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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ㅣ충격! 향정신성 의약품 남용

“약 먹었다, 죽고 싶다” 자살 부르는 ‘항우울제’

美 FDA, 어린이와 청소년 복용때 문제점 ‘인정’… 근심, 적대감, 불면증도 부작용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약 먹었다, 죽고 싶다” 자살 부르는 ‘항우울제’

“약 먹었다, 죽고 싶다” 자살 부르는 ‘항우울제’
중학교 입학을 앞둔 2000년 1월, 케이틀린 맥킨토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음악과 미술 문학에 재능이 있고, 동물을 좋아해 수의사가 되고 싶어하던 평범한 소녀 케이틀린을 자살로 내몬 ‘악마’는 누구였을까.

“항우울제 팍실(Paxil)과 졸로프트(Zoloft)를 복용한 지 8주일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발작 증세로 항우울제를 복용하면서 강한 자살 충동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04년 2월2일 열린 미국 식품의약국(FDA) 향정신성 의약품 자문위원회에서 케이틀린의 아버지 글렌 매킨토시는 딸의 자살이 항우울제의 부작용 때문이라면서 이같이 진술했다.

항우울제란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쓰이는 의약품을 말한다. 가장 널리 쓰이는 항우울제는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로, SSRI는 선택적으로 세로토닌(혈액이 응고할 때 혈관 수축 작용을 하는 물질)이 신경말단으로 다시 흡수되는 것을 차단함으로써 뇌에서 세로토닌의 작용을 강화하는 구실을 한다. 케이틀린이 복용했던 팍실과 졸로프트는 널리 쓰이는 SSRI 계열의 약이다.

‘자살 유발성’ 놓고 의학계 오랜 논란 … FDA가 조사 끝에 결론



SSRI 계열의 항우울제가 우울증을 앓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는 우려는 의학계에서 오래 전부터 논란이 벌어져온 문제다. 우울 증세가 심각한 수준일 때보다는 증세가 다소 호전되는 와중에 자살을 시도하는 경향이 더 많다는 것이 임상적으로 증명돼왔기 때문. 특히 항우울제를 처방한 첫 주에 자살 충동이나 공격성이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보고가 여러 차례 이뤄져왔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그 원인에 대해 무기력한 상태에서는 자살을 시도할 힘조차 없다가 항우울제 복용으로 몸을 추스르게 되자 자살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항우울제가 자살 충동을 부른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1990년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의 한 정신과 교수는 “환자들 중 일부가 항우울제 프로작(Prozac)을 복용한 뒤 심각한 자살 충동을 보였다”는 요지의 글을 발표한 바 있다.

“약 먹었다, 죽고 싶다” 자살 부르는 ‘항우울제’

항우울제 부작용과 관련 집단소송,뉴스 등의 자료를 게시해놓은 \'항우울제의 사실\' 웹사이트.

지난해 미국 FDA는 항우울제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자살 충동을 유발할 수 있음을 공식 인정해 오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2004년 9월14일 FDA 자문위원회 위원들은 “앞으로 판매되는 SSRI 계열 항우울제 약에 자살 충동 유발 위험성을 알리는 내용의 경고문을 의무적으로 부착하도록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FDA는 ‘항우울제는 우울 증세나 기타 정신적 문제를 가진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과 그 행동을 실현할 위험성을 증가시킨다’는 내용의 경고문을 약 설명서 맨 윗부분에 검은 테두리의 상자를 만들어 그 안에 굵은 글씨로 써넣도록 했다. 또한 ‘경고-임상적인 증세 악화와 자살 위험’이란 제목의 글도 설명서에 첨부하도록 했다. 부작용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의사가 매주 환자와 대면 상담을 할 것, 환자 가족으로 하여금 환자의 비정상적 변화를 의사에게 신속하게 보고하도록 할 것, 그리고 항우울제를 포함해 모든 선택 가능한 치료방법에 대해 환자나 보호자와 함께 논의할 것 등이 그 내용이다.

FDA가 항우울제의 자살 충동 위험성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한 것은 2003년 6월 영국 보건당국의 발표가 계기가 됐다. 영국 보건당국이 “의료계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SSRI 계열 항우울제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자살 행동 위험을 증가시킨다”면서 “이 약이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처방되는 것은 부적당하다”고 발표했던 것.

