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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돌출 정동영 장관 “아뿔싸!”

북-미 대결구도 파장 입지 좁아져 … 눈에 띄는 역할 못하면 향후 행보 큰 부담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북핵 돌출 정동영 장관 “아뿔싸!”

북핵 돌출 정동영 장관 “아뿔싸!”

정동영 장관이 2월1일 이라크 아르빌에 주둔 중인 자이툰 부대를 방문해 현지 장병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브레인인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 겸 NSC 상임위원장에 대해 “존경한다”는 표현을 곧잘 쓴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닌 정색하고 하는 발언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 통일부 관료들이 수장인 정 장관을 바라보는 시선도 매우 호의적이다.

정 장관은 노 대통령과 자주 식사를 함께한다. 일주일에 두세 차례 독대를 한다는 것이다. 정 장관은 다른 부처 장관 보고 때도 노 대통령과 함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장의 단독 보고 때도 이따금 NSC 상임위원장 자격으로 정 장관을 불러 함께 보고를 받는다.

대권에 가장 근접한 정치인 중 한 사람인 정 장관에게 ‘통일부 장관직’은 ‘꿩 먹고 알 먹는’ 자리로 비쳐졌다. ‘한반도의 미래’라는 화두를 놓고 현장을 누비는 모습은 벌써부터 국민에게 각인됐다. 정 장관이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서 주역 노릇을 한다면 엄청난 ‘정치적 자산’을 얻게 된다.

이런 정 장관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섰다. 북한의 핵 보유 선언으로 격랑이 휘몰아치는 까닭이다. 북한 전문가라고는 할 수 없는 정 장관의 능력을 깎아내리는 소리도 곳곳에서 들린다. 정 장관의 ‘낙관론’은 결과적으로 ‘헛발질’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한나라당은 북핵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며 거세게 몰아붙인다.

능력 발휘 해보기 전 ‘감점’ 상황



북핵 문제가 심각한 위기로 치닫는다면 정 장관은 지도력에 일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북-미 대결 구도가 더욱 깊어지면 북핵 문제 해결에서 정 장관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지금보다 줄어든다는 점. 장관으로서의 성공 여부가 사실상 미국과 북한의 손에 달려 있다는 극단적인 관측도 나온다.

그는 남북관계에서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낙관론을 펼쳐왔다. 며칠 앞도 내다보지 못한 낙관론은 결국 ‘오판’으로 드러나 정 장관에게 부메랑이 됐다. 본격적인 시험을 치르기에 앞서 ‘감점’부터 당한 셈이다. 정 장관의 오판을 대권 행보와 연계해 해석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남북관계에서 큰 건을 터뜨려 대선 행보의 지렛대로 삼고자 했던 게 아니냐는 것. 열린우리당 한 의원은 “내가 정 장관의 처지라도 개인적으로 욕심을 부렸을 것 같다”면서 “정 장관이 북핵 문제 해결을 이루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은 정치 지도자로서 당연한 게 아닌가. 오히려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북핵 돌출 정동영 장관 “아뿔싸!”

노무현 대통령과 정 장관은 돈독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주변 환경이 정 장관이 오판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흘렀다는 동정론도 있다. 북한과의 비선 접촉을 하지 않는 게 노무현 정부의 원칙이다. 지난해 8월에 하기로 한 장관급 회담은 아직도 재개되지 않고 있다. 비공식적인 대화 경로가 없는 탓에 북한과 메시지를 직접 주고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주변 환경이 낙관론에 힘을 실었다는 것이다.

한 외교전문가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6자회담의 재개를 낙관하는 분위기였다. 커트 웰던 미국 하원 군사위 부위원장이 북한을 다녀와 희망적인 북한의 메시지를 전했고, 미 백악관도 6자회담이 임박했음을 시사했다. 따라서 북한이 6자회담에 참여할 것이라는 해석이 당연한 상황이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전격적인 북한의 핵 보유 선언으로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하기에 앞서 정 장관의 행보엔 거침이 없었다. 다보스포럼에선 핵을 포기한 북한과 11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회의에서 축제의 장을 기대하고 있다는 메가톤급 이슈를 꺼내놓았다. 남북정상회담 기대 발언은 정부가 ‘구상’해온 큰 그림의 일단을 처음으로 내비친 것이다. 설익은 구상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셈.

