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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코리안 드림’ 일단 꼭꼭 숨어라?

안산市 원곡동 외국인마을 … 4년 이상 장기체류자 70% 이상, 강제추방 1차 타깃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벼랑끝 ‘코리안 드림’ 일단 꼭꼭 숨어라?

벼랑끝 ‘코리안 드림’ 일단 꼭꼭 숨어라?

불법체류 외국인 합법화 신고를 위해 국내 체류 3년 미만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서울 출입국 관리사무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왼쪽은 불법체류자에게 체류 연장을 위한 일체의 서비스를 제공해주겠다는 유인물.

10월30일 오후 7시. 경기 안산시 원곡동 ‘국경 없는 마을’의 밤이 시작됐다. 거리 곳곳의 상점들이 불을 밝히자 낮 동안 고요했던 거리는 이태원보다 더 이국적인 ‘국제도시’로 변모한다. 알파벳과 한자로 가득 찬 네온 간판 아래를 걷는 사람 10명 가운데 7, 8명은 외국인. 이들은 대부분 인근 시화·반월 공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안산역 건너편에서 원곡본동 동사무소까지 약 300m에 이르는 이 지역에는 2만명이 넘는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이 모여 산다. ‘延吉狗肉館’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진 간판 한구석에 작은 글씨로 덧붙여진 ‘연길보신탕’처럼, 이 거리에서 한국인들은 철저히 부수적인 존재다. 대신 중국, 네팔,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체류자들이 주류가 되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즐기며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외국인 노동자들의 해방구’ 혹은 ‘한국의 게토’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화려하고 들뜬 겉모습과 달리 이날 분위기는 눈에 띄게 가라앉아 있었다. 퇴근길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잰걸음으로 유흥가를 지나쳐 가로등도 없는 주택가 골목으로 사라져갔다. 새로 개업한 성인 오락실 앞에서 도우미들이 격렬하게 춤추며 손님을 유혹했지만 시선을 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삼삼오오 멀찌감치 서서, 혹은 포장마차에 앉아 이야기하는 데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다음날로 예정된 외국인 불법체류자 합법화 등록 마감이 이 뒤숭숭한 분위기를 만든 원인인 듯했다.

가라앉은 거리 분위기 ‘뒤숭숭’

벼랑끝 ‘코리안 드림’ 일단 꼭꼭 숨어라?

‘국경 없는 마을’로 불리는 원곡동 거리.

불법체류자 합법화 등록은 ‘외국인 고용허가제’에 따라 국내에 들어와 있는 불법체류자들을 모두 정부에 등록토록 하는 정책. 10월31일까지 노동부에 체류 사실을 등록하는 불법체류자 중 국내 체류기간이 3년 미만인 자는 최대 2년간 합법적인 취업 자격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경우 이들은 국내법상 노동자가 되어 한국인과 마찬가지로 노동법에 따른 각종 보호와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3년 이상 4년 미만 체류자도 입국보장 증명서를 발급받아 일단 출국했다가 재입국하면 같은 조건으로 국내에서 취업할 수 있다.



문제는 4년 이상 한국에 체류한 이는 무조건 출국해야 한다는 점. 자진 출국할 경우 고용 허가제에 입각해 재입국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는 단서가 있으나, 일단은 재입국에 대한 보장 없이 전원 출국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불법체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용허가제에 따라 등록하지 않거나 자진 출국하지 않는 외국인은 11월15일 이후 철저히 단속해 강제추방할 것”이라는 의견을 거듭 밝히고 있다. 또 합법화 기간이 지난 후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사업주가 적발되면 3년 이상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엄격하게 처벌할 계획이다.

원곡동이 최근 잔뜩 움츠러든 것은 이 지역의 외국인 가운데 상당수가 4년 이상 국내에 체류한 장기체류자인 탓이다. ‘안산 외국인 노동자센터’ 김재근 사무차장은 “원곡동 외국인 노동자의 70% 이상은 고용허가제가 시행될 경우 한국을 떠나야 하는 이들”이라며 “한국에 계속 남기 위해 이들 중 상당수는 요즘 집 밖 출입을 삼가며 두문불출하거나, 아예 방을 내놓고 잠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강제추방을 위한 단속이 시작될 경우 불법체류자 밀집지역인 원곡동이 제일 먼저 타깃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벼랑끝 ‘코리안 드림’ 일단 꼭꼭 숨어라?

불법체류 단속과 추방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실제로 원곡동 거리의 부동산중개사무소 앞에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30만원대의 빈방 안내문이 잔뜩 붙어 있어 ‘대규모 잠적’이 시작됐음을 짐작케 했다. 대부분의 매물은 화장실과 부엌이 딸린, 전형적인 독신 외국인 노동자용 원룸. 한 공인중개사는 “10월 들어서 방을 내놓는 이들이 많아졌는데 새로 들어가겠다는 사람은 없어서 빈방이 늘고 있다”며 “마음 급한 이들은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한 채 원곡동을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올 여름까지 원곡동 곳곳에서 진행됐던 원룸 신축 공사도 지금은 주춤한 상태다.

이들이 주로 옮겨가는 곳은 외국인이 드물어 단속이 소홀할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의 주택가나 지방 소도시. 일자리가 있든 없든 일단 단속을 피하고 보자는 ‘버티기 작전’에 들어간 것이다.

단속은 피하고 보자 ‘버티기 작전’

이날 원곡동에서 만난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일을 ‘잠시’ 쉴망정 자진 출국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포장마차에서 친구와 함께 양고기 꼬치를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있던 조선족 한모씨는 “어차피 지금까지도 실질적으로는 ‘불법’이었던 것 아니냐. 당분간 도망다녀야겠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한국 체류’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1996년 입국해 한국 생활이 벌써 7년째다.

