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4

2005.03.01

‘검찰독립’ 스스로 후퇴?

유명인사들 수사 관련 “정치색 띤다” 뒷말 … “정치세력의 득세 우려” 경계론도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5-02-24 11: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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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독립’ 스스로 후퇴?

    서울 서초동에 자리한 대검찰청(왼쪽) 서울중앙지검 전경.

    1월 말부터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와 기자들 사이에서는 ‘기묘한’ 숨바꼭질이 벌어졌다. 통상 검찰이 수사에 돌입하면 기자들이 경쟁적으로 수사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이번에는 검찰이 알 듯 말 듯 수사 내용을 흘리며 기자들로 하여금 따라오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준보 중앙지검 3차장이 “정치권 인사는 아니지만 여러분들이 다 알 만한 인물이 수사 대상이다”고 말하는가 하면, 고건호 특수3부장은 일부 기자들에게 “깜짝 놀랄 만한 인사를 우리 방에서 (수사)하고 있다”며 바람몰이에 나선 것.

    그 주인공은 이연택 대한체육회 회장(69)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판교 일대의 토지 헐값 매입 의혹’이라는 혐의 내용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회장의 검찰 내사 사실이 바로 2월15일에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날은 이 회장이 대한체육회장 연임을 위한 출마선언을 한 바로 다음날이다. 이는 그의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인 PK(부산ㆍ경남) 출신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현 대한태권도협회장)이라는 사실과 맞물리며 왠지 모를 찜찜함을 안겼다.

    ‘검찰의 칼은 너무나 예리해서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는 말은 법조계의 오래된 격언이다. 그러나 송광수 검찰총장이 임기 말을 맞이한 최근의 검찰은 철두철미한 원칙은커녕 입맛에 맞게 칼을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검찰 안팎에서 일고 있다. 특히 특수부 수사라면 비리를 엄단하고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것이어야 하는데, 그런 효과를 가져오기는커녕 모종의 정치적 의도를 내비쳐, 어렵게 쟁취한 ‘검찰의 독립성’이 후퇴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야당에 엄하고, 여당에 관대?



    “모든 수사 사건은 독립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최근 검찰, 특히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행보에 우려를 나타내는 검사들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재경지역 부장급 검사)

    이 회장을 내사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말고도 특수2부(부장 남기춘)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정치적인’ 의사 결정을 내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2월14일 특수2부는 벤처기업으로부터 지구당 사무실 인테리어 공사 비용 3000만원을 지원받은 김희선 의원 혐의와 관련, 회계 담당자만 기소하고 김 의원은 무혐의 처리한 것. 이에 검찰의 내부에서까지 “김 의원에 대해서는 해명성 수사를 하면서 민주당 이정일 의원의 도청사건은 열심이 수사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특수1부(부장 주철현) 역시 ‘한솔 게이트’와 몇몇 공기업 수사를 앞세우며 의욕을 보였으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검찰독립’ 스스로 후퇴?

    2월 18일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연택 대한체육회장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검찰로부터 과분한 배려를 받았다는 평을 듣는 여상의 김희선 의원, 이부영 전 의장, 도청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 민주당 이정일 의원 (왼쪽부터)

    대검은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의혹 수사와 관련, 끊임없이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이부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에 대해서 이미 2004년 11월 돈이 흘러갔다는 정황을 포착했음에도 의장직을 사퇴한 뒤인 2월2일에야 소환한 것. 또한 검찰은 김승연 회장을 소환하는 데 끊임없는 장고를 거듭함으로써 검찰의 수사의지를 의심케 만들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대한생명 수사를 ‘태산명동 서일필’의 수사 결과를 내놓았던 ‘제2의 부영 사건’이라고 조롱하고 있으나, 수사 관계자들은 “만일 대한생명 인수에 관련된 주요 인사를 소환하고도 구속하지 못하면 검찰에 치욕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조심할 뿐이다”고 설명한다.

    이와는 정반대로 대검 중수1과의 박혁규 의원(경기도 광주)에 대한 수사는 박 의원을 넘어서 한나라당 소속인 손학규 경기도지사에 대한 내사로 확대돼 묘한 대조를 이뤘다. 대검 관계자는 “손 지사에게 돈을 건넸다는 건설업자의 진술이 나왔기 때문에 내사했을 뿐이다”고 강조하지만 뒷말이 나올 수밖에 없게 됐다. 이는 인천지검이 한나라당 안상수 시장을 향해 매서운 칼을 내세웠다가 2월17일 인천지법에 의해 무죄판결을 받은 정황과 일맥상통한다.

    임기 말 송 총장 장악력 떨어진 듯

    검찰의 부당한 수사를 주장하는 한 정치인의 변호인은 “검찰권이 적절하게 통제되지 못할 뿐 아니라, ‘한탕주의’에 빠진 검사들이 무모하게 사건을 만들어가는 경향이 높아졌다”고 성토했다. 검찰의 변명인 “공판중심주의에 적응하는 데 따르는 진통이다”고 보기에는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검찰의 해명에도 법조계에서는 검찰총장 교체를 비롯한 검찰 권력의 교체와 사법부에 의해 차별받고 있다는 여당의 강경기류를 의식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대검 중수부의 현대비자금 수사의 주역인 ‘3박’(박광태 광주시장,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박주선 전 의원) 모두 대법원에서 무죄나 무죄에 가까운 파기환송심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심지어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까지 사석에서 “요즘은 특수부 검사들에 대한 신뢰가 많이 추락하고 있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정도가 됐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 내의 특정 정치세력의 득세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 내용의 핵심은 권력 핵심과 가까운 특정 검찰세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송 총장 초기에는 검찰총장의 조직에 대한 장악력이 셀 수밖에 없었지만, 임기 후반으로 가면서 장악력이 떨어지며 자연스레 청와대의 영향력이 더욱 세졌다는 지적이다.

    과연 새로운 검찰총장과 검찰은 검찰 독립을 계속 밀고 나갈 수 있을지 국민의 관심과 걱정이 교차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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