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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권노갑 ‘진실게임’ 누가 웃을까

현대 비자금 200억 의혹 막바지 격돌 … 현금 차량 검증 ‘이벤트’ 세간 이목 집중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검-권노갑 ‘진실게임’ 누가 웃을까

검-권노갑 ‘진실게임’ 누가 웃을까

현금 50억원을 실은 승용차는 변호인의 예상을 깨고 잘 움직였다.

”3000만 달러를 해외로 빼돌리고 200억원을 추가로 요구했어. 그러니까 권노갑씨가 파렴치범이라는 거지.”(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박진만 검사)

“검찰의 무리한 짜맞추기식 수사의 진실을 반드시 밝혀내겠다.”(권노갑씨측 문형식 변호사)

최근 대검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그 시발점이 된 현대비자금 사건에 세간의 이목이 다시금 집중되고 있다. 흥행요소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측이 제공하는 영화보다 더 흥미로운 법정투쟁. 특히 50억원의 현금을 차량에 싣는 ‘현장검증’ 이벤트는 외국언론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검찰측은 2000년 초 권 전 고문이 총선자금 명목으로 요구한 3000만 달러를 고 정몽헌 현대 회장이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을 통해 해외계좌에 입금시켰고, 2개월 뒤 현대측이 카지노 사업을 위해 권 전 고문측에게 200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8월 긴급체포된 권 전 고문은 이 같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애초부터 3000만 달러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총선자금은 지인한테 100억원을 빌려 쓰고 이후 갚았다는 것.



뭉칫돈 정치권으로 흘러간 정황 포착

검-권노갑 ‘진실게임’ 누가 웃을까

권노갑씨측 변호인 문형식 변호사(왼쪽). 유재만 대검 중수2과장(오른쪽 사진 왼쪽)과 박진만 검사.

10월28일, 서울지법 형사3단독 황한식 부장판사 주관 아래 권 전 고문이 자주 들르던 신라호텔 라운지 커피숍에서 현장검증이 벌어졌다. 권 전 고문측은 이 자리에서 2000년 1월 당시 정몽헌 현대 회장,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그리고 무기중개상인 김영완씨가 함께 만난 자리에서 자신들이 정치자금을 요구했다는 이익치씨의 진술이 허위임을 밝히기 위한 파상공세를 펼쳤다.

“권 전 고문은 절대 흡연석에 앉지 않는다, CCTV가 있는 장소에서 만날 리 없다, 항상 계단을 이용하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앞에서 헤어질 리 없다, 오래 근무한 종업원조차 김영완씨 얼굴을 모르고 있다….”

권 전 고문측이 4년 전 정황에 대해 계속 이의를 제기하자 이씨는 물론 검찰도 적지 않게 당황했다. 게다가 당시 현금박스를 실은 차량 운전자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바람에 검찰은 공소장 내용 중 돈을 전달한 시점을 2000년 3월 말에서 4월 초로 바꿔야 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법조계에서는 몇 차례의 공판 과정에서 보여준 권 전 고문 변호인측의 날카로운 논리가 검찰의 그것보다 우위에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 문형식-이석형 변호사는 ‘진승현 게이트’ 당시 5000만원을 수뢰한 혐의로 구속됐던 권 전 고문을 수렁에서 구한 바 있다. 이들은 검찰 수사가 그려낸 정황의 모순점을 찾아내 무력화화는 현장검증 방식을 적절히 사용해왔다.

검-권노갑 ‘진실게임’ 누가 웃을까

서로 엇갈린 진술을 펴고 있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왼쪽에서 두 번째)과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맨 오른쪽).

그러나 이번에는 검찰의 공세가 만만치 않다. 검찰은 고 정회장과 김영완씨의 검찰 진술서 및 김 전 현대상선 사장, 이 전 현대증권 회장, 김재수 전 현대구조조정본부장, 전동수 현대디지털엔터테인먼트 사장 등 현대그룹 관계자들에 대한 끈질긴 수사를 통해 권 전 고문의 지시에 따라 현대비자금이 정치권으로 흘러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초기 검찰은 권 전 고문이 김영완씨는 물론 이익치씨조차 잘 알지 못한다는 권 전 고문측 주장의 사실 여부를 밝히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법정에서 “권 전 고문이 1998년 2월 이후 이씨와 만난 적이 없다”는 변호인측 주장에 대해 검찰은 “99년 5월에 권 전 고문과 이씨, 김씨가 수도권 모 골프장에서 골프를 친 자료를 확보했다”고 맞받아쳤다. 특히 이들이 골프를 치고 신라호텔 중식당으로 향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권 전 고문측을 당황케 하기도 했다.

김씨와 권 전 고문이 친밀한 관계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속속 드러났다. 검찰은 권 전 고문이 평창동 빌라를 매입한 뒤 김씨가 1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인테리어공사를 한 점, 권 전 고문이 정치인과의 골프모임에 수시로 김씨를 동행시킨 사실, 김씨가 권 전 고문의 정치자금을 세탁한 흔적이 있다는 점 등을 밝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권 전 고문이 개입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점은 검찰에게는 큰 부담이다. 사건의 전모를 아는 현대 관계자가 없을 뿐 아니라 검찰에 소환된 현대 관계자들이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술 내용이 엇갈리는 상황이 빈발했던 탓이다. 또한 권 전 고문이 계좌를 직접 관리하지 않고 김영완이라는 대리인을 내세웠기 때문에 정황을 입증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검찰측 얘기다.

특히 정회장의 자살로 법정에서 증언할 핵심인물이 사라진 데다 고비 때마다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온 이익치씨가 법정에서 전폭적인 신뢰를 얻기 어려울 정도로 부정적인 증언 태도를 보인다는 점도 검찰의 고민이다. 이미 일부 언론은 “검찰이 이씨에게 처벌 수위를 낮추는 대신 검찰을 위해 진술하도록 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했다.

이에 대해 유재만 대검 중수2과장은 “최초 200억원에 대한 의혹은 이씨가 아닌 김충식씨로부터 나왔고, 권 전 고문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진술도 정회장이 직접 확인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 단서를 기초로 3000만 달러 추가송금에 관한 진술을 이익치, 김충식씨를 통해 확인한 뒤 정회장 자살 일주일 전 그 전모를 파악했다는 것이다.

대검 한 관계자는 “현대비자금 사건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의 첫 단추를 꿴 역사적인 수사”라고 주장했다. 만일 이 사건을 제대로 마무리짓지 못할 경우 검찰이 입게 될 상처는 적지 않을 전망이다.

74세의 고령인 권 전 고문 역시 정치인으로서의 명예를 걸고 재판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한보나 진승현 사건 때와는 달리 김대중 전대통령(DJ)이라는 비빌 언덕이 사라졌다는 것은 중대한 변화다.

정치적 독립을 꾀하는 검찰과 DJ 정권 막후 실세였던 권 전 고문 간의 최후 대결은 어느새 종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주간동아 2003.12.04 412호 (p50~52)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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