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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 걷은 현정은 회장 “물로 보지 마”

탄탄한 집안 내력, 경영능력 지닌 여장부 … 명예회복 사명감 ‘숙질의 난’ 총지휘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소매 걷은 현정은 회장 “물로 보지 마”

소매 걷은 현정은 회장  “물로 보지 마”

현정은 회장은 11월19일 기자간담회를 하고 “국민기업화는 경영권 방어가 아니라 대주주의 전횡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그룹 경영권 분쟁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고 정몽헌 회장 미망인인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48)이 시숙(媤叔)인 정상영 금강고려화학(KCC) 명예회장측의 지분매입에 맞서 “국민주 공모를 통한 국민기업화”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정명예회장측에서는 이번 사태를 현대가(家) 대 김씨 가문의 다툼으로 몰아가려는 듯하다. 11월22일 정명예회장은 기자들에게 “현회장과는 만날 생각이 없다. 현회장은 내 며느리고 감싸줘야 할 사람이다. 김문희 여사와 만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문희 용문중·고 이사장(75)은 현회장의 친정어머니이자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18.5%를 소유한 2대 주주다(원래 1대 주주였으나 KCC측의 전격적 지분매입으로 2대 주주가 되었다). 다시 말해 ‘이대로는 현대그룹의 경영권이 정씨 가문에서 김씨 가문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러니 김이사장은 보유 지분을 ‘정씨 가문’ 사람인 현회장에게 넘기고, 현회장은 정명예회장 등 집안 어른들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지켜봐 온 현회장 인척들은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건 김이사장이 아니라 현회장이다. 얌전한 인상이라고 꼭두각시나 종이호랑이쯤으로 봤다면 큰 오산”이라 말하고 있다. 집안 내력이나 개인 자질로 볼 때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 이상의 경영능력을 발휘할 가능성도 있는 여성이라는 것이다.

현회장은 현영원 현대상선㈜ 회장(76)과 김문희 이사장의 4녀 중 둘째딸이다. 양가 중 밖에 더 많이 알려진 쪽은 김이사장 가문. 김이사장은 고 김용주 전방그룹 창업주의 장녀다. 밑으로 남동생 셋을 두었는데 바로 밑의 동생이 김창성 한국경영자총협회장, 그 아래가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이다.

김이사장은 이화여대 영문과와 대학원 국제정치학과, 일본학습원대를 수료한 인텔리 여성이다. 1982~92년 걸스카우트연맹 총재를 지내는 등 용문중·고 운영 외에도 많은 사회활동을 해왔다.



“종이호랑이쯤 생각했다면 큰 오산”

아버지인 현영원 회장은 20세기 초 호남 최대 갑부로 통하던 현기봉 선생의 장손자다. 현선생은 광주 농공은행과 우리나라 최초의 보험회사로 알려진 조선생명을 설립했다. 그 아들인 현준호씨는 호남은행을 설립했다. 당시 호남은행은 일본 직원을 채용하지 않고, 일본인에게 융자를 하지 않으며, 조선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다. 1940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동일은행과 강제합병된 뒤 다시 한성은행 등과 합쳐져 지금의 조흥은행이 됐다.

한국전쟁 당시 현준호씨가 사망하면서 가세가 많이 기울었다. 장남인 현영원 회장은 서울대 상대와 영문과 졸업 후 1950년 한국은행에 입사해 5년간 도쿄지점 외국부에 근무했다. 당시 주일대사가 바로 장인이 된 고 김용주 회장. 종전 후 귀국한 현회장은 1956년부터 장인의 요청에 따라 전방그룹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소매 걷은 현정은 회장  “물로 보지 마”

11월22일 정인영 한라그룹 전 명예회장의 부인 김월계씨의 묘지에서 마주친 현정은 회장(오른쪽)과 정상영 명예회장.

현회장이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60년의 일이다. 자금 사정이 어렵던 현대건설에, 역시 막 창업해 거래선이 없던 대한제철이 철근을 독점공급하기 시작한 것. 얼마 후 정주영 회장은 현대중공업을 창업했고 이탈리아의 한 정유회사로부터 유조선 2척을 수주했다. 그러나 그중 한 척에 문제가 생겨 주문자가 인수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정회장이 고민을 털어놓자 1964년부터 신안해운을 운영 중이던 현회장은 “아예 그 배를 밑천 삼아 해운회사를 설립하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현대상선의 전신인 아세아상선이다.

