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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현정 ‘행복시계’ 왜 멈췄나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고현정 ‘행복시계’ 왜 멈췄나

고현정 ‘행복시계’ 왜 멈췄나
1995년 초 어느 날 밤, SBS 드라마 ‘모래시계’의 마지막 방송이 끝난 후 제작진은 강남의 한 단란주점에서 드라마의 대성공을 축하하는 자축 파티를 열었다. 연출자 김종학씨와 탤런트 박상원, 최민수씨 등 톱스타들이 함께 한 자리였다. 그러나 모두 이날의 주인공이 고현정씨임을 알고 있었다.

고씨는 미스코리아 출신이지만 ‘모래시계’로 당당히 연기력을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인 삼성가의 후계자와 결혼을 앞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앞에서 노래하는 진주색 피부의 그녀는 말 그대로 빛을 발했다. 이후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날보다 더 행복해 보이는 고씨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결혼식날, 고씨는 화려하기보다는 속세를 떠나는 성직자 같은 모습으로 입장했다. 목까지 칼라가 올라오는 톱디자이너 S씨의 드레스는 확실히 우아하고 금욕적인 품격을 갖고 있었다. 이를 알고 있다는 듯 신부 고씨는 기자에게 말했다.

“좀 답답해 보이나요? (시)어머니께서 해주셔서… 예쁘죠?”

고현정 ‘행복시계’ 왜 멈췄나
그 후 8년6개월.



“정용진 부사장과 고현정씨의 이혼에 대해서는 사생활이기 때문에 아는 바 없지만, 성격차로 이혼한 것이므로 ‘음모설’ ‘고부갈등설’로 보도한 매체들에 대해서는 모두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할 것입니다.”

고현정씨(32)와 정용진 신세계 부사장(35)의 이혼에 대해 신세계가 밝힌 ‘공식’ 입장이다. 동화 같았던 톱스타와 재벌 후계자의 결혼은 이렇게 사무적으로 끝이 났다. 경제적 어려움도 없고 고부간의 갈등으로 인한 갈등도 없는 부부가 단지 성격 차이로 이혼한 것이 확실하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으나, 신세계는 부부 사이의 일이라 ‘아는 바’가 없다면서 “15억원 외에 더 이상의 위자료를 주는 일도 결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혼 배경 추측만 무성 … 별거 추진하다 ‘포르셰 사건’이 결정타 된 듯

11월19일 양측 변호사들에 의해 2시간 만에 처리된 두 사람의 이혼은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접촉 창구가 되어야 할 변호사들까지 언론과 접촉을 단절해버림으로써 각종 ‘설’과 ‘의혹’들만이 인터넷을 타고 유포되는 기현상을 낳았다. 고씨의 친정 식구들마저 이혼 직전 조용히 사라져버렸고 고씨의 휴대전화도 꺼져 있다.

최근 2~3년 동안 공식, 비공식적으로 드러난 고씨의 행동과 말을 종합해보면 결혼생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꽤 오래 전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양쪽 모두 이혼만은 피하기 위해 고씨가 유학 가는 방식 등으로 자연스런 별거를 추진해오다 포르셰 자동차 도난사건이 불거지면서 이혼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고현정 ‘행복시계’ 왜 멈췄나

1995년 결혼식 당시의 고현정씨. ‘모래시계’로 정상에 오른 여배우와 재벌 후계자의 결혼으로 ‘신데렐라’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0월25일 고씨가 한강 둔치에 세워둔 신세계 소유의 포르셰 승용차와 그 안에 있던 850만원 상당의 금품을 도난당한 이 사건은 심야에 벌어진 데다 미심쩍은 피해자와 범인들의 진술로 인해 한창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중이었다. 전격 이혼은 이 사건을 보는 세간의 호기심에 대한 대답인 셈이다.

