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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l 충격! 향정신성 의약품 남용

중독성 약품 처방 고지 의무 ‘절실’

효과·부작용 설명 있어야 환자도 조심 … 미국일부 주에선 법으로 의무화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중독성 약품 처방 고지 의무 ‘절실’

중독성 약품 처방 고지 의무 ‘절실’

의사가 환자에게 향정약품의 부작용에 대해 설멸해주고 있다.

신경성 위장병으로 향정신성 의약품(이하 향정약품)인 중독성 항불안제를 먹고 있는 환자가 두통이나 척추 통증 때문에 같은 약을 중복해서 먹는다면? 집중력 향상을 위해 향정약품인 각성제(메칠페니데이트)를 먹고 있는 학생이 신경성 위염으로 중독성 항불안제를 또 먹는다면?

그 답은 뻔하다. 전문가들은 향정약품 과다복용으로 신체적, 정신적 부작용에 시달리다 결국 약물중독에 걸릴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각 병·의원들이 서로의 처방 내용을 알 수 없고, 약국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없는 시스템에서 이런 일은 현재 진행형의 사실이라는 점이다. 국내의 모든 병·의원과 약국을 인터넷으로 연결해 처방전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단번에 해결되겠지만, 이는 환자의 질환 정보가 유출되는 등 더 큰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높다. 그렇다면 다른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사실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은 향정약품을 처방하는 의사가 환자에게 향정약품 처방 사실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 데서 비롯한다. 향정약품의 효과와 부작용, 중독성 여부에 대한 설명을 듣고도 오랫동안 복용한다든지, 중복해서 처방받는 환자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작용 말하면 누가 정신과 오겠나” 의료계 반응 냉담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환자에게 향정약품을 처방할 때 의사의 고지 의무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 의사 개인의 윤리 문제일 뿐, 법적 책임이 뒤따르거나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다보니 굳이 향정약품 처방 사실을 알려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용인정신병원 하지현 과장은 “중독성 항불안제와 각성제 등 향정약품과 항우울제는 부작용과 중독 가능성만 제대로 알려주면 많은 환자들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지 더 이상 이 약물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향정약품 처방에서 고지 의무는 세계 최대의 향정약품 소비국인 미국을 보면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미국 뉴욕 퀸스에서 정신과의원을 개업한 신경정신과 전문의 김병석씨는 “미국 사회에선 향정약품을 처방할 때 의사가 환자에게 향정약품 처방 사실을 알리는 게 의무로 정착되어 있다. 만약 알리지 않았다 사고가 나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의사는 극도로 방어적 의료행위를 한다”고 말한다. 때문에 미국에서는 정신과가 아닌 다른 과에서 향정약품을 처방하는 것은 엄청난 비윤리적 행위로 취급받으며, 이 경우 환자한테서 고소를 당할 확률이 높다는 것. 약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하다 보니 중독성이 강한 약물의 처방은 되도록 피하게 된다는 게 미국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미국의 경우 주마다 다르지만 처방약에 대한 각종 정보의 고지를 법으로 의무화한 곳도 있다(표 참조).

처방 고지 의무 법제화와 함께 향정약품을 처방할 때는 반드시 정부의 감시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경우 향정약품을 건강보험 적용 없이 처방하는 현실에서 정부가 의사들이 어떤 약품을 누구에게 처방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뉴욕의 정신과 개업의 이운순씨는 “미국의 많은 주에서 벤조계 항불안제 등 향정약품을 처방할 때는 정부에서 만든 특별처방전을 쓰는데, 그중 한 부는 반드시 주정부에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며 “특별처방전에는 숫자가 붙어 있어 조작을 하지 못하고 처방전의 내용을 검사해 문제가 발견되면 주정부가 시시비비를 밝히고 처벌에 나선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런 제안에 대해 국내 의료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가뜩이나 정신과를 오기 싫어하는 풍토에다 막연한 두려움만 있고 향정약품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는 현실에서 약의 부작용부터 이야기하면 누가 정신과를 찾아오겠느냐”는 게 의료계 전반의 반응이다.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오강섭 교수(신경정신과)는 “향정약품에 대한 부작용을 고지할 경우 증상이 아직 개선되지 않아 실제 약물의 처방이 필요한 경우에도 이를 약물 중독으로 오해해 치료를 포기할 수 있기 때문에 고지 의무화는 일반인들의 향정약물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후에나 법제화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수가를 자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는 미국의 사례를 들다가, 정작 환자들을 위한 감독 규정을 언급할 때는 한국의 현실을 얘기하는 것을 보고 환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법적 구속력이 있는 ‘뉴욕주의 환자권리장전’ 중에서



●환자는 진단, 처방, 예후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고지받아야 한다.

●환자는 처방의 효과 및 부작용에 대한 모든 정보를 고지받아야 한다.

●환자는 처방이 자신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고지받아야 한다.

●환자는 처방에 관한 모든 의사결정에 참여해야 한다.의사가 환자에게 향정약품의 부작용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주간동아 2005.01.25 470호 (p24~24)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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