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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창ㅣ ‘신의 법정’과 창조론 논란

美國 ‘21세기판 원숭이 재판’ 열릴까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美國 ‘21세기판 원숭이 재판’ 열릴까

어디까지 가는 건가. 아니, 어디까지 되돌리려고 하는 건가.

미국에 불어닥친 ‘급진 보수주의’가 급기야 인류의 최대 지적 성취물의 하나인 진화론이라는 ‘성역’에까지 침범하고 있다. 정교분리의 헌법 원칙에 따라 진화론만을 교육하던 공립학교 중 일부에서 이른바 ‘지적 설계론’이라는 변형된 형태의 ‘창조론’을 가르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지적 설계론은 생물계가 너무 복잡해 도저히 인간이 진화의 결과로 탄생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지적인 힘을 가진 초월자가 창조에 개입한 게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창조론과 다른 것은 종교적 색채를 띠지 않으면서 진화론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에 출현한 이 이론은 보수적 기독교단의 열렬한 환호 속에 진화론에 맞설 새로운 ‘무기’로 각광받고 있다. 학교에서 지적 설계론을 가르칠 수 있게 해달라는 소송이 잇따를 것이라는 예측이 나돌면서 미국 사회에는 ‘지적 설계론 대 진화론’의 전운이 서서히 감돌고 있다고 한다. 서구에서 이미 오래 전에 끝난 것으로 여겨졌던 진화론 대 창조론의 싸움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국면을 맞게 된 셈이다.

창조론, 혹은 ‘유사 창조론’의 역습으로 시계는 80년 전의 풍경으로 돌아간 듯하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공수(攻守)의 역할이 바뀌었을 뿐이다. ‘신의 법정’이라는, 6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가 바로 이 공방전을 그리고 있다.

다름 아닌 1925년 미국에서 실제로 열렸던 일명 ‘원숭이 재판(Monkey Trial)’이다. 흑인과 백인 남녀의 사랑을 그린 ‘초대받지 않은 손님’, 독일 전범 재판을 소재로 한 ‘뉘른베르크 재판’ 등을 연출한 사회파 감독 스탠리 크레이머 작품인 이 영화는 법정에 제소된 진화론에 대한 창조론 측의 기소장과 그에 대한 진화론 측의 자기 변론의 공방이다.



피고인의 이름을 따서 ‘스코프스 재판(Scopes Trial)’이라고도 불린 이 재판은 미국 테네시 주의 작은 시골도시 공립학교 교사인 스코프스가 수업 중에 진화론을 가르친 것을 일부 기독교인들이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주 교육법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다. 우연하게 시작된 듯했던 재판은 사실 피고 측이 진화론의 공론화를 노리고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도발이었다. 전국에 라디오로 생중계됨으로써 일단 의도는 적중했다.

재판의 핵심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을 것이냐는 문제로 모아졌다. 원고 측은 이미 과학적 진리로 받아들여지던 진화론을 그때까지도 거부하던 이른바 ‘근본주의(Fundamentalism)’파였다. 여기서 근본주의라는 말의 어원에 대한 오해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근본주의를 이슬람과 결부해 얘기하지만 사실 그 기원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는 기독교도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슬람에 근본주의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서방 측의 작명일 뿐이다.

80년 전이나 지금이나 미국의 남부지역을 거점으로 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천지 창조나 노아의 방주, 처녀 수태 등 성경의 모든 일들을 ‘사실(史實)’로 받아들인다. 재판이 열린 테네시 주 역시 근본주의 세력이 강한 남부 주였고, 재판은 처음에는 방청객의 응원 분위기를 등에 업고 원고 측의 우세로 흘러간다.

원고 측 변호사인 브라이언은 피고 측 변호사 대로에게 “우리가 미국 원숭이가 아닌 유럽 원숭이에서 진화되었다고 결론지을 것이다”고 비아냥댄다.

수세에 몰리던 대로 변호사는 그러나 브라이언을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지게 함으로써 전세를 역전시킨다.

그는 브라이언에게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이 문자 그대로 해석되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말을 정말 믿습니까?”

“성경에는 여호수아에게 태양이 서 있도록 명령했죠, 그렇죠? 그리고 그걸 믿습니까?”

처음에는 자신 있게 답변하던 브라이언의 입에서 결국 “성경이 말하는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는 신경질 섞인 대답이 나오고 만다. 성경을 수많은 상징과 해석의 원천으로서 받아들이지 않고 씌어진 그대로 믿으려고 할 때 빠질 수밖에 없는 자기모순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재판은 피고 측에 벌금형을 선고함으로써 원고 측의 승소로 끝났지만 당시 상황을 전한 대부분의 신문들은 ‘상징적인 벌금형이었을 뿐, 사실상 진화론의 승리’라고 평했다.

다시 ‘21세기판 원숭이 재판’이 열릴 것인지, 기대된다.



주간동아 2005.02.22 473호 (p85~85)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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