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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늘, 베이비복스를 ‘디스’하다

특정인 ‘씹는’ 힙합문화의 한 특징 … 주위에선 “방식 거칠었다” 반응 속 힙합에 대한 편견 경계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이하늘, 베이비복스를 ‘디스’하다

이하늘, 베이비복스를 ‘디스’하다

새 앨범에 투팍의 목소리와 동영상을 사용한 ‘베이비복스’.

”성격 탓에 베이비복스를 직설적인 표현으로 비판한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베이비복스 소속사가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래퍼 투팍에 대한 존경심에도 변함이 없다. 오늘 인터뷰는 베이비복스에게 소송을 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연예계를 들끓게 한 ‘미아리복스’ 발언의 당사자인 DJ.DOC 멤버 이하늘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댄스그룹 베이이복스와 ‘싼 티 좔좔 흐르는 섹스 가수’, ‘미국 랩을 빌려 쓴 가수’ 등 공개 비난을 주고받던 이하늘은 파문이 커지자 제주도에 머물러 왔다. 6월18일 서울로 돌아온 이하늘은 밤늦게 스포츠지 가요 담당 기자들과 만나 “베이비복스 멤버들에겐 미안하나, 소속사에 사과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여기에 계기로 작용한 전설적 래퍼 투팍의 어머니가 ‘베이비복스’가 음악을 도용했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베이비복스와 이하늘 간 싸움의 결론은 또 다른 차원으로 넘어갔다.

이하늘, 베이비복스를 ‘디스’하다

베이비복스와 이에 ‘디스’를 가한 DJ.DOC의 이하늘 (오른쪽 사진 모자 쓴 사람)의 설전은 힙합 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베복의 투팍 목소리 사용이 발단

‘연예인들끼리의 신상 공격이냐’ ‘디스(diss•힙합 문화의 특성 중 하나로 다른 뮤지션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 문화의 시작이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키킨 이하늘과 베이비복스 사건의 전말은 사소한 데서 시작했다. 댄스그룹인 베이비복스가 새 앨범 ‘Ride West’를 제작하며 ‘Xtacy’란 노래와 뮤직비디오에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한 웨스트코스트 힙합의 영웅 투팍의 목소리와 동영상을 사용한 사실이 발단이었다. 투팍은 1996년 25살의 나이로 요절한 흑인 래퍼로 가수와 배우로 활동하면서도 여러 차례 감옥에 드나든 전형적인 갱스터 래퍼. ‘검은 제임스 딘’으로 불릴 만큼 흑인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다. 그는 웨스트코스트와 이스트코스트 힙합(뉴욕 중심) 사이의 갈등으로 벌어진 싸움 도중 총에 맞아 사망했으며, 일부 열혈 팬들은 여전히 그가 죽지 않았다는 주장을 펴고 있기도 하다. 그가 힙합 마니아들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이유는 음악적인 것 외에 삶과 죽음이 ‘힙합 그 자체’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하늘, 베이비복스를 ‘디스’하다

미국 힙합의 영웅 투팍.

DJ.DOC의 이하늘도 ‘물론’ 투팍 팬이다. 우리나라 유일의 힙합 전문 프로그램 m.net의 ‘힙합 더 바이브’ 고정출연자인 이하늘은 이 방송에서 베이비복스의 새 앨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투팍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그를 두 번 죽였다. 베이비복스를 만나면 혼내(‘야무지게 빠따’)주겠다”고 말했고, 베이비복스는 프로듀서인 미국 작곡가 플러스피의 입을 빌려 DJ.DOC를 비롯한 “한국 힙합 뮤지션들에게는 사상과 생각이 없다”고 응수했다. 이하늘은 이 말에 결정적으로 ‘열렸다’. 인터넷에 “미아리복스 뮤직비디오에서 그런 사람(투팍)을 3류 쌈마이로 만들어놓고 지금 잘했다는 건가?…** 좀 뜨니까 인사도 제대로 안 하고… 나 잘난 미국에서 뭐 빌린 거 없수다… 플러스피 넌 니네 잘난 나라로 돌아가. 웬만하면 잘난 미아리복스도 다 데려가”라는 글을 올렸다. 여기에 래퍼 김진표도 이하늘 편으로 가세했다. 이번 일을 베이비복스 소속사에서 주장하듯 “선후배 사이에 차마 입에 담기조차 힘든 표현”에 “어느 부모가 가만히 계시겠느냐”는 시각으로 바라보면 ‘연예계의 악동’ DJ.DOC가 ‘또 하나의 사고’를 친 해프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 연예계는 어느 조직 사회보다 선후배 서열이 엄격한 곳이다. 신인 연예인들이 선배를 만나면 90도로 절을 하고, 대선배들이 있는 대기실에서 신인이 웃고 떠들다 혼난 일이 스포츠지 가십란에 오르내릴 정도다. 동료 연예인을 비판하는 일도 금기시돼 있다. 더구나 공식적인 매체를 통해 특정인에게 욕설을 퍼붓는 행동은 10년 전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관점으로 보자면 이하늘은 ‘공인’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을 한 셈이다. 그러나 최근 가요계에서 사회를 비판하고, 동료 음악인들을 실명으로 거론하는 일은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변화가 우리나라에 힙합이 수입된 시기와 일치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사랑 타령으로 일관하던 대중 가요판에서 새로 등장한 힙합 가수들은 정치인과 제도, 연예인을 착취하는 기획사, 심지어 국민연금까지도 씹었다. 립싱크하는 미남 미녀 가수들을 비웃는 일은 너무나 흔해졌다. 조PD는 문란한 여자 연예인을 비꼬는 노랫말로 화제가 되었고, 이승환 전인권 같은 가수가 립싱크 가수들을 빗대 ‘무붕(붕어는 없다)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이하늘, 베이비복스를 ‘디스’하다

