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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돈이다, 다만 나서지 않을 뿐

과학기술 기반 학문 절대적 역할 수행 … 수급 불균형 수학자 조만간 ‘귀하신 몸’

  • 유지영/ 과학신문 기자 pobye2002@yahoo.co.kr

수학은 돈이다, 다만 나서지 않을 뿐

수학은 돈이다, 다만 나서지 않을 뿐

선진국들은 하나같이 과학강국이고 이는 곧 수학강국을 의미한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수학기피증이 확산되고 있어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적지 않은 컴퓨터에 선명하게 붙어 있는 ‘Intel Inside(내부에 인텔칩이 있습니다)’ 로고. 컴퓨터에서 가장 중요한 부품인 프로세서를 인텔 제품으로 사용했다는 표시다. 세상만사 이런 식이라면 얼마나 명쾌할까. 컴퓨터의 프로세서처럼 눈에 띄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 요소에 ‘××× Inside’ 로고 사용권을 부여해서 표시한다면 말이다.

만약 이런 일이 현실화되면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대부분의 기술은 ‘Mathe-matics Inside(내부에 수학이 있습니다)’라는 꼬리표를 달아야 할지 모른다. 수학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지만 과학기술의 기반이 되는 학문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정보기술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수학의 기여도는 절대적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수학이 경제와 산업에 끼치는 영향력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로그 따위는 몰라도 잘살 수 있다”며 수학을 외면한다. 이런 형편이니 수학이 돈이 된다는 말이 피부로 느껴질 리 없다. 그러나 수학은 그 자체로 돈이 된다.

IT 전문회사 ‘수학연구소’ 운영중

FBI(미연방수사국)가 자국민의 지문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을 결정했을 때, DB의 유지비용이 걸림돌로 떠올랐다. 200테라바이트에 달하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전송하고 저장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했던 것이다. 예산 절감에 대한 압박을 받은 FBI가 문제 해결을 위해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컴퓨터 기술자도 경제학자도 아닌 수학자였다.



당시 FBI의 의뢰를 받은 R코이프만 예일대 수학과 교수는 함수해석적 방법론을 이용해 200테라바이트의 막대한 정보를 20테라바이트로 압축해버렸다. 데이터의 용량이 10분의 1로 줄어들었으니, 유지비용 또한 그에 상응해 줄어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를 통해 FBI가 절감한 예산만도 어림잡아 수억 달러에 달했다.

보잉사는 보잉777의 설계단계부터 거액이 소요되는 풍동(風洞)실험 대신에 계산 시뮬레이션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풍동실험은 항공기가 운행하는 실제상황과 비슷한 환경을 재현해야 하므로 대형 실험시설과 그에 따른 거액의 운영비가 필요하다. 이런 복잡한 실험을 컴퓨터로 대체했으니 생산비용 절감은 당연한 결과였다. 물론 이는 병렬 슈퍼컴퓨터의 발달로 계산 가능한 수학의 영역이 확장된 데 따른 것이다.

이밖에도 전자상거래의 기본인 암호기술, 양자계산, 그래픽, 동영상 분야 또한 수학자의 지식 및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마이크로소프트나 휴렛팩커드와 같은 대표적인 IT(정보기술) 전문회사들이 별도의 수학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수학은 돈이다, 다만 나서지 않을 뿐

아이들이 수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교수법 개발이 시급하다.

수학과 거리가 가장 먼 듯 보이는 만화영화도 사실은 고도의 수학이 뒷받침돼야 하는 분야다. 예를 들어 여주인공의 긴 머리채가 바람에 따라 자연스럽게 날리는 입체 영상을 구현하려면,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머리카락 한 가닥 한 가닥이 움직이는 변수를 일일이 구해야 한다. 게다가 이 복잡한 계산에는 미분기하, 대수기하, 수치해석, 편미분방정식, 상미분방정식 등 고도의 수학기술이 필수적이다. 물론 만화영화를 만드는 제작진이 이런 복잡한 계산을 직접 하기는 어렵다. 만화영화 제작용 소프트웨어 또한 그 뼈대는 수학자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것이다.

전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월스트리트의 저력 또한 수학으로부터 나온다. 수학자들은 확률론, 통계, 수치해석, 최적화 이론, 제어이론, 편미분방정식 등 고도의 수학기법을 통해 경제를 예측한다. 현재 월스트리트에는 1000여명의 수학박사가 포진해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의 수학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국내 과학기술계에서 수학의 입지는 점점 약화되고 있다. 거의 모든 대학에서 수학과의 정원 미달 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이미 수학과의 간판을 컴퓨터수학부나 전자계산학과라는 모호한 명칭으로 바꾼 대학들이 적지 않다. 또한 중·고등학생이 수학실력을 겨루던 경시대회도 폐지 위기에 직면했다.

이와 관련, 대한수학회 조용승 회장은 “IT, BT(생명기술), NT(나노기술) 전반에서 수학은 가장 중요한 기초를 제공한다”면서 “IT 분야만도 당장은 수학적 기반 없이 정보통신 공학기술만으로는 곧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SW산업이나 고부가가치 상품인 주문형 반도체 분야가 맥을 못 추고 있는 것도 바로 수학의 기반이 부족한 데서 기인한다고 진단한다.

또한 수학자들은 수학이 사회를 성숙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수학연구소의 김정한 박사는 “수학적 사고방식은 미래에 대한 예측을 가능케 하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도록 한다”면서 “이런 사회시스템은 사회적 합의를 쉽게 이끌어낼 수 있게 한다”고 말한다.

물론 수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려운 학문임은 틀림없다. 깊은 사고력을 요하기 때문에 빠르고 간편한 것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도 최근엔 수학 전공자 수가 급감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사회에서 수학자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데 반해, 인력 수급이 원활치 않으니 문제인 것이다. 이는 역으로 말하면 수학자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솟을 날이 곧 다가옴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간동아 412호 (p84~85)

유지영/ 과학신문 기자 pobye200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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