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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쿠르드 지역서 돈 벌어가세요”

북미쿠르드동맹 사만 살리 박사 호소 “한국 기업 이라크 진출 제한 지나친 걱정”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쿠르드 지역서 돈 벌어가세요”

“쿠르드 지역서 돈 벌어가세요”

2004년 12월8일 전격적으로 자이툰 부대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 쿠르드족 관계자들은 쿠르드 자치지역은 노 대통령이 방문해도 될 정도로 안전하다고 강조한다.

당신이 쿠르드 자치지역을 방문한다면, 우리는 당신의 안전을 전적으로 책임지겠소. 쿠르드 터키 국경선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쿠르드 지역을 떠날 때까지 민병대인 페슈메르가 요원들은 당신을 털끝 하나 건들지 못하도록 철저히 보호할 것이오. 당신이 잘못되면 한국 기업인들은 쿠르드 지역에 오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쿠르드인들의 미래도 암담해지기 때문이오….”

젊은 시절엔 페슈메르가 요원으로 이라크 군에 대항해 싸웠고,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따고 미국 시민권을 얻었으나 여전히 쿠르드의 독립과 발전을 위해 뛰어다니고 있는 사만 살리 박사(51·북미쿠르드동맹 의장)는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아랍어 억양이 강한 영어로 또박또박 말을 이어나갔다.

“노무현 대통령의 아르빌 방문은 정말 고맙소. 노 대통령의 방문은 그만큼 쿠르드 지역이 안전하다는 것을 반증해준 것이 아니겠소. 이라크전쟁이 일어난 후 아르빌에 주둔한 미군 및 이들과 교대한 한국의 자이툰 부대에서는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나오지 않았소. 쿠르드 지역은 한국인들이 들어와 안심하고 활동해도 좋을 정도로 안전합니다. 기자란 진실을 전달하는 사람 아닙니까. 쿠르드 지역을 방문한 당신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대로 보도해주기만 하면 됩니다.”

안전 이유로 사업가 방문 막아

살리 박사가 기자에게 쿠르드 지역 방문을 강력히 권유한 것은 이 지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 전무하기 때문. 2003년 이라크전쟁이 발발하고 지난해 김선일씨 피살 사건이 일어나면서 정부는 모든 한국인의 이라크 입국을 금지했다. 이 방침은 선교사들의 무분별한 이라크 방문을 막는 데는 큰 구실을 했으나, 재건 사업에 참여하려는 사업가들의 방문까지도 막아버렸다.



지금 미국 처지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이라크 안정과 함께 하루빨리 이라크를 재건하는 것. 곳곳에서 재건공사가 펼쳐져야 전쟁과 테러에 쏠려 있는 이라크인들의 관심이 ‘삶’으로 돌아와 이라크 안정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미국 의회는 행정부에 장차 이라크에서 생산될 석유를 담보로 800억 달러를 지출할 수 있도록 승인해주었다. 이중 건설 부문에 풀릴 돈이 대략 500억 달러인데, 미 행정부(주로 미 육군 공병단이 대행)는 이 공사를 전량 미국 건설회사에 낙찰해주고 있다.

지난해 미 행정부는 미국 회사에 185억 달러어치의 공사를 발주했다. 이중 상당 액수의 공사는 전문 업체에 재하청돼야 하는데, 미 행정부는 이라크 국민과의 화해를 위해 가급적 이라크 기업에 재하청을 주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 기업은 실력이 부족해 재하청받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 등으로 지난해 미 행정부가 발주한 공사 중 실제로 공사에 들어간 것은 5%에 지나지 않았다. 때문에 이라크에서는 한국처럼 다종다양한 건설업이 발달한 제3국의 건설회사가 들어와 이라크 회사와 합작회사를 차린 뒤 재하청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으로 거론되고 있다고 한다.

“쿠르드 지역서 돈 벌어가세요”

쿠르드 자치정부가 자이툰 부대를 통해 한국 기업에 보내온 초청장(오른쪽). 그러나 한국 외교부는 이 초청장을 받은 한국 기업의 이라크 방문을 불허했다(왼쪽).

“테러는 절대로 제로가 될 수 없소. 세계에서 가장 보안이 철저한 나라가 이스라엘인데, 그런 이스라엘에서도 테러가 빈번히 일어나지 않소. 즉 테러리스트가 마음먹으면 테러는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오. 그런데 아르빌 지역에서는 테러가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이는 쿠르드 사람들이 싸움보다 재건을 원하고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소. 96년 북한 잠수함이 한국에 침투했을 때 세계 언론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소. 하지만 그때 한국인들은 큰 동요 없이 묵묵히 생업에 종사하지 않았소. 지금 쿠르드 자치지역 상황이 그때 한국과 비슷하다는 말이오.”