TV 등 오버그라운드에서 활동하면서도 독설적인 ‘디스’로 유명한 CB MASS(최근 두 멤버가 다이내믹 듀오 결성).

힙합 그룹 CB(Critical Brain) MASS는 대형 연예기획사 SM과 싸이더스에 대해 ‘재패니즈 댄스 베껴/ 바보들 속여/ 주머니 채워’라고 노래했다. 부시 미 대통령을 ‘고릴라’ ‘푸시’라고 부른 신해철이 7년 만에 내놓은 새 앨범에 들어 있는 ‘개한민국’은 정수라의 ‘대한민국’을 패러디한 노래로 홍보의 맨 앞에 놓인다. MC 스나이퍼•디지가 대표적 디스 이처럼 힙합(혹은 록)에서 가장 ‘무난한’ 자기주장의 방법은 노랫말을 통해 사회적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고, 심하면 인터뷰를 통해 특정인을 ‘공공의 적’이라고 ‘디스’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래퍼 디기리의 ‘This is Diss’란 곡도 있다. 에미넴이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모욕한 유명한 사건도 있지만, 미국에서 ‘디스’는 종종 래퍼들 사이의 실제 총격전, 즉 ‘디스워’로 격화하기도 한다.

이하늘, 베이비복스를 ‘디스’하다

에미넴.

힙합전문 사이트 ‘힙합플레야닷컴’의 김용준 대표는 “이하늘이 힙합 쪽 보편적 정서를 대변했다. 음악적 태클은 아니지만 큰 범주에서 ‘디스’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디스는 프로레슬링 같은 것이다.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힙합이 우리나라에서는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디스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야후’ 음악전문기자 김봉환) 그렇다고 짜고 치는 쇼란 뜻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디스로 꼽히는 MC 스나이퍼와 디지의 싸움은 인터뷰에서 ‘돈 좀 벌더니 외제차 타고 다니는 놈’, ‘너는 안 타냐’, ‘노래로는 창녀를 동정하고 여자 동료는 냄비로 부른 위선자’라고 스트레이트가 오가다 ‘정신 차려 이 개XX야’라는 어퍼컷으로 마무리되었다. 디스는 ‘니가 랩을 아느냐’를 넘어서 삶 자체가 힙합이길 요구하는 말이다. 한 힙합 음악 전문가의 말처럼 “힙합은 음악을 넘어선 라이프스타일”이므로 “생각하고 느낀 대로 말하는 것이 욕설이 되기도 하고 디스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 구조적 모순을 이들이 비판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다.

이하늘, 베이비복스를 ‘디스’하다

드렁큰 타이거.

“상업적인 음악 하면서 상업적으로 살면 뭐라 안 한다. 단지 상업적으로 살면서 랩 한다고 래퍼라 주장하고, 로커라 하는 걸 용납하지 않을 뿐이다. 어떤 가수는 노래 못한다는 말보다 성형수술 했다는 말을 더 모욕으로 느끼나, 힙합 가수는 자신이 존경하는 래퍼를 상업적으로 쓰면 못 참는다.”(힙합 전문 프로듀서 K씨) 힙합 진영 내부에서는 이하늘의 디스 혹은 여자 연예인에 대한 비판 방식이 ‘거칠었다’는 데 대개 동의하면서도 이번 사건이 힙합 음악을 ‘문제아’로 보는 편견을 불러일으킬까 조심스러워한다. 한 힙합 전문 프로듀서는 “가요계가 10대 댄스 뮤직 편향이라고 지적하면서도 막상 힙합처럼 새로운 것은 거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번 파문을 취재했던 스포츠서울 강수진 기자는 “한 청소년가요제에 가보니 전체 참가 팀 20팀 중 19팀이 힙합을 했다.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이하늘과 베이비복스 논쟁은 디스를 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하늘, 베이비복스를 ‘디스’하다

에미넴 등 힙합 뮤지션들과 에미넴에게 ‘디스’당한 브리트니 스피어스.

사실 ‘미아리복스’란 어휘에 대한 대중들의 즉물적인 반응만 없었다면, 베이비복스와 이하늘의 ‘디스’는 그런대로 ‘연착륙’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총격전으로 비화되지 않는다면 디스는 천편일률적인 가요에 식상한 음악팬들에게는 반성적이면서도 즐길 만한 ‘이벤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441호 (p74~75)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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