남편 혹은 시댁 식구와 식사를 하거나 쇼핑을 하는 외에 혼자 외출하는 일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던 고씨가 얼마 전부터 혼자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잦아진 것으로 보인다. 고씨의 옛 지인들 중 최근 “그녀를 만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부부동반 모임 후 남편 정부사장이 다른 곳으로 가서 고씨 혼자 왔다고 말하는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한 지인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듯했다. 술을 많이 마시기도 했다. 아무래도 한계에 이르러 이혼할 것 같다고 해서 내가 믿을 만한 변호사를 소개해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인은 다이아몬드 도난사건과 교통사고 등이 일어나자 고씨가 “이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며 괴로워해 “차라리 일기를 쓰라”고 충고해주었다고 전했다.

고씨의 결혼생활에 대해서는 몇 개의 가십 외에 직접 알려진 것이 없었다. 신세계측에서 며느리 고씨가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차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씨를 만났던 지인들은 “어떻든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에 말을 하지 않았지만, 고씨는 처음부터 재벌가의 독특한 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했다”고 털어놓았다.

재벌가 속성상 기업 운영과 가족관계가 얽혀 있다 보니 일반 가정보다 서열이 엄격하고 가부장적, 남성중심적 분위기가 더 강하게 마련인데, 여성이 더 대접받는 연예계에서 스타로 군림해온 고씨로서는 소외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고씨는 결혼 초 사적인 관계를 모두 끊고 요리와 영어 등을 배우며 나름대로 이 같은 분위기에 적응하고자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행동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오히려 역효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급기야 아이 돌잔치를 시댁과 친정이 나누어 하고, 올 9월 시어머니의 생일에 남편과 시누이만이 참석한 일 등이 쌓이면서 상처가 깊어졌다는 게 그녀를 만나온 사람들의 말이다.

“스트레스 상당 … 술 많이 마시기도”

한 패션부티크의 주인은 “고씨가 시어머니 이명희 회장과 시누이와 함께 가게에 왔을 때 반가운 마음에 ‘현정씨 현정씨’ 하며 좀 챙겼더니 이회장이 몹시 불편해했다. 그러자 고씨가 이를 눈치채고 문가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고 전했다.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신세계의 며느리지, 고현정이란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을 테니 그럴 만도 하다 해야 할까.

돈이나 명예, 권력 등에서 양가의 균형이라는 필요조건이 충족된 후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성사되는 것이 재벌가의 결혼 관행이라는 것을 고려해볼 때 고씨는 혼자서 신세계라는 재벌가와 동등한 권리를 갖고, 그에 따른 모든 책임을 감수한다는 힘겨운 ‘계약’을 한 셈이다.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고씨가 여배우와 재벌이 결혼한 마지막 케이스가 되지 않겠습니까? 이젠 연예계 스타도 재벌 못지않게 경제적, 사회적 권력을 누리는 시대입니다. 일반 여성들도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을 꿈꾸기보다 자기 일을 선택하는 시대고요. 연예인이 결혼으로 ‘사회적 신분 상승’을 꿈꾸기보다는, 할리우드처럼 서로 일의 특수성을 이해해주는 연예계 스타들끼리 결혼하는 경우가 대세가 될 겁니다.”

서류상 고씨와 정부사장이 이혼한 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스포츠지 등은 고씨를 좇기에 여념이 없다. 이혼에 대한 당사자의 입장 표명이 없는 데다 자동차 도난사건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고, 위자료가 ‘이해하기 어려운 액수’라는 게 보통사람들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불과 이혼 한 달 전 이곳저곳에서 고씨가 남편, 아이들과 함께 ‘단란한’ 한때를 보내는 모습을 본 사람들도 적지 않다.

공인의 경우 이혼할 때 서로 그간의 결혼생활이나 이혼사유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를 위반했을 경우에 벌칙은 위약금을 내는 것일 뿐, 아이들과의 ‘접견교통권’을 막을 수는 없다고 한다.

고씨가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연예계로 돌아오리라는 것이 관련 인사들의 추측이어서 고씨의 결심만 선다면 생각보다 빨리 직접 자신의 뜻을 밝힐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호사가들의 기대처럼 그것이 ‘엄청난’ 폭로일 가능성은 매우 적지만.

8년6개월 전 사람들은 모두 ‘신데렐라’의 마지막 장을 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사람들은 ‘인형의 집’ 첫 장을 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주간동아 2003.12.04 412호 (p80~81)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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