그와 함께 입국한 친구 박모씨도 “지금 안산역 앞을 지나는 사람 10명을 잡으면 그 가운데 5명은 장기체류 외국인이다. 그 사람들을 다 내보내면 공단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겠느냐. 결국은 몇 달 단속하는 듯하다가 조용해질 것이다. 우리 사장이 그동안만 숨어 있다가 다시 같이 일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 바뀔지 모르는 정책을 믿는 순진한 사람만 바보가 될 것”이라고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서울조선족교회’ 이은규 목사는 “조선족들은 다른 외국인과 달리 한국인과 외모가 거의 똑같기 때문에 어떻게든 버티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며 “또 이미 중국의 동포사회가 다 무너져버려서 고향으로 돌아가면 생계를 잇는 것조차 곤란할 것이라는 점도 이들이 ‘체류’ 결심하는 데 한몫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쨌든 강제추방을 목전에 둔 이들은 정부 방침에 정면으로 맞서며 ‘절대 돌아가지 않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자신만만한 말에도 불구하고 사실 불법체류자들은 갑자기 닥쳐온 위기에 상당히 위축돼 있는 상태다. 특히 정부가 불법체류자를 채용한 고용주까지 처벌하겠다는 방침을 정하면서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등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이들도 많다.

골목길 슈퍼마켓 앞에서 만난 R씨는 외국인 노동자 대상 한글 글짓기 대회에서 3차례나 입상하는 등 한국어에도 능통해 스스로를 ‘준한국인’이라고 자부했던 방글라데시인. 그러나 그는 오랫 동안 다니던 공장에서 10월25일 해고당한 후 실의에 빠져 있었다. 자신을 ‘한국 엄마’라고 부르라고 할 정도로 친절하게 대해줬던 공장장의 부인이 R씨에게 “정말 미안하지만 벌금 2000만원과 징역까지 감수하면서 너를 보호해줄 수는 없다”며 방글라데시로 돌아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믿었던 사람까지 자신을 포기한 상태에서 과연 다른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합법적으로 체류하게 해줄 수 있는 브로커를 찾고 있다.

그는 ‘다행히도’ 아직 악덕 브로커를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러나 원곡동에는 불법체류자의 등록 시한 마감을 앞두고 합법화가 어려운 이들의 돈을 가로채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은 합법화 대상 업종에 취업하지 못한 이들에게 고용확인서를 받아주겠다며 알선료를 받아 챙긴 뒤 연락을 끊고 사라지거나, 사업자등록만 낸 유령회사를 만든 뒤 불법체류자들을 모아 돈을 받은 후 회사를 폐업해버리는 수법을 사용한다. 심지어 여권 위조나 재입국 보장 등의 허무맹랑한 약속을 하고 돈을 뜯어내는 브로커들까지 있다고 한다.

‘안산 외국인 노동자센터’ 한동희 사무국장은 “하루에도 10여 건씩 브로커에 의한 사기 피해 사례가 접수되고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외국인 노동자를 앞세워 아는 이들에게 접근하는 데다 점조직 형태로 활동하며 수시로 전화번호를 바꾸기 때문에 적발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는 R씨와 헤어져 조금 걷다가 한 전봇대에서 ‘非法居留者(불법체류자)’라는 제목의 전단지를 발견했다. 밀항, 여권 분실 처리, 여행증 연기, 회사담보 제공 등 체류 연장을 위한 일체의 서비스를 제공해준다는 안내문과 함께 휴대전화 번호만 쓰여 있는 자필 유인물이었다.

조선족 박모씨(44)에게 부탁해 전단지의 번호로 직접 전화를 걸도록 했다. 브로커는 투박한 이북 사투리를 쓰는 중년 남자였다. 그는 “전단지를 보고 전화했다”는 박씨의 말에 “무슨 전단지요?”라며 일단 시치미를 떼다가, 박씨가 조선족 어투로 “당신 중국 교포 아니냐. 나 역시 교포고, 밀입국해서 한국에 왔는데 체류 연장을 위해 도움을 받으려고 전화한 것”이라고 하자 “무엇을 원하느냐”며 대화를 풀어가기 시작했다.

박씨가 맡은 역할은 아직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일단 노동부에 ‘선등록’만 해둔 불법체류자. 브로커는 15일 전까지 취업보증을 서줄 회사를 알선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대신 그가 요구한 것은 “내일까지 60만원을 준비하라”는 것.

브로커는 “60만원 주면 대리를 담보해주고 외국인등록증이 나오게 해준다 이거죠?”라는 질문에 쾌히 “그렇다”고 답했다. 하지만 회사가 어디냐는 물음에는 “회사가 여러 군데라, 일단 내일 다시 연락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회사조차 없는 상태에서 일단 돈을 뜯어내고 보는, ‘서울조선족교회’ 등에 접수된 ‘유령회사’의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었다.

박씨는 “10명만 잡으면 600만원 아니냐. 이런 놈들 때문에 순진한 동포들이 사기를 당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지만, 문제는 그런 브로커에게라도 매달려 한국 체류 기간을 연장하고자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법무부 체류심사과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현재 국내 불법체류 노동자는 28만7000여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10월30일까지 노동부에 취업 확인을 신청한 이는 18만 2362명. 하루 남은 상태에서 20%가 미등록 상태인 셈이다. 이들과 더 많은 4년 이상 체류한 불법체류자들은 지금도 원곡동 곳곳에, 또 전국 각지에 숨어서 ‘불법체류 연장’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11월15일 이후 원곡동 풍경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과연 고용허가제는 불법체류자들의 저항을 버텨낼 수 있을까.





주간동아 409호 (p46~48)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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