그러나 FDA는 지난 한 해 동안 자살 충동 유발에 관한 연구 결과를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에 시달렸다. 항우울제가 자살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도출해내고도 이 연구의 발표를 미뤘기 때문. 찰스 글라스리 상원 재정위원회 의장은 “영국 보건당국이 항우울제 처방에 대한 새로운 충고를 발표한 지 8개월 만에, FDA가 보고서를 작성한 지 6개월 만에야 결과가 공개됐다”면서 “FDA가 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데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는지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폐 논란에 휩싸인 보고서는 FDA 의약안전과 소속 앤드루 모시홀더 박사가 작성한 보고서다. 모시홀더 박사는 총 9가지의 SSRI 계열 항우울제를 복용한 4250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22개 연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항우울제를 복용한 어린이 우울증 환자가 가짜 약을 복용한 환자보다 2배가량 더 높은 자살 행동 경향을 보인다는 결론을 이끌어냈다. 항우울제를 처방받은 2298명 중 74명이, 가짜 약을 처방받은 1952명 중 34명이 자살 시도로 볼 수 있는 행동을 했던 것. FDA는 모시홀더 박사가 2004년 2월2일 열린 자문위원회 회의에서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했음을 인정했다.

항우울제의 부작용은 자살 충동을 부르는 위험성뿐만이 아니다. 근심, 불안, 불면증, 초조, 적대, 충동 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심지어 심각한 수준의 폭력성까지 유발할 수 있다. 실제 항우울제를 복용한 성인과 어린이 환자들이 폭력 행동을 보인다는 많은 보고가 있다. 이와 관련, 12세 소년이 저지른 살인사건 재판이 미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미국 항우울제 부작용 환자들 제약회사 상대 소송

200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남동부에 있는 도시 체스터에서 12세 소년 크리스토퍼 피트먼이 잠자고 있던 조부모에게 4발의 총알을 쏜 사건이 일어났다. 부모의 이혼으로 조부모에게 보내진 크리스는 항우울제 졸로프트를 복용한 지 2주일 만에 이 같은 일을 저질렀다. 크리스는 사건 직후 정신과 의사에게 “무언가가 내게 그렇게 하라고 말했어요”라고 털어놓았다. 크리스 변호인 측은 “이 사건은 크리스의 자제력을 넘어선 상태에서 벌어진 일로 항우울제의 부작용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는 항우울제의 부작용을 겪은 환자들이 제약회사를 상대로 낸 집단소송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4000여명의 환자들은 항우울제 팍실을 판매하는 한 영국 제약회사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냈다. 이들은 “GSK 제약사는 팍실이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몇 년 동안 이를 은폐해왔다”면서 “우리는 충분한 정보를 가진 상태에서 팍실 복용을 결정할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변론을 맡은 변호사 카렌 멘지스는 “환자들은 메스꺼움, 현기증, 중추신경 장애를 호소하고 있으며, 일자리를 잃거나 자녀를 돌보지 못하는 환자들도 많다”고 말했다. 이 제약사는 항우울제를 먹은 지 이틀 후 아내와 딸, 손녀를 살해하고 자살한 도널드 셸 친척들이 제기한 소송을 무마하기 위해 650만 달러를 지급한 바 있다.

항우울제의 자살 충동 유발 위험성의 고지를 의무화 한 FDA 결정에 대해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제프리 리버먼 약물학 교수는 “미국에서 항우울제는 아주 인기 있는 약이며 의사들도 쉽게 처방하는 경향이 있다”며 “항우울제에 대해 새로운 경고문을 붙이도록 한 효과는 의사들로 하여금 보수적인 항우울제 처방을 유도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심각한 증세를 나타내는 우울증 환자에게만 이 약이 사용될 것이란 전망이다. 미국의 항우울제 시장은 연간 140억 달러(약 14조4800억원) 규모다. 2004년 1∼5월까지만 총 4600만건의 항우울제 처방이 이뤄졌는데, 이는 같은 기간 전년 대비 5% 늘어난 수준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항우울제 시장 규모는 2004년 625억원 규모로 해마다 20%씩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유통되고 있는 SSRI 계열 항우울제 제품 중 극히 일부만이 약 설명서에 자살 충동 유발 위험성에 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청 의약품관리과 관계자는 “미국의 항우울제 관련 논란을 알고 있으며, 시판되는 항우울제 설명서에 자살 충동 유발 위험성에 대해 좀더 상세한 설명을 넣을지 검토있다”라고 밝혔다.



주간동아 2005.01.25 470호 (p22~23)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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