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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교수의 ‘과학 속 세상史’

反과학 깃발 들어야 지성의 상징인가

反과학 깃발 들어야 지성의 상징인가

이제 막 수능시험이 끝났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 젊은이들이 이공계 진학을 꺼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공계 위기론’이 나오게 된 까닭은 꼭 실리에 밝은 세태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에서의 과학에 대한 위망(威望)이 크게 흔들려 위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한국 사회에서 더 심한 듯하지만, 꼭 우리만의 일도 아니란 생각이다.

과학은 한 시절 세계를 풍미했다. 17세기에 서유럽에서 시작된 근대과학은 기세 좋게 지식과 지성의 뿌리 노릇을 하며 비약적 발달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 후의 세계사는 바로 과학 발달을 기간(基幹)으로 전개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과학의 권위에 기대려는 생각이 여기저기서 크게 일어난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꼭 90년 전 레닌은 “최신의 과학적 발견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확실히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선언했다.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가 예로 든 최신의 과학적 발견이란 라듐, 전자, 원소 변환 세 가지였다. 그는 1913년 ‘마르크스주의의 세 원천’이란 글을 발표해 마르크스 죽음 30주년을 기념했는데, 이 과학적 발견이 그 속에 포함된 셈이다. 1818년 출생한 마르크스는 1883년 65세로 세상을 떠났으니, 레닌은 이 글을 그가 죽은 지 30년 뒤인 1913년 발표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마르크스 자신이 그의 ‘자본론’ 영어판을 내면서 찰스 다윈에게 자기 책을 헌정하겠다고 제안했던 일도 있다. 진화론 발표로 그 이름이 하늘을 찌르던 다윈은 자신의 기독교적 뿌리를 들어 그 제의를 정중하게 사양했다지만, 마르크스가 얼마나 과학의 뒷받침을 바랐는지 알 수 있다. 마르크스가 프랑스 등에서 막 성행하기 시작했던 생시몽이나 푸리에 등의 사상을 공상적 사회주의라 비판하고 자신의 것만이 ‘과학적’ 사회주의라 주장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사상은 인간이 내놓은 가장 수준 높은 과학주의다. 레닌이 러시아혁명으로 집권하면서 시작된 젊은이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열정은 20세기 초반에는 지구 전체를 덮을 정도였다. 그와 함께 과학주의 또는 과학만능사상은 과학 연구에 대한 열정으로도 나타났다. 당연히 젊은이들은 이공계로 몰렸고, 과학은 크게 발달했다.



그러나 바로 그 과학에 매혹되었던 젊은이들이 소련 공산사회의 몰락 이전에 이미 과학을 등지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의 폐해가 여기저기 나타나 세상을 위협하는 듯 여겨졌기 때문이다. 핵무기와 우주전쟁, 그리고 환경 악화 등 20세기 중반 이후 심각해져만 가는 문명의 질환들 가운데 과학의 위망은 여지없이 추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 한국의 이공계 위기란 바로 여기에 그 근본원인이 있다. 과학비판, 또는 심하게 말해 반(反)과학 정서는 이제 전 세계적 현상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그 반과학적 정서가 유독 심하다는 데에 있다. 이공계 위기에서 핵폐기장 문제까지 한국의 지식층은 반과학의 깃발을 지성의 상징인 양 앞세우기 일쑤다. 이런 정서가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날뛰어서는 한국의 선진국 진입은 불가능한 일이다. 여전히 과학 발달은 국가 경쟁력의 원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박성래 교수는 1940년 충남 공주 출생으로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기자생활을 한 뒤 역사학을 전공했다. 한국외국어대학에서 35년째 학생들을 가르치며 국내 과학사 분야의 개척자 역할을 자임해온 그는 현재 국사편찬위원회 위원과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약하며 저술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주간동아 2003.12.04 412호 (p8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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