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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人기행ㅣ경봉 선사

茶 한 잔 詩 한 수에 번뇌를 잊고

극락암에 머물며 중생교화 진력 … 茶詩 많이 남기고 한없는 자비심 ‘소문’

  • 정찬주/ 소설가

茶 한 잔 詩 한 수에 번뇌를 잊고

茶 한 잔 詩 한 수에 번뇌를 잊고

경봉 선사가 머물렀던 극락암의 전각 삼소굴(오른쪽).

자장 율사가 창건한 경남 양산 통도사 산자락에서 최고의 명당은 극락암이라고 한다. 그래서 극락암을 제2의 통도사로 가꾸겠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전국의 수행자들이 극락암 선방에서 한 철 공부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전해진다.

더욱이 그때 극락암에는 고승 경봉 선사가 있었다. 성철 스님이 흐트러진 선풍(禪風)을 진작하신 분이라면, 경봉 선사는 중생교화에 진력하신 분이다. 성철 스님은 제자들이 한가롭게 차를 마시고 있으면 다구(茶具)를 발로 뒤엎을 정도로 불벼락을 내렸지만, 경봉 선사는 누구든 불법(佛法)을 물어오면 시자(侍者)더러 차를 달여오게 하여 일완청다(一椀淸茶)를 권했다.

경봉 선사는 다시(茶詩)도 많이 남겼다. 다음의 시는 선사가 설법을 마치면서 읊조리곤 했던 다시다.

하늘에 가득한 비바람 허공에 흩어지니/ 달은 천강의 물 위에 어려 있고/ 산은 높고 낮아 허공에 꽂혔는데/ 차 달이고 향 사르는 곳에 옛길이 통했네.

滿天風雨散虛空 月在千江水面中 山岳高低揷空連 茶煎香古途通



옛길이란 모든 수행자들이 이르고자 하는 ‘자유의 길’, 즉 번뇌로부터의 해탈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경봉 선사는 189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13세에 한학을 공부하고 15세에 어머니가 별세하자 1년 뒤 통도사로 출가한다. 통도사에서 경(經)을 공부하던 중 ‘종일토록 남의 보배를 세어도 반 푼어치의 이익이 없다(終日數他寶 自無半錢分)’는 구절에 충격을 받고는 바로 참선 수행의 길에 든다. 경남 합천 해인사 퇴설당으로 가서 제산(霽山) 선사의 지도를 받아 용맹 정진하는데, 졸음과 들끓는 망상을 이기려고 기둥에다 머리를 박고 허벅지를 멍이 들도록 꼬집고 얼음을 입속에 머금어 생니가 모두 흔들린다. 그래도 시원찮아 장경각 뒷산으로 올라가 울고 고함을 친다. 스님은 다시 10여년을 정진한 끝에 36세 때, 극락암 삼소굴에서 이른 새벽 무렵 촛불이 춤추는 것을 보고 홀연히 크게 깨닫는다. 이후 62세에는 극락암 선원 조실로 추대되고, 91세에 입적할 때까지 극락암에서 유유자적한다.

떠돌이 폐병 환자 정성껏 돌보기도

입적 때 시자가 “스님, 가시면 보고 싶습니다. 어떤 것이 스님의 참모습입니까” 하고 묻자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거라”라고 대답했는데, 그 임종의 말씀은 불자들 가슴에 오랫동안 감동을 주었다.‘한밤중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라’는 뜻은 밤낮으로 부지런히 정진하고 늘 깨어 있으라는 말씀일 터이다.

나그네가 경봉 선사를 흠모하는 이유는 스님의 한없는 자비심 때문이다. 다음의 얘기는 나그네가 통도사 밖에 사셨던 한 노파에게서 들은 사연이다. 60년대 초만 해도 피를 토하는 떠돌이 폐병 환자가 많았다. 그런 환자 중 한 사람이 거지가 다된 꼴로 통도사를 찾았다가 그곳에서 받아주지 않자 극락암을 찾았다. 경봉 선사가 혼자서 독경을 하고 있는데, 환자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스님, 하룻밤 묵어갈 수 있습니까” 하고 묻자 스님이 허락했다. 환자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스님 얼굴과 옷에 피를 쏟고 난 뒤 쓰러져버렸다. 스님은 아무 말 없이 환자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주고 자신의 새 가사를 꺼내 환자에게 입혔다. 한 시간쯤 후 눈을 뜬 환자는 면목없어하며 방을 나서려 했다. 그러나 스님은 따뜻한 차로 기운을 내게 한 다음 오히려 환자를 정성껏 돌봐 병을 낫게 하고 제자로 삼았다. 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에게도 자비로운 차 한 잔을 권했던 경봉 선사의 자비심을 떠올릴 때마다 진정한 수행자상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훈훈해진다.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에서 양산에 들어서 통도사 나들목을 빠져나오면 바로 통도사 산문이 나오고, 다시 포장된 산길을 타고 직진해 10여분 달리면 극락암에 이른다.




주간동아 2004.12.30 466호 (p79~79)

정찬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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