1975년경 신안해운이 현대중공업에 주문한 벌크선의 진수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정몽헌 회장과 현정은 회장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얼마 후 정주영 회장과 현영원 회장은 두 사람의 결혼에 ‘합의’했다. 현회장의 한 인척은 “정몽헌 회장이 처음 집으로 인사를 왔는데 양복이 아닌 점퍼를 입고 있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고 회상했다.

1976년 정몽헌 회장과 현정은 회장이 결혼했다. 현정은 회장은 경기여중·고 시절 이름난 수재였다. 월반을 거듭한 덕분에 17세에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그 해 정몽헌 회장의 아내가 됐다.

현회장의 대학 동창인 A씨는 “정은이는 참하고 야무진 아가씨였다. 날씬하고 피부가 고와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학업성적이 뛰어났고 영어도 잘했다”고 회상했다.

결혼 후 현회장은 경영에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어머니인 김이사장의 독려를 받으며 한국걸스카우트연맹, 대한여학사협회, 대한적십자사 등의 단체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걸스카우트연맹의 한 관계자는 “조용한 성품이지만 맡은 일은 확실히 완수하고 추진력도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안팎서 외로운 처지 … 법정싸움 시작

그러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듯 하다. 남편의 사업이 부침을 겪을 때마다 큰 스트레스를 받은 것. 한 친지는 “정은이 자매를 두고 ‘온실 속의 콩나물’이란 표현을 많이 썼다. 그만큼 곱게 자랐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업가의 아내가 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풍상을 겪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 8월4일 정몽헌 회장이 자살을 택한 후 현대는 경영권 위기설에 휘말렸다. 이때 ‘백기사’로 나선 것이 정명예회장이었다. 초기, 현회장과 김이사장은 정명예회장을 진심으로 믿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현회장의 측근 B씨는 “의심스런 부분이 없지 않았다. 현회장의 회장 취임을 만류했을 뿐 아니라, 지분도 주식시장에서 매입하지 않고 자사주 매입을 고집했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으나 이사회 결의에 따라 경영권 안정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또 정명예회장은 김이사장 지분 18.5% 중 12.87%를 담보로 정몽헌 회장에게 빌려준 돈을 현회장이 갚자 오히려 화를 냈다고 한다. 그 지분의 의결권을 넘겨받아 그룹에 대한 섭정에 나설 생각이었던 탓이다. 그런데 현회장의 대응이 만만치 않자 전면전을 선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B씨는 “지금의 ‘전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건 김이사장이 아닌 현회장이다. 현회장은 정몽헌 회장의 추락한 명예를 어떻게든 회복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고 있다. 돈이나 경영권이 목적이 아니다. 그런 만큼 현명한 대처로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현회장측에서는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정몽준 현대중공업 회장의 ‘중립 선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현회장의 한 인척은 “정명예회장측은 현대중공업 지분의 9%를 갖고 있다. 그 외 현대그룹에서 갈려 나온 주요 기업들의 주식도 적잖이 갖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 아무리 형제간이지만 섣불리 도와주마 나설 수 있겠는가. 정몽헌 회장 장례식장을 찾은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유가족은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자 정몽구 회장이 ‘회사 일에는 관여 않겠지만 유가족은 죽는 날까지 챙기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직접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회장이 지금 외로운 처지에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듯하다. 현회장의 외숙인 김창성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한 지인과의 통화에서 “답답하지만 정명예회장이 오해할까 걱정돼 연락을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다. 다른 친척들은 물론 김이사장도 딸을 드러내놓고 만나지 못하는 상태다. 그래서 친척들 사이에는 “아버지인 현영원 회장의 건강이 웬만만 했어도 이렇게 밀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한다. “김이사장과 현회장만 부각되면서 마치 돈에 눈먼 여자들이 물색 모르고 설치는 듯한 이미지가 형성돼 안타깝다”는 것이다.

이제 양측의 갈등은 법정으로 옮아가게 됐다. 정명예회장은 현회장이 추진 중인 1000만주 유상증자를 막기 위해 관할법원인 여주지원에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설사 정명예회장의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다 해도 그쪽 뜻대로만 풀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명예회장 지분의 의결권 행사가 6개월 간 금지된 만큼 내년 3월 주주총회를 통해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간동아 2003.12.04 412호 (p44~46)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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