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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밥값 제대로 하십니까”

‘자살한 30대 수형자’ 유가족·동료 “진정서 받고도 조사 외면 …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나”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인권위, 밥값 제대로 하십니까”

“인권위, 밥값 제대로 하십니까”
”교도소 내에서 마약이 유통되고 있다. 이를 검찰에 알리려고 하자 교도소측의 적극적 보복이 시작됐다. 정신적 고통은 물론 지금 온몸을 쇠사슬로 묶어 피가 통하지 않는다. …지금의 고통을 견뎌내기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믿고 이 편지를 보내는 것이니 만약 견디지 못하고 내가 죽게 되면 교도소의 가혹행위로 인해 죽은 것이다. 교도소 내에서 마약을 투약한 자들은 ○, ○, ○, ○ 등 네 명이다. 내가 거짓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꼭 밝혀달라.”

지난해 5월20일경 부산교도소 독거사동에 수감 중이던 무기수 이모씨(40)는 징벌방에 수감 중인 배모씨(34·사망)로부터 은밀한 서신을 건네받았다. 사동 청소부가 전해준 편지엔 배씨의 고통 어린 호소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씨는 배씨의 편지를 읽고 곧 태워버렸다. 마약유통 혐의자 명단이 적혀 있는 서신이 발각되는 날엔 ‘불법서신 보유’ 명목으로 징벌을 받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3일 후 배씨는 징벌방에서 자신이 찢은 속옷에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사망 당시 배씨는 수갑과 쇠사슬 등 계구로 100시간 넘게 묶여 있던 상태였다. 설마 배씨가 자살하겠냐 했던 이씨는 절망감을 느끼고 배씨의 유언에 따라 진실 찾기에 나섰다. 그러나 바로 닥쳐온 것은 교도소측의 제지. “배씨가 사망한 진짜 이유를 밝히려 하자 교도소측이 1년간 배씨에게 가했던 형벌과 똑같은 형벌로 내 입을 막으려 했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교도소측의 가혹행위에 못 이긴 이씨는 올 5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보냈다. 그러나 인권위는 이씨의 진정서를 받고도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조사도 시작하지 않아 인권위가 직무를 유기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교도소 내 마약 유통 의혹 제기했다 미움 사”

“인권위, 밥값 제대로 하십니까”

국가인권위원회 전원위원회 회의 장면. 가운데 인물이 김창국 인권위원장.

이씨의 진정과 별도로 인권위에 배씨 사망사건이 알려진 것은 지난해 여름. 배씨 유가족들은 “배씨는 교도소측의 과도한 징벌로 인한 심리적, 육체적 압박과 모멸 속에서 울분을 참지 못해 자살을 결심한 것”이라며 인권위에 진상규명을 요청한 바 있다(주간동아 2002년 7월25일자 제344호 보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 배씨는 자살한 것으로 추정됐고 사인은 질식사였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배씨가 자살할 다른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5년형을 선고받은 배씨는 출감을 불과 8개월 앞두고 있었으며, 중국인 여성과의 결혼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배씨와 교도소에서 함께 지낸 동료는 “배씨가 출소 후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기 위해 부동산과 증권 관련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고 전했다.

유가족들은 배씨가 검찰에 마약 관련 의혹을 제기하면서 교도관들과의 관계가 나빠졌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배씨가 징벌을 받게 된 것은 교도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등 바른말을 해서 교도관들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게 유가족들의 주장이다. 평소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던 배씨는 수형 생활을 하며 교도관들의 행태에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유가족들에 따르면 배씨는 교도행정이 규정과 다르다고 여겨질 때마다 이를 문제삼고 나섰으며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법률구조공단, 법원 등에 보낸 진정서만 10여통에 이른다. 특히 배씨가 교도소 내에서 마약이 유통되고 있다고 검찰에 고발하면서 교도관들과 배씨의 사이가 극도로 나빠졌다는 게 유가족과 동료 수감자들의 주장이다. 인권단체는 “징벌방에 수감된 사람을 계구로 묶어 4일이 넘게 방치했다는 것은 명백한 인권 침해”며 “배씨의 죽음은 ‘타살적 자살’”이라 비판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 사건에 대해 책임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부산교도소측은 “배씨의 죽음에 대해 도의상의 책임은 모르겠으나 법적인 문제는 전혀 없으니 외부에서 상관할 바가 아니다”고 했다. 오히려 그 사건이 있은 지 얼마 후 해당 교도소 소장과 보안과장은 승진하면서 다른 교도소로 자리를 옮겼다. 배씨 사망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배씨가 설사 가혹행위를 당했다 하더라도 자살한 이상 그 누구에게도 형사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며 수사를 종결했다.

