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6

2004.12.30

바이킹의 나라 스웨덴 살인적 물가에 ‘화들짝’

10인 공동 침실 숙박료가 5만원 … 숲과 호수 어우러진 풍경은 아름다움의 극치

  • 글.사진=행창/승려 haengchang17@yahoo.co.kr

    입력2004-12-24 10: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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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킹의 나라 스웨덴 살인적 물가에 ‘화들짝’

    중세풍 건물들. 스톡홀름 연안 부둣가에 선 필자(왼쪽부터 ).

    헬싱키를 출발한 뒤 16시간 동안의 긴 항해 끝에 스웨덴 스톡홀름에 도착했다. 수천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둘러싸인 천연의 항구 요새,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바이킹의 고도(古都)다.

    유럽에서 지낸 시간이 짧지 않건만, 스칸디나비아 반도를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배 위에 올라 과연 아름답기 그지없는 스톡홀름 전경을 바라본 뒤 자전거를 끌고 배에서 내렸다. 이미 계절은 늦가을로 치닫고 있지만, 스톡홀름은 같은 위도상에 있는 헬싱키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비해 상당히 포근하다. 북해 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난류 덕분이다.

    전날 밤 함께 선상 파티를 즐긴 핀란드 친구들과는 연안 부두터미널에서 헤어지고, 특별한 계획이 없다는 히치하이크 여행 전문가인 덴마크 친구 시몬과 옛 시가지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호수처럼 아름다운 바닷가, 역사의 향기가 가득한 옛 시가지 전경…. 말 그대로 장관이다. 북유럽 일대를 주름잡았던 바이킹의 영화가 육중하면서도 섬세한 건물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수도 스톡홀름은 문화와 인종 전시장 ‘방불’

    그렇다고 스톡홀름을 고색창연한 옛 도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길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색다른 문화와 다양한 인종을 만날 수 있고, 옛것의 향기와 현재 진행 중인 삶의 활기가 자연스레 하나 되는 곳이 바로 스톡홀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자전거에 짐을 실은 채 우연한 동반자 시몬과 함께 발길 닫는 대로 종일 걸었건만 전혀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밤이 이슥해서야 호스텔을 찾았다. 침대 열 개가 있는 공동 침실에서 묵는 가격이 우리 돈으로 5만원! 살인적인 물가다. 북유럽을 찾는 배낭족 대부분이 울고 간다는 이야기를 실감하겠다. 여름철이라면 노숙도 불사하겠지만 그럴 수도 없어 “도대체 북유럽은 뭐가 대단해서 물가가 이 모양이냐”고 시몬에게 한마디 하고는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부터 부산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같은 방에서 잠을 잔 유럽 배낭족들이 벌써 떠날 준비에 한창이었다. 아무래도 비싼 가격 탓에 이곳에서는 1박2일이나 2박3일 정도로만 짧게 체류하는 모양이다. 나와 시몬도 서둘러 준비를 하고 길을 나섰다. 다행히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 덴마크로 향하는 E4호선 국도에서 히치하이킹을 하겠다는 시몬과 헤어진 뒤,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 스톡홀름 시내를 빠져나왔다. 서쪽으로 이어진 국도 57호선에 올라 다음 행선지 노르웨이 오슬로를 향해 자전거를 달린다.

    바이킹의 나라 스웨덴 살인적 물가에 ‘화들짝’

    자연환경이 잘 보존돼 있는 스톡홀름 시가지 전경. 노을에 잠긴 교회당과 항구 풍경.(왼쪽부터)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숲과 호수 사이로 끝없이 이어진 국도변 가을 풍경. 비 걱정만 없다면 북유럽 여행은 녹음 우거진 여름보다 형형색색 나뭇잎들의 색깔 변화를 만끽할 수 있는 가을에 하는 것이 한층 운치 있을 것 같다.

    한반도의 두 배나 되는 면적에 10만개가 넘는 호수와 울창한 숲이 자리잡고 있는 스웨덴. 이 나라는 국토 전체가 국립공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천개를 헤아리는 천연보호지와 28개나 되는 광활한 국립공원이 있다. 어느 순간 어느 곳에 초점을 맞추어도 사진이 되는, 극치의 아름다움만을 모아놓은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나라다. 스쳐 지나가는 호숫가, 무심결에 바라보는 도로변의 작은 마을 풍경, 어느 곳에서나 전해져오는 삶의 담백한 느낌들. 인간이 문명을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결실을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기만 하다.

    야영지 인근 오두막집 할머니가 샌드위치 선물 ‘감격’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꽤 차갑다. 동서로 80km, 남북으로는 150km나 되는 스웨덴 최대의 호수 뵈네른 호숫가에서 하룻밤 캠핑을 하고, 오리털 점퍼를 입은 채 희미한 여명의 국도 위에 올랐다.

    그런데 도로변 언덕의 한 오두막집, 백열등 불빛이 비치는 현관 앞에서 한 인영(人影)이 손을 흔드는 것이다. 자전거를 세우고 조그만 언덕을 올라가보니, 족히 팔십은 돼 보이는 할머니가 투명한 비닐에 감싼 것을 건넸다. 흑빵에 치즈, 얇은 햄과 오이를 넣어 만든 샌드위치 뭉치. 여행객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한 끼 식사다.

    어제저녁 호숫가에서 야영할 때, 언덕 너머로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는 굴뚝을 보며 향수에 젖었다. 이 오두막이 바로 그 굴뚝 집일 것이다. 그리고 이 할머니는 지난밤 창 밖을 내다보다 한데서 밤을 지내는 여행자를 보고는 든든한 점심을 챙겨주기 위해 샌드위치를 만들어놓고 기다렸을 것이다. 이 새벽, 손을 흔들어 부를 수 있을 만큼 그 낯선 여행객이 가까운 거리로 다가올 때까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목이 멜 만큼 감사한 마음은 어떻게든 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할머니의 손목을 꼭 잡고는 알아듣지도 못할 영어로 ‘건강하시라’는 인사를 했다. 떠나는 순간까지 현관 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할머니. 손을 한번 흔들어 보이고는 국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스웨덴 할머니가 전해준 따뜻한 정은 지금까지 자전거 여행을 하며 몇 번이나 경험한 적이 있다. 인종도 국적도 종교도 넘어선, 그저 인간적이기만 한 마음. 그런 것을 대할 때마다 필자는 어느 시인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시 구절이 떠오른다.

    바이킹의 나라 스웨덴 살인적 물가에 ‘화들짝’

    ‘호수의 천국’으로 불리는 스톡홀름의 한 호숫가. 가을비에 흠뻑 젖은 필자의 텐트. 카메라 삼각대 위에 등잔불을 놓고 코펠을 펼쳐놓은 텐트 안 풍경. 필자는 추운 아침 저녁, 텐트 안에서 식사 준비를 하는 데 능숙해졌다(왼쪽부터).



    스웨덴 여정을 시작한 지 꼭 일주일이 되는 날 오후, E18번 국도 중앙에 설치된 스웨덴 국경 관문에 도착했다. 스웨덴 여행이 어땠느냐고 묻는 출입국 관리소 아가씨의 미소를 보는 순간, 아름다운 풍경과 인간적인 사람들, 짧은 시간 동안 스웨덴이 내게 준 모든 따뜻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래서 나도 활짝 웃으며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스웨덴과의 인연을 이렇게 끝내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 화창한 여름날 꼭 다시 한번 이 아름다운 나라를 찾을 것이다. 마음 가득 바람을 안고 노르웨이 쪽 국경선으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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