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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박근혜의 ‘정체성 1라운드’

약점 찌르고, 손내밀고 우리당 양면작전

정국 반전 노림수로 ‘유신’ 집중 공격 … 근·현대사 재정리 작업까지 준비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약점 찌르고, 손내밀고 우리당 양면작전

약점 찌르고, 손내밀고 우리당 양면작전

7월29일 전남 목포에서 열린 지역발전 토론회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1927년생인 강창성 전 의원은 요즘 노환과 지병이 겹쳐 건강이 좋지 않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자택에서 요양하고 있는 그는 7월 한나라당 홍문표 의원의 병문안을 받았다. 이 자리에서 강 전 의원은 느닷없이 “박근혜 대표를 도와주라”고 힘주어 말해 홍의원을 당황케 했다. 홍의원은 지난 6월 비슷한 얘기를 했을 때만 해도 지나가는 말로 들었는데 이날은 달랐다. “가슴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박대표에 대한 강 전 의원의 애틋함이 느껴져 뭉클했다”는 게 홍의원의 소감.

“박대표 싱크탱크 누구냐” … 당내서도 참모그룹 해부 실패

강 전 의원은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박근혜 사랑’을 꼭 입에 올린다. 강 전 의원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박근혜’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3공 시절 보안사령관과 중앙정보부 보안차장보를 지낸 강 전 의원은 당시 초등학교를 다니던 박대표를 차에 태워 등교를 시켜주는 등 연이 깊다고 한다. 16대 국회에서 재회한 두 인사는 그때 얘기를 주고받으며 ‘과거’를 회상했지만 최근 박대표는 병문안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할 정도로 소통이 뜸한 상태. 그럼에도 몸이 불편한 강 전 의원은 ‘박근혜 전도’에 여념이 없다.

박대표의 정치적 성장 이면에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선 사람들의 땀과 희생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 대부분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연이 있거나 유신 권력의 녹을 먹었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박대표는 아버지와 유신이 남긴 채권을 활용, 제1야당 대표가 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박대표는 앞으로도 이런 지원 세력의 도움을 통해 험난한 정치 여정을 돌파할 수밖에 없고, 지금도 당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들이 박대표의 정치 행보를 컨트롤하고 있다고 믿는다.

7월 말 한나라당 의원들은 “도대체 면면이 뭐냐”며 박대표의 싱크탱크에 큰 관심을 보인 적이 있다. 대의원들의 압도적 지지로 2기 체제를 출범시킨 박대표가 유력한 대선주자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자 참모그룹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 것.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박대표의 참모그룹을 해부하는 데 실패했다. 박대표는 여전히 혈혈단신으로 움직였고, 참모들에 대한 이렇다 할 설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잠정적으로 ‘박정희와 유신’이 그를 둘러싸고 있을 것으로 결론 내렸다. 만약 박대표가 이런 과거로 현실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면 앞으로 시련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다.



여권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역사 바로 세우기의 후속 작업으로 20세기 100년에 걸친 한국 근·현대사 재정리 작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5월 “지난 역사에서 쟁점이 됐던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국가적 사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7월30일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를 받으면서 비슷한 얘기를 했다. 열린우리당(우리당)은 8월1일 ‘진실과 화해 그리고 미래위원회’ 구성을 발표, 과거사 재정리 작업이 전개되고 있음을 입증했다. 신기남 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일제와 냉전 시대, 군사독재 시대의 유산을 정리하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개혁 세력이 다수당이 아니었을 때는 이런 것을 못했으나 이제는 늦었더라도 털고 가야 한다”는 논리였다.

집권세력의 사관(史觀)과 판단에 따른 ‘한국 근·현대사 다시 쓰기’가 관심을 끄는 이유도 바로 이 부분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박 전 대통령과 그의 추종세력이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7월29일 노대통령이 국가 정체성 논란과 관련, “지금 정치 전선은 유신이냐, 미래냐 기로에 서 있다”고 치고 나온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노대통령은 이날 “지금 정치적 전선이 어떠냐”며 작심한 듯 말을 꺼냈다. 박대표의 한 측근은 “총선 직후부터 여권 내부에서 과거사 청산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은 박대표에게 삼손의 머리와 같은 부분”이라며 여권이 이를 파헤쳐 박대표를 궁지로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약점 찌르고, 손내밀고 우리당 양면작전

박근혜 대표가 8월4일 당사를 방문한 윤광웅 국방부 장관과 환담하고 있다.

한나라당 인사들은 지난 총선을 통해 5, 6공 색채를 걷어내 원죄에서 해방됐다는 태도다. 그러나 박대표의 등장으로 그보다 더한 업보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음을 확인했다. 최근 초·재선 그룹 가운데 일부 인사는 박대표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P의원은 “어차피 큰 정치를 준비하고 있는 박대표로서는 펼쳐진 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며 “그때의 모든 것을 공개한 후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하라”는 것. 박대표는 이런 소장파 및 당내 인사들의 요구에 대해 “맡겨달라”고 말했다. 한 측근은 “이미 박대표는 이런 문제에 대해 여권과 국민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준비된 답변을 제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인사는 “여권이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상황을 연출했다”며 그만큼 여권이 처한 정치현실이 어렵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과거사 청산 작업이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주장하지만, 우리당의 정치적 복선이 깔려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복선은 이른바 개혁 피로증을 극복하기 위한 대증요법 성격이 강하다는 것. 총선 후 우리당은 한동안 개혁 혼선에 시달렸고, 이는 개혁 피로증을 불러와 국민들의 불신과 불만을 불러왔다는 것. 특히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는 비난 여론이 갈수록 커지면서 여권을 압박했다. 박대표는 이런 여권의 약점을 치고 나왔고 유연한 정치력으로 여당을 압박했다. 여권으로서는 국면을 전환해야 하는 현실의 요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여권에서 본다면 유신은 이런 정국 흐름을 반전시킬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재 가운데 하나다. 박대표의 인기가 박 전 대통령의 후광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만큼 박대표와 박 전 대통령의 연결고리인 유신에 칼을 대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한나라당과의 차별성을 확보해 중도개혁적 위상을 확보하는 부수적인 효과도 노릴 수 있다.

결국 우리당은 한 손으론 야당의 아킬레스건을 치고, 다른 한 손으론 야당에 악수를 청하고 있는 형국이다. 과연 박대표는 유신을 극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갇혀버릴 것인가. 유신은 이제 박대표에게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주간동아 448호 (p18~20)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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