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6

2004.12.30

‘명성’을 둘러싼 은근한 性 전쟁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12-23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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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을 둘러싼 은근한 性 전쟁
    아녜스 자우이의 ‘룩 앳 미’ (원제: Comme Une Image)는 수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명성’이다. 영화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 자신이나 타인의 명성에 직·간접적으로 구속되어 있다.

    영화의 중심점엔 에티엔 카사르라는 유명 작가가 존재한다. 오래 전부터 제대로 된 글은 한 줄도 못 쓰면서 이전의 명성만 파먹고 있는 이 이기주의자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야비하고 이기적으로 구는 데에 삶의 만족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유명 인사들이 그렇듯 그의 주변엔 명성의 중력에 딸려온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중에 막 히트한 신작으로 스타 대열에 접어든 작가 피에르가 있다. 영화는 분명한 후일담을 제시하지 않는데, 아마 그도 그런 식으로 나아가다가는 에티엔처럼 험악하게 늙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명성을 얻고 권력의 힘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옆에서 그 때문에 고민하거나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영화는 은근히 성 전쟁의 양상을 띠는데, 그건 명성을 누리는 이들이 모두 남자고 그런 남자들 때문에 고통받거나 고민하는 사람들은 모두 여자들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두 명의 여자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첫 번째 주인공은 에티엔의 딸 롤리타다. 롤리타는 유명한 부모를 둔 아이들이 맞을 법한 최악의 조건 속에 있다. 롤리타는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로 차 있고 예쁘지도 않으며, 자신에게 접근하는 모든 남자들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자기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도 확신하지 못한다.

    ‘명성’을 둘러싼 은근한 性 전쟁
    두 번째 주인공은 피에르의 아내이자 롤리타의 음악 선생인 실비아다. 실비아는 한편으론 롤리타의 불안한 상태를 받아주고, 다른 한편으론 서서히 변해가는 남편 피에르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이들은 모두 흥미로운 캐릭터지만 할리우드 주류 멜로드라마들의 주인공들처럼 관객들에게 아부하지 않는다. 사실 캐릭터들의 가장 큰 매력은 관객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절실함과 그들의 참을성을 실험하는 짜증나는 성격의 절묘한 조화에 있다.



    ‘룩 앳 미’는 스토리 라인이 분명히 서 있는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이런 식의 앙상블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스토리보다는 캐릭터의 발전과 흐름, 그리고 이들의 조합에 더 치중한다. 그 때문에 롤리타가 마침내 아버지의 그늘에서 해방되는 마지막 장면에 이를 때까지 영화는 방향 없이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지루할까봐 걱정하지는 마시길.

    흥미진진한 캐릭터들에게 매력적인 에피소드들을 제공해주고, 그들을 짜맞추며 우아하고 예절 바른 실내악을 연주하는 아녜스 자우이의 장기는 이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Tips

    아녜스 자우이

    ‘스모킹/ 논스모킹’의 각본가로, 그리고 데뷔작 ‘타인의 취향’으로 전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며 두 번째 장편영화 ‘룩 앳 미’로는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평범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고, 특히 부르주아의 위선을 까발리는 데 재주가 있는 아녜스 자우이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전편보다 인물들을 따뜻하게 이해해주려고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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