취임 초기 정 정관은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한다. 현안에 대한 언급이 필요한 언론 인터뷰 등을 피하면서 업무를 파악하고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주력했다는 것.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는 등 목소리를 내며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간 것은 지난해 12월 개성공단 방문 이후다. ‘묵언 공부’의 결과를 본격적으로 풀어내려는 시점에 북한이 뒤통수를 친 셈이다.

정 장관은 올해가 광복 60주년이라는 점에 특히 주목했다고 한다. 세계가 냉전에서 벗어난 지 15년 된 상황에서 한반도만 지각생이고 낙오자라는 게 정 장관의 판단. 그는 상징적으로 중요한 2005년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면서 한반도를 세계사의 흐름에 합류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단 한 차례도 당국 간 대화 못해

이런 맥락에서 정 장관은 2차 북핵 위기에서의 한국의 역할을 강조해왔다. 북한과 미국의 틈에서 제삼자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것. 지난해 6월 열린 6자회담에서 북한에 제안을 내놓는 과정에서 한국이 적지 않은 구실을 했다는 인식 아래, 6자회담이 기술적인 수준으로 발전하면 한국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였다.

그러나 북한의 핵 보유 선언으로 이러한 구상은 실현 가능성이 낮아졌다. 정 장관의 기대와는 반대쪽으로 흐르는 분위기다. 전략적 결단(북한)→전향적 선택(미국)→포괄적 지원(한국)이라는 구상에서 한국의 입지가 이전보다 더 좁아졌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주무부처 책임자인 정 장관의 운신할 수 있는 폭도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 것. 동국대 고유환 교수(북한학)는 “남북관계 경색은 불가피한 것 같다”고 내다봤다.

긴장이 고조돼 북-미가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거나,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하고, 더 나아가 핵실험에 나선다면 한국의 포용과 민족화해 정책은 존폐의 기로에 선다. 정부 일각에선 북핵 사태가 악화될 경우 개성공단사업 일시 중지, 소극적인 대북 체제 참여를 거론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한다. 정 장관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통일부를 떠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이다.

통일부 장관직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 장관은 북한의 핵 보유 선언 이전까지는 통일부 장관을 맡음으로써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보다 유리한 처지에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론의 주목을 받았을 뿐더러 개성공단 시험 가동의 주인공으로 떠올랐고, 이라크 아르빌을 찾아가 자이툰부대를 위문하면서 국가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견고하게 쌓기도 했다.

그러나 정 장관 취임 이후 8개월 동안의 북한과의 관계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취임 직후인 7월8일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기 조문단의 방북을 불허하면서 어긋나 7월27일엔 동남아의 한 국가에서 탈북자 468명이 한국에 들어오는 일이 발생했다. 북한은 “공화국 체제를 허물려는 적대행위로 규정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이 결과 정 장관은 취임 8개월 동안 단 한 차례도 남북 당국 간 대화를 하지 못했다.

정 장관은 북핵 문제 등에서 열매를 맺은 뒤 화려하게 당으로 되돌아가는 게 최선의 길이었다. 통일부 장관으로서의 성공은 이명박 시장의 서울 시장처럼 그 자체로 대선가도의 과정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나 정 장관이 북핵 문제를 원만하게 푸는 데 눈에 띄는 일을 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늘고 있다. ‘실패한 장관’이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향후 정치 행보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정 장관이 자의 반으로 통일부 장관을 맡은 것은 정치인으로서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어왔지만 ‘알맹이’가 부족하다는 세간의 비판도 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감각과 세련된 이미지로 성공가도를 달려왔지만 대권엔 2% 부족하다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시련과 검증을 겪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정치권에서 정 장관의 약점으로 제기된다. 정 장관은 ‘북핵 시련’을 넘어설 수 있을까.



주간동아 2005.03.01 474호 (p28~29)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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