살리 박사는 “한국도 쿠르드 지역이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해 자이툰 부대를 아르빌로 파병하지 않았느냐”고 지적했다.

“아르빌 지역은 상당히 안정돼 있어 미군과 함께 쿠르드 자치정부도 공사를 발주하고 있소. 그런데 그곳에는 자이툰 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쿠르드 자치정부가 발주하는 공사는 한국이나 한국과 연고가 있는 기업에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아르빌 지역은 하루 3시간씩 제한 송전을 할 정도로 전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다른 사업은 펼쳐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소. 지금 우리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20만kW짜리 발전소인데, 한국에는 두산중공업 등 발전기 회사가 즐비하지 않은가.”

자이툰 부대 파병과 관련해 우리가 가장 크게 의식하고 있는 위험은 쿠르드족 독립과 관련된 활동일 것이다. 이런 우려는 일부 쿠르드족 강경파가 ‘석유가 많을 뿐만 아니라 후세인이 이라크인을 강제로 이주시킨 80년대 전까지만 해도 쿠르드인이 더 많이 살았던 키르쿠크를 쿠르드 자치지역의 수도로 삼아야 한다’는 키르쿠크 회복론을 펼칠 때마다 힘을 얻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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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의 쿠르드 자치지역 진출을 권유한 사만 살리 박사.

의무만 다하고 권리는 못 챙기나

쿠르드족이 독립을 감행하면 1월30일 총선으로 탄생할 새 이라크 정부는 물론이고 터키와 이란 시리아 정부까지도 강력히 반대해,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 전역에 전운이 감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적잖은 희생을 치러가며 이라크를 장악한 미국은 쿠르드족 독립으로 인해 중동이 다시 전운에 휩싸이는 것을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두 번째 걱정은 쿠르드족의 내분이다. 이라크의 쿠르드족은 남부인 술라이마니아 주(州)를 차지한 쿠르드애국동맹 세력과 북부인 다후크· 아르빌 주에 포진해 있는 쿠르드민주당 세력으로 양분돼 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두 세력은 총부리를 겨눌 정도로 대립이 심했다. 하지만 98년 미국의 중재로 화해하고 2003년 이라크전쟁 때 함께 후세인 세력에 대항해 싸운 후 쿠르드애국동맹은 아르빌이 쿠르드 자치지역의 수도가 되는 것과 쿠르드민주당의 대표인 바르자니가 총리에 오르는 것에 동의했다. 살리 박사도 술라이마니아 주 출신이지만 바르자니 총리가 이끄는 쿠르드 자치정부가 하는 일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쿠르드 지역서 돈 벌어가세요”
때문에 전문가들은 쿠르드족 독립이나 쿠르드족 내분을 염려해 한국 기업의 쿠르드 지역 진출을 억제한다면 이는 지나친 걱정이라고 지적한다. 한 소식통은 “지금 한국 건설업체들은 바닥을 기는 국내 건설 경기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결국 ‘고(高)위험 고수익’을 의식하며 이라크로 진출할 것이냐가 관건인데, 자이툰 부대가 있는 쿠르드 지역은 상대적으로 저(低)위험 지역이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한 관계자는 키르쿠크 지역에만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이 최근 아르빌 인근에서도 발견되었다며 석유가 채굴되면 아르빌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쿠르드 지역으로 한국 기업을 유치하려는 살리 박사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는 “군대를 파병했으면 한국은 아르빌에 한국 총영사관을 열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총영사관 개설이 쿠르드족 독립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어 부담스럽다면, 민간인을 명예총영사로 임명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까지 권유했다.

노 대통령은 1월13일 연두기자회견에서 “미국 동맹국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이라크에 자이툰 부대를 파병했다”고 밝혔다. 한국은 의무만 다하는 순진한 나라로만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인가.

한 관계자는 “제2의 김선일씨 사건을 의식하고 있는 정부 처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돈을 벌지 못하면 망하고 마는 것이 기업의 생리이기도 하다. 김선일씨 사건을 당한 가나무역의 김천호 사장도 다시 이라크로 들어가기 위해 애쓰지 않았는가. 정부는 전쟁 지역에 진출하려는 기업에 대해서는 ‘반드시 위험지역 진출자를 위한 특수 보험 등을 들게 하고, 현지에 진출한 뒤에는 한국군의 통제 아래 활동한다’는 등의 규약을 제시해 이를 수용하면 출국을 허가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주간동아 2005.01.25 470호 (p34~35)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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