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1

2004.11.25

인간의 멋을 위한 동물 수난 ‘모피의 법칙’

  • 이인성/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 교수

    입력2004-11-19 14: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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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멋을 위한 동물 수난 ‘모피의 법칙’

    거의 해마다 벌어지는 모피 반대시위.

    나이 든 귀부인의 전용물처럼 여겨지던 모피가 젊은 세대의 겨울 ‘머스트 해브(must have, 필수품)’ 아이템이 되었다. 엄마에게서 딸로 대를 이어가며 입던, 흔히 부잣집 혼수의 필수품목으로 치부되며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밍크코트. “아~ 이거, 이번에 우리 며느리가 해왔어” 하며 따뜻한 날씨에도 땀을 흘려가며(?) 입고 나와 친구들한테 은근히 자랑하던 이 ‘사모님’ 모피가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

    올해의 모피는 자연 동물 털에 가까운 갈색과 검정색 은색을 뛰어넘어 초록, 분홍 등으로 화려해졌을 뿐 아니라 발랄한 디자인으로 시선을 끌고 있는데 몸매를 드러내는 피트한 라인의 재킷에서부터 블루종, 깜찍한 볼레로, 케이프, 스톨 등 용도도 다양해졌다.

    모피를 의류로 처음 입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1000년경 중국에서다. 18세기 이후에는 유럽 전역에 보급되어 가공기술이 발달했고, 이후 유럽이 세계 모피 유행의 중심지가 되었다. 모피의 소재는 18세기엔 북해의 해달(바다족제비), 19세기엔 자원이 고갈되어 물개가 대신 유행했고, 이후엔 검은 여우가 쓰였다. 이때부터 모피용 동물을 사육하기 시작해 은여우가 길러졌고, 제2차 세계대전 때 침체기를 거쳐 전쟁 이후엔 밍크가 부드러움과 우아함으로 ‘모피의 여왕 자리’를 고수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피가 동물의 몸에서 벗겨낸 가죽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가을·겨울 패션쇼마다 빠지지 않는 슬픈 통과의례(?)는, 동물 애호가들의 무대 진입 난동과 ‘모피코트를 입느니 차라리 벗겠다!’며 누드로 벌이는 모피 반대시위다. 시위 때마다 그들은 꿋꿋하게 캣 워크로 올라와 사진 기자나 관객의 환호와 야유(?)를 받지만 행사 안전요원들(항상 빨간넥타이를 매 그들을 ‘빨간넥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에 의해 무참히 퇴장당한다. 강력한 반대시위에 밀려 인조모피만 선보이던 해도 있었으니 취지는 전달된 듯도 하나 올해에는 슬금슬금 로맨틱 무드의 복고풍 강세와 더불어 진짜 모피가 더욱더 기세를 부리고 있다.

    인간의 멋을 위한 동물 수난 ‘모피의 법칙’

    국내 브랜드들도 ‘사모님’ 모피 이미지에서 탈피해 젊은 디자인과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다양한 모피 아이템을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왼쪽부터 ‘퓨어리 핑크’와 신장경 제품).

    국내 여성복 브랜드들 젊은 세대에 맞는 트렌디하고 패셔너블한 디자인의 다양한 모피를 선보이고 있으며, 모피 전문 브랜드들도 사모님들과 감각적인 젊은 여성들을 나눠, ‘퓨어리 핑크’ ‘엘페’ 같은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하여 어느 해보다 모피 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



    모피에 대한 구매 유혹에는 늘 비싼 가격이라는 걸림돌이 뒤따른다. 그러나 다행히 올 겨울 모피 트렌드의 포인트는 디자인이 캐주얼화되면서 모피를 장식처럼 활용하는 것이다. 어깨에 살짝 걸치는 트렌디한 스톨은 스타일을 세련되게 마무리해줄 최강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 깜찍한 리본을 달아 묶어 레이디 라이크 룩의 진면모를 보여주거나 귀여운 느낌의 볼레로를 입어 럭셔리하면서도 젊은 이미지를 살릴 수 있다.

    ‘신용카드로 사면 연말 세금공제에서 조금은 혜택을 받겠지’라고 위로해도 역시 부담된다면 모피 트리밍 아이템으로 눈길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목, 소매 부분을 모피로 장식한 재킷이나 코트, 모피 트리밍의 니트 카디건, 모피 머플러도 아니면 ‘늑대 목도리’로 로맨틱하게 겨울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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