“인권위, 밥값 제대로 하십니까”

수감자 이모씨가 법무부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한 소장(위).지난해 인권단체 직원에게 형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던 배씨의 두 동생(뒷 모습을 보이는 이).

유가족들이 기댈 마지막 기관은 바로 인권위였다. 인권위 관계자들은 “교도소측의 과도한 징벌이 있었는지 여부와 함께 당시 직원이 제때 구명조치를 했는지 밝히겠다”며 지난해 8월 부산교도소에서 수일간 조사를 벌였다. 두 달 후 인권위는 유가족들에게 “조사가 끝났지만 교도관들의 가혹행위에 대한 물증을 찾기 어렵다”고 통보했다. 12월이면 결론이 날 것이란 언질도 함께 주었다. 그러나 12월이 지나고 해가 바뀌어도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유가족들의 문의에 인권위는 “결론이 안 났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이런 와중에 “배씨의 유서를 받은 적이 있다”는 동료 수감자 이씨의 진정은 유가족들에게 너무나 반가운 일이었다. 인권위가 판단을 내리는 데 이씨의 증언이 중요한 근거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올 6월 인권위는 이씨의 진정서를 받고도 조사에 나서지 않았다. 진정을 내고 대구교도소로 이감된 이씨는 “인권위에 진정서를 보냈지만 정작 진실규명을 위해 나를 찾은 조사관은 한 명도 없었다”고 말했다.

조사관 “최선 다해 조사…별 내용 없었다”

무책임한 인권위의 태도에 대해 유가족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배씨의 동생은 “인권위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며 “새로운 문제 제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인권위에 더 기대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배씨가 주장한 사실이 모두 거짓이고 그의 죽음이 제보, 징벌과 상관없다 하더라도 계구까지 사용하면서 자살을 막지 못한 교도소측의 처사에 대한 어떤 권고도 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사건을 맡았던 인권위 황모 조사관은 “교도소 진정사건의 대부분이 허무맹랑한 것이다. 배씨 사건은 관련자들과 수차례 접촉하는 등 최선을 다해 조사했으나 역시 별 내용이 없었다. 유가족들과도 수시로 접촉하며 진행상황을 전했다”면서 “교도소 수감자들 사이에서 인권위에 진정하는 것이 유행인 것 같다.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고 별별 얘기가 다 들어와 수감자들의 진정을 모두 정밀하게 조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감 생활이 무료하고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 보니 사소한 일로도 진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복역한 경험이 있는 B씨는 다른 시각에서 접근한다. 평생을 감옥소에서 보내야 할지 모르는 무기수가 교도소 내의 문제를 지적하고, 검찰에 소송을 제기하려면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 그는 “편안한 교도소 생활의 유혹을 뿌리칠 만큼 진실을 알리겠다는 의지가 절박한 것이 아니겠냐”며 “이씨의 주장을 들을 필요도 없는 것으로 치부해선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배씨의 동생은 “형과 가깝게 지내던 다른 재소자가 전해준 이야기도 이씨의 증언과 비슷했다”며 인권위의 관심을 촉구하고 나섰다.

부산인권센터의 이광영 사무국장은 인권위의 직무유기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공무원 신분인 인권위 조사관들은 이번 사건을 피상적으로만 접근했을 뿐 사망한 재소자의 입장에서 자살에 이르는 과정을 전반적으로 살피지 않았습니다. 접수되는 사건의 양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조사관 수와 전문성이 부족한 조사관의 수준이 인권위의 조사를 요식행위에 그치게 한 셈이지요. 이런 식의 조사가 이어진다면 11월25일로 두 돌을 맞는 인권위가 우리 사회에 그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할 것입니다.”



주간동아 412호 (p58~59)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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