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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불충분 검찰 패자부활전 어떻게

대법원, ‘박지원 前 장관 150억원 수뢰’ 면죄부 … 김영완씨 귀국시켜 증거 확보 대책 난감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증거 불충분 검찰 패자부활전 어떻게

증거 불충분 검찰 패자부활전 어떻게

녹내장으로 실명 위기를 겪었던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구속집행 정지로 병원에서 요양 중이던 지난 5월 모습.

지난 대선자금 수사는 헌정 사상 최대 규모로 ‘한국판 마니풀리테(깨끗한 손)’라는 별칭까지 부여받았다. 그 수사의 모멘텀이 됐던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150억원 수뢰사건’은 결국 검찰의 패배로 3라운드에 걸친 험난한 경기를 끝마쳤다. 대법원은 사건의 핵심이나 다름없는 박 전 장관의 뇌물수수 부분에 대해 사실상 면죄부를 부여한 것이다. 물론 대법원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기 때문에 검찰로서는 패자부활전이 남아 있다. 하지만 미국에 도피 중인 무기중개상 김영완씨가 귀국해 박씨를 얽어맬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사건은 이대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찰은 과연 패자부활전에서 박 전 장관의 혐의를 입증할 수 있을까.

고 정몽헌 회장 도의적 책임 누가 질까

대북송금 특별검사(이하 특검)팀에 관여했던 한 변호사는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우선 정몽헌 회장의 결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검찰과 박 전 장관 중 패배하는 쪽이 정회장의 죽음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두 번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오른팔 격인 박 전 장관의 비리라는 점에서 김대중 정권의 평가 문제와 직결된다. 더구나 이 돈을 남북정상회담을 빌미로 받았다는 점에서 남북 문제로까지 비화됐다. 마지막으로, 대선자금 수사의 모멘텀이 됐던 사건이니만큼 검찰수사 전체의 신뢰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

정몽헌 회장은 특검에서, 2000년 4월 중순 정상회담 준비금 겸 금강산 카지노사업 허가 청탁을 위해 이익치를 통해 150억원가량의 CD를 박 전 장관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박 전 장관은 일관되게 “계좌 추적을 해보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며 “내가 돈을 받았으면 정몽헌한테 받지, 왜 잘 알지도 못하는 이익치한테서 받았겠느냐”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특검과 검찰 조사 결과 정몽헌 회장에게서 출발한 돈이 명동 사채시장에서 세탁을 거쳐 미국에 머물고 있는 무기중개상 김영완씨에게 건네졌다는 데는 별 이의가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이 복잡하다는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 문제의 150억원은 ‘정몽헌→김재수(전 현대 구조조정본부장)→이익치→박지원→김영완’으로 전달됐다. 결국 그 과정에 박 전 장관이 개입했는지 여부에 따라 무죄와 유죄가 갈리는 셈이다.

박 전 장관에게 유리해진 첫 번째 결정적 이유는 돈의 주인인 정회장조차 돈이 정확하게 박 전 장관에게 건네졌는지를 확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회장은 특검 조사에서 “박 전 장관에게 직접 150억원을 받았는지 확인했나”라는 질문에 “돈을 받았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 자체가 결례가 될 것 같아 하지 않았다”고 답한 것이다.

그렇다면 정회장은 왜 박 전 장관이 돈을 받았다고 믿었던 것일까. 우선 돈을 전달하기로 했던 이익치 전 회장이 2000년 4월 중순 해외에서 돌아온 정회장을 찾아와 “(돈을) 차질 없이 전달했다”고 보고했기 때문. 게다가 정회장은 이후 김영완씨에게서 “(박 전 장관이) 고맙게 받았다”는 감사의 표시를 전달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의 의심을 키운 결정적인 의혹이 또 하나 존재한다. 정회장이 박 전 장관에게서 “150억원을 달라”는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이 없다는 점. 정회장은 2000년 4월 초 P호텔에서 박 전 장관과 알고 지내던 김영완씨를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박지원 장관이 정상회담 준비 비용으로 15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좀 도와줄 수 있느냐”는 제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박 전 장관의 이름을 빌려 돈을 요구한 사람도 ‘김영완’이고, 돈을 보관하고 있는 사람도 ‘김영완’이라는 점이 사건을 미궁에 빠뜨린 셈이다. 만의 하나라도 ‘이익치’와 ‘김영완’ 사이에 모종의 협력관계가 존재한다면 정회장과 박 전 장관을 완벽하게 속일 수 있는 ‘배달사고’가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회장의 비자금을 김영완씨가 관리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재판부가 박 전 장관의 뇌물수수를 무죄 취지로 파기해 환송한 것은 이익치와 김영완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씨는 1999년 9월부터 2000년 4월까지의 자신의 일정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는데 유독 박씨에게 돈을 전달한 날짜만 기억하지 못했고, P호텔에서 돈을 전달한 시간도 여러 차례 바뀐 점이 재판부의 신뢰를 얻지 못하게 했다.

봐주기 판결 의혹 제기도 솔솔

김영완 진술서 역시 100% 신뢰하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결론이다. 재판부는 “박 전 실장의 자금관리인으로 지목된 김씨가 외국 호텔에서 작성해 팩스로 보내온 진술은 작성 경위가 비정상적이고 내용도 의심스러운 데다 피고인의 반대신문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어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애초부터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도 “이 두 사람의 증언이 오히려 검찰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존재할 정도로 검찰은 아슬아슬하게 수사를 진행시켰다. 박 전 장관의 변호인들 역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의 진술이 유일한 증거인데, 이 전 회장은 이미 99년 현대중공업 주가조작 사건 때 구속된 전력에다 정몽준 후보를 개입시킨 거짓말 파문의 주인공이다”며 “이익치 전 회장은 이번 뇌물사건으로 처벌받아야 할 사람인데 검찰 수사에서 면죄부를 받은 게 이상하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게다가 CD 150억원 가운데 박 전 장관이나 주변 인물들이 쓴 돈의 흔적이 수사 결과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도 무죄의 가능성을 높여준 셈이 됐다.

박 전 장관에 대한 파기환송이 결정되자 우선 검찰 내부에서는 “정치인 뇌물 사건에서 더욱 명확한 증거 확보가 중요하다”는 의견과 “앞으로 검은돈이 더욱 활개 칠 수 있게 됐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그러나 “김영완씨를 미국에서 데려오지 못한 것은 검찰 책임”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했다.

검찰은 김영완씨를 귀국시켜 증언대에 세우는 방법이 최선이지만, 권노갑 전 고문 사건의 공범이기도 한 김씨가 사법처리를 감수하면서까지 귀국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정회장은 이미 사망했고, 잘 알고 지내는 박 전 장관의 처벌을 원치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검찰 상황은 난처해 보인다.

법조계는 엄격한 증거주의가 사법 심판의 기준임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대법원조차 정치적 결정을 내렸다는 비난도 없진 않다. 우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이기 때문에 봐주기 판결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된 것. 최근 대선자금 수사 결과 불법정치 자금에 연루된 정치인들이 항소심에서 줄줄이 감형 판결을 받은 것과도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주간동아 2004.11.25 461호 (p18~19)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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