’로 이끌어줄 수 있을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주간동아 2005.03.01 474호 (p36~37)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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