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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프리즘

중세시대 권력의 상징 ‘장갑’

  • 최현숙/ 동덕여대 의상디자인과 교수

중세시대 권력의 상징 ‘장갑’

중세시대 권력의 상징 ‘장갑’

장갑은 형태적 특징 때문에 성적 상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신체의 확장성을 상기시키는 패션 아이템이기도 하다.

겨울이다. 어느새 2004년도 저물어가고 있다. 이해의 마지막 주엔 뭔가 따뜻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문득 어릴 적 어머니가 손뜨개로 만들어주신 벙어리 털장갑의 포근함이 떠올랐다. 얼마 전 TV를 보니 영어권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찾는 조사를 한 결과 ‘어머니(mother)’가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가끔씩 내 손가락 길이를 확인하느라 뜨개질을 멈추곤 하시던 어머니 곁에 꼭 붙어앉아, 그 화사한 색깔의 털실이 점점 내 몸의 일부분과 닮은 모습으로 변모하는 걸 지켜보면서 얼마나 설레ㅆ던가.

난방이 잘된 건물을 빠져나오자마자 자동차를 타고 움직이는 일상에 익숙해진 요즘, 레저용을 제외하면 방한용 장갑을 낄 기회도 그다지 없긴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겨울 선물 1위 후보는 장갑인 듯하다.

장갑의 주된 기능은 외부 환경으로부터의 보호, 방한 등의 실용적 면과 전체 의상과의 조화를 위한 장식적 면으로 나뉜다. 이미 구석기 시대 손가락이 없는 단순한 모양의 긴 장갑을 사용한 흔적이 있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장갑으로는 색실로 무늬를 넣은 이집트 투탕카멘 왕의 다섯손가락 장갑이 있다. 중세시대에는 장갑이 권력과 위엄, 계급을 상징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토지나 지위를 수여하는 의식에서 상징적으로 장갑을 주는 관습이 행해졌다. 또한 고위 성직자들은 귀금속이나 보석으로 장식된 자주색 장갑을 착용했고 13세기까지 이 유행이 이어지면서 장갑을 껴야만 미사를 집전했다고 한다. 왕족, 귀족계급에서는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장신구의 종류가 달라야 했다.

중세 여성들의 손을 아름답게 장식하던 장갑은 특별한 호감을 표시하는 수단으로도 쓰여, 기사들이 마상 경기나 전투에 나설 때 헬멧에 사모하는 숙녀의 장갑을 달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면 장갑은 남녀 모두에게 필수 유행품목이 되는데 직접 착용하는 것보다 손에 들거나 벨트에 끼는 것이 유행이었다. 당시에는 장갑이 권리나 자격의 상징이기도 해서 마상 경기에 도전할 의사의 표시로 장갑을 건네거나, 경기자가 결정에 복종할 것에 대한 보증으로 심판에게 장갑을 주었다.



중세시대 권력의 상징 ‘장갑’
화려한 바로크 시대에는 여성 가운의 소매가 짧아지면서 긴 장갑이 등장하는데, 1675년에는 갖가지 보석과 자수, 리본 등으로 장식한 32인치 길이의 흰 양가죽 장갑이 유행했다.

살롱 문화를 중심으로 유행을 주도한 로코코 시대에는 여성스러운 섬세한 곡선과 과도한 장식 요소가 장갑에 표현되었다. 나폴레옹 황제의 부인 조세핀 황후는 한번 사용한 장갑은 다시 끼지 않아 가죽 및 실크로 된 장갑을 1년에 1000켤레 넘게 사용했다고 한다.

중세시대 권력의 상징 ‘장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장갑인 투탕카멘 왕의 손가락 장갑(위)과 중세 귀족과 기사 계급이 꼈던 건틀렛.

다섯손가락 장갑은 글러브(glove), 벙어리장갑은 미튼(mitten), 손가락 관절까지만 있는 것은 하프 미트(half mitt)라고 하는데 하프 미트가 현대 젊은이들에게 액세서리로 되살아나 애용되고 있다. 20세기 후반에는 기술 발달과 함께 장갑의 색깔이나 소재도 더욱 다양해지면서, 조형적 아름다움에 기인한 장식성 외에도 상징적 의미가 풍부해진다. 복식 아이템 가운데 장갑은 길고 불룩한 형태로 인해 성적 기관의 상징적 대체물로 여겨지면서, 동시에 모피나 벨벳 등의 소재는 여성성을 상징해 페티시즘과 관련되기도 한다.

그리고 몸의 말단 기관인 손에 밀착되는 특성 때문에 장갑을 통해 신체의 확장성을 상기하게 하려는 디자이너들도 등장했다. 최근 다시 각광받기 시작한 장갑을 해석하는 다양한 현대적 시각이 놀랍기만 하다!

얇은 가죽장갑을 낀 채, 책의 낱장을 얼마나 정확하게 한 장씩 빨리 넘길 수 있는지를 내기하던 대학 시절의 겨울은 다시 오지 않지만, 이제는 내 차례가 되었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털장갑 한코 한코에 배어 있던 따뜻한 사랑을 우리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어른이 되어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본다.



주간동아 2004.12.30 466호 (p93~93)

최현숙/ 동덕여대 의상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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