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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라파트 관이라도 만져봤으면…”

팔레스타인에 시신 도착하자 수만 인파 몰려 … 보안병력 공포 쏘며 해산 ‘수백명 부상’

  •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아라파트 관이라도 만져봤으면…”

팔레스타인 국가의 아버지’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이 끝내 숨을 거두었다. 아라파트의 치료를 맡아왔던 프랑스 군(軍)병원 측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야세르 아라파트가 11월11일 목요일 오전 3시30분(한국 시각 오전 11시30분) 클라마르에 위치한 페르시 군사훈련병원에서 사망했다”고 공식발표했다. 10월28일 쓰러져 의식을 잃은 뒤 프랑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아온 지 2주일 만의 일이다. 이로써 아라파트는 지난 반세기 동안 이끌어오던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의 결실을 이루지 못한 채 75살을 일기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11일 밤, 아라파트의 시신이 장례를 위해 이집트로 공수되었다. 아라파트의 공식 장례식은 12일 오후 6시(현지 시각 오전 11시) 이집트 카이로의 군사기지 내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전 세계 60여개국 국빈들이 조문 사절로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우리나라도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조문 사절을 파견했다.

인파로 인해 30여분간 헬기 문 못 열어

팔레스타인이 아닌 이집트에서 장례식이 열린 이유는, 장례식에 참석한 각국 국빈들의 안전문제 때문이었다. 현재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은 이스라엘의 오랜 점령으로 보안체제가 무너진 상황이기 때문에 수많은 조문 인파가 몰려들 경우 통제가 어려워질 우려가 컸다. 카이로에서 열린 장례식 또한 혼란을 우려해 일반적인 아랍 지도자들의 장례식과 달리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채 군사기지 내 이슬람 사원에서 간략하게 진행됐다.

장례가 끝난 뒤 시신은 매장을 위해 다시 팔레스타인의 라말라로 공수되었다. 아라파트가 매장될 라말라의 무까타(정무청사) 주변에는 수만 인파가 운집해 있었다. 시신을 실은 헬기가 착륙하자 운집해 있던 인파는 관이라도 만져보려고 헬기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그 바람에 한바탕 큰 소동이 벌어졌다.



무장한 보안병력이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지만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다. 헬기의 문조차 열지 못했다. 함께 헬기를 타고 온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이 인파를 설득한 끝에 30여분이 지나서야 겨우 헬기 문을 열 수 있었다. 관을 싣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영구차는 수많은 인파 때문에 헬기에 접근할 수 없자 관중 사이를 막무가내로 질주하여 가까스로 관을 실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관을 감싼 팔레스타인 깃발이 땅에 떨어지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보안병력은 인파를 관 주위에서 떨어지게 하기 위해 연신 공포를 허공에 쏘아댔다.

이 같은 사태는 아라파트의 공식 장례식이 팔레스타인이 아닌 이집트에서 열린 이유, 그리고 지도력이 부재하는 현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듯했다. 이 소동으로 9명이 총상을 입었고 수백명이 응급치료를 받았다. 관을 실은 영구차는 소동 끝에야 매장지인 무까타에 도착할 수 있었고, 이슬람 종교지도자가 꾸란의 조문 구절을 낭송한 후 관이 매장됨으로써 모든 장례 절차는 막을 내렸다.

아라파트는 생전에 예루살렘의 이슬람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 묘역에 묻히길 희망했다.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의 염원을 담은 상징적인 바람이었다. 그러나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내가 총리로 있는 한 아라파트가 예루살렘에 묻히는 일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서 팔 자치정부는 대안으로 아라파트가 이스라엘에 의해 3년 동안 구금됐던 무까타를 장지로 선택했다. 무까타 역시 아라파트의 대(對)이스라엘 투쟁을 상징하는 장소다.

절대 지도자 없는 혼미 정국 속으로

아라파트 없는 팔레스타인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과 동격으로 이해돼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지도 죽지도 못했다. 그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출생해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들이 대개 그러하듯 아라파트에 대한 평가 또한 노벨평화상 수상자에서부터 수많은 생명을 빼앗은 테러리스트까지 극과 극을 달린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아라파트가 평생 동안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 이슈를 국제사회의 어젠더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장례 절차에서 벌어진 소동은 아라파트에 대한 팔레스타인 민중의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사건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관이나마 한번이라도 더 만져보고 싶은 팔레스타인 민중의 염원인 것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아부 마젠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의장으로, 아부 알라를 총리로, 라우히 파투흐 입법의회 의장을 자치정부 의장으로 하는 임시 지도부를 구성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2주간이 팔레스타인 안정을 위해 중요한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안착해 정국을 안정적으로 풀어가든지, 아니면 팔레스타인 내 다양한 무장 조직들이 권력을 놓고 무장투쟁을 벌이는 혼란이 발생할지 2주 안에 결정 날 것이란 의미다.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과제의 달성은 결국 남은 사람들의 몫이 되었다. 팔레스타인이 정국을 안정시켜 이스라엘과 평화 협상을 재개하고 그 과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팔레스타인은 지금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주간동아 2004.11.25 461호 (